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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Nov 22. 2023

아내의 삶에서
과연 고단함이 가실까?

아내의 소리

아내의 소리는     


삶이 진정 감탄할만한 기적인지

미래는 진정 열고 싶은 날들인지

일상의 사건은 점점 빈곤해지는 것은 아닌지

썰물의 나날에 작은 기쁨마저 밀리는 건 아닌지


오만 가지 가능성이 하나하나 지워지는 것은 아닌지

인간은 비참과 잘 어울린다는 몽테뉴의 진단을 증명하는 과정은 아닌지

잠에서 깨어남은 작은 부활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반복되는 아침은 힘듦을 털어버릴 수 있다는 부활의 환상을 깨는 과정은 아닌지


아침은 세상과 다시 맺는 결합의 아름다움인지

언젠가 기쁨이 찾아와 내 곁에 앉으리라는 믿음으로 쓰디쓴 운명을 향해 웃을 수 있는지

인간은 그 어떤 것도 결정된 것 없는 삶을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가는 진정 자유로운 존재인지

보슬비가 내리는 아침 창을 열고 바람의 촉촉함에 온몸을 내맡긴다. 행복하다. 이 삶이 또 올지

매일 저녁 황혼에 죽고 이튿날 다시 나타난다는 니체의 말처럼 다시 나타나고 싶은지

     


아내의 소리는

별의별 생각을 다 일으킨다.     




아내의 소리     


아내의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색과 향을 더합니다.

피곤함이 켜켜이 쌓이고 힘겨움에 떨립니다.

소리마다 고단함이 역력합니다.      


고르던 소리는 이 저리 엇갈리고 평온하던 소리는 악산 등반로를 뺐습니다.

잔잔하던 소리는 긁힌 듯 거칠어지고 차분하던 소리는 이리저리 튑니다. 

평화롭던 소리는 잔뜩 부풀어 오르고 따뜻하던 소리는 늦가을 서리톱을 닮아갑니다.  

    

손 가림막이 사라진 채 재채기가 온 세상을 향하고,

시도 때도 없고 장소에 구애도 없이 한껏 벌린 입으로 자신의 고단함을 토로합니다.     

언제부턴가 몸이 풀린 아내의 코는 세상을 향해 포효하고,

세면실 안에 있어야 할 코 풀어 젖히는 장면은 뭐가 어떠냔 듯 열어젖힌 문밖으로 세상에 생중계됩니다.     


풀지 못한 한이 뭐가 그리도 많은지 이유 모를 울부짖음이 잠잘 때마다 이어지고,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바득바득 이에 힘을 주는 일도 잦습니다.     


궁금하지도 않은 자신의 장 상태를 세상에 알리느라 연신 붕뿍뽁~픽폭 바쁘고,

사뿐 거리던 발걸음엔 어느새 쇳덩이를 매단 듯 둔탁한 소리를 바닥에 박아댑니다.     


‘네, 아~ 네~’상냥하던 아내의 전화소리는 ‘응, 그래서, 알았어’ 두어 달 가뭄 맞은 밭처럼 푸석대고,

‘이건? 아~ 네 주세요’ 따짐 없던 아내의 흥정소리는 ‘5000원에 해요, 뭐가 그리 비싸요’ 입에 칼을 뭅니다.     

고개만 돌려도 한숨이고, 두어 발짝만 떼어도 앓는 소리입니다.     


아내의 소리에 풀이 죽고 아내의 소리에 멈칫합니다.

아내의 소리에 작아지고 아내의 소리에 두근댑니다.

아내의 소리에 꺾어지고 아내의 소리에 움츠립니다.  

   

거칠고 둔해지고 투박하고 돕고 날카롭게 날이 선 아내의 소리는 둔하고 답답한 남편이 쌓은 담장을 헐고 살아내기 위한 아내의 몸부림은 아닐는지요.     


오늘도 아내는 TV앞에서 리모컨을 쥔 채 고단함을 토합니다.

아내의 소리가 마른 잎처럼 바삭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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