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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Jan 22. 2024

초라한 위안

순댓국

비록 작고 보잘것없는 것일지라도

원하는 때 원하는 것을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다면 삶의 고단함을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으리라.  

   

먹고 싶은 때 보고 싶은 때 가고 싶은 때 듣고 싶은 때 하고 싶은 때 쉬고 싶을 때 만나고 싶을 때 그곳에서 그런 방식으로 먹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갈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할 수 있고 가슴 펼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순댓국  

   

아내는 가리는 음식이 없습니다.

뭐든 잘 먹습니다.     


“없어서 못 먹지!” 

아내가 평생 입에 달고 사는 말입니다.     


반면 나는 가리는 게 많습니다.

입이 짧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불만이 많습니다.     


외식 한 번이 어렵습니다. 

여기는 이래서 싫고 또 저기는 저래서 싫다며 꺼립니다.

음식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입니다. 


아내는 없는 형편에 뭐 그리 가리는 게 많냐며, 참 손이 많이 가는 불량한 존재라며 언제나 불만입니다.      

그냥 주는 대로 먹지 그러냐는 겁니다.     


“순댓국 한번 먹어보면 어때?”     


외식을 논하던 어느 날 아내는 슬쩍 순댓국을 입에 올렸습니다.


순댓국은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 앞줄에 있는 음식입니다. 

순댓국은 아내에게 작은 위안입니다. 

감정에 작은 주름이라도 질라치면 으레 순댓국을 찾습니다.    

 

반면에 내게 순댓국은 싫어하는 음식 중 목록 위쪽을 차지합니다.

순댓국은 내겐 괴로움입니다.

냄새부터 고통을 부릅니다.     


그래서 지금껏 외식에서 순댓국은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내의 입에서 순댓국이 나온 겁니다.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순간 한번 ‘가보자’ 하는 마음과 ‘아이고 그걸 어떻게’ 하는 저항이 강하게 부딪혔습니다. 몸이 거부하는 것을 마음이 어찌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마음과 몸이 그리고 몸과 몸이 거칠게 맞섰습니다.   

   

순댓국을 꺼내 놓은 아내의 입은 그 이후로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거 아니면 이건?”언제나 다른 대안을 내놓던 평소와 달랐습니다. 

다른 메뉴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순댓국 아니면 가지 않겠다는 것일까?      

짧지만 긴 순간이 지나자 아내는 나를 빤히 바라봤습니다.

여기로 정했다는 그러니 여기로 가자는 무언의 압력입니다.     


 

‘그래 한 번 가보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내의 얼굴엔 금세 단비 맞은 새싹처럼 생기가 돋았습니다.

양보와 희생 없는 사랑은 그 사랑을 보호할 수 없을 테니 사랑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그 냄새 그 모양 그 맛을 견뎌야겠습니다.     




순댓국 함부로 평하지 마라.

너는 아내에게 한 번이라도 따뜻한 위로가 된 적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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