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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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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Dec 07. 2023

늙는다는 것

할머니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가 되는 거다.

초대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는 거다.

거절의 대상 명단에 오르는 거다.    

 

차별의 대상이 되는 거다.

세상의 요구에 항복하는 거다.

온갖 결함이 드러나는 거다.  

   

요구가 우스워지는 거다.

젊음의 흔적이 지워지는 거다.

뺄셈의 시기에 접어드는 거다.    

 

육신의 즐거움에서 일찍 졸업하라는 세네카의 말에 귀 기울이는 거다.    


 



할머니    

 

어느 여름날 오후 한참을 기다린 끝에 올라탄 버스에는 학생들로 가득했습니다.

겨우 올라 탄 아내는 학생들 틈을 비집고 겨우 코를 내밀 수 있는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학생들 틈에 그냥 세워둔 몸뚱이는 버스가 출렁일 때마다 사정없이 휘청였습니다. 그럴 때면 나에게 의지하고 있던 아내의 몸은 다 꺼졌다 간신히 다시 살아나는 바람 앞 촛불처럼 삶과 죽음을 반복했습니다.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그때 어디에선가 예쁘고 반듯한 아이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참 오랜만에 듣는 얘기입니다.

사라진 지 오랜, 먼 기억 속에나 있을 법한 끈끈한 정입니다.

요즘에는 없는, 이미 고어가 되어 박물관에나 가야 접할 수 있는 감동적인 마음입니다.     


녀석 참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는 찰나에    

 

“할머니!”     


다시 그 감동이 살포시 귓전을 스칩니다.  

   

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학생들 어깨 사이로 학교명이 선명한 티셔츠를 걸친 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여학생의 눈길은 옆에 서 있는 아내에게 닿아 있었습니다.     


내 눈길을 의식한 아내가 고개를 돌리자 아이가 자신의 자리를 가리켰습니다.

아내가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아이는 두터운 사람들 틈으로 팔을 뻗어 아내의 소매를 살며시 잡았습니다.    


 


…!


아내가 할머니였습니다.

모르는 사이 늙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직 먼 훗날의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누구의 늙음에도 그들만의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아니 이미 와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쳤음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간 잊고 있었습니다.     

 

아내가 할머니가 될 줄은 아니 이미 된 줄은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젊음이 빠져나간 아내의 몸이

아내의 몸에 새겨진 젊음의 자국이 안쓰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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