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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Dec 10. 2023

나는 그를 만나
또 다른 존재가 된다

아내, 아이와 만나다

인간은 만남을 통해 ‘그 어떤’ 존재가 된다.

만남은 ‘그 어떤’ 존재가 되기 위한 전제다.     


인간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존재의 성격이 정해진다.   

  

인간의 삶 속에는 그가 만난 이들이 들어있다.

삶을 통해 만난 이들의 다종다양한 특성이 인간을 ‘그 어떤’ 존재로 만든다.  

    

나는 그 안에 그는 내 안에 어떤 모습으로든 들어있다.

나는 그를 그리고 그는 나를 만든다.  

   

그를 통해 나는 ‘그 어떤’ 존재가 된다.    


 



아내아이와 만나다 


   

아내가 아이를 만난 건 

엄마로서의 조건은 여기저기 금이 가고 엄마로서의 정체성이 마구 흔들릴 즘입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매일 조금씩 엄마로서의 자격을 잃어간다는 좌절감에 허덕일 즘입니다.

생물학적 나이에 옭아매려는 자연의 엄명에 저항하면서 버텼던 걸음을 멈추고팠던 즘입니다.      


아내에게 아이는 하느님의 사랑이었습니다.

복중 복이었고 기쁨 중 기쁨이었습니다.

머릿속에서만 뒹굴던 행복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내는 이웃의‘애기엄마’를 부러워했습니다.

아기를 품은 엄마가, 아기와 걷는 엄마가, 아이와 웃는 엄마가, 아이와 먹는 엄마가, 아이를 달래는 엄마가, 아이와 노니는 엄마가…. 




그러던 아내가 아이를 만난 겁니다.

아내는 아이를 가슴에 안았을 때 깨달았습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아내에게 아기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이보다 크고 이보다 많고 이보다 넓고 이보다 높고 이보다 빛나고 이보다 숭고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었습니다. 늦은 만큼 더 주셨다며 아내는 신께 감사했습니다.    

 

이렇게 아내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나와 만나면서 새겨졌던 ‘새댁’이라는 이름은 아이와의 만남을 통해 ‘엄마’라는 새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내의 가슴에는 그토록 그리던 엄마라는 이름표가 생겼습니다. 아내는 그동안의 이름표를 뒤로 물리고 엄마라는 이름표를 맨 앞으로 옮겨 달았습니다. 그것은 엄마로서의 삶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아내는 엄마라는 이름표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향한 희망과 그리움 그리고 욕망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엄마라는 이름표는 무거웠습니다. 아내라는 이름표 대신 얻은 엄마에게는 아내는 없었습니다. 영주라는 자신도 물론 사라졌습니다. 24시간은 오로지 아이만을 위한 아이의 시간이었습니다.     

 

엄마의 길은 험하고 고단합니다.

이것도 접고 저것도 물리고 또 그것은 포기하고 요건 다음으로 미룹니다. 그럼에도 삶은 오히려 풍성해집니다. 그간 삶을 짓누르던 권태와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불안과 강박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아이는 구불구불하고 어둡고 칙칙하던 아내의 길을 반듯하게 잡아주고 빛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치열하게 살아갈 이유가 생겼습니다. 흐르는 매 순간 욕심을 냅니다. 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 후회거리를 남기지 않으려 잘한 부분을 오래 유지하려 애씁니다.       





아내의 내일은 추울 수 있습니다.

거센 비바람이 몰아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내일에 상관없이 엄마로서 작정한 길을 묵묵히 걷습니다.      


‘엄마!’가 위대한 이유입니다.

‘엄마!’ 이보다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이름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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