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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Jan 26. 2024

삶은
또 다른 삶으로 빛난다

사람 냄새

삶을 빛나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삶입니다.

삶이 빛나는 것은 또 다른 삶이 있기 때문입니다.


삶은 또 다른 삶으로 빛나고 그 삶의 빛은 또 다른 삶을 빛나게 합니다.


개개의 삶은 서로를 아껴야 합니다.

서로의 삶을 온전하게 지키는 것이 서로의 삶을 빛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개개의 삶은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의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삶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 냄새   

  

어느 날 문득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앞에 펼쳐진 길로 들어섰습니다.

잠시라도 방을 서성이면 ‘집 밖’을 들먹이는 아내의 말을 연료 삼아 나선 길입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풀잎에 매달려 있는 이슬방울처럼 큰길에 가까스로 매달려 있는 작고 소박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무작정 핸들을 돌려 좁고 가파른 길로 들어섰습니다.     

 

차창에 비친 마을은 조용했습니다.

그 흔한 개 짖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묵언 수행 중인 절집을 닮았습니다.     


5분여 걸었을까 오랜 시멘트 기둥에 삐딱하게 걸린 채 반쯤 열려 있는 파랗고 검붉은 대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한 대문은 이리저리 휘고 허물어진 담벼락에 간신히 매달려 있었습니다. 담장 너머엔 사람이 살았을 것 같지 않은 풍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깨지고 찌그러진 지붕을 이고 있는 기둥은 서 있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고 마당은 물론 방과 부엌까지 갖가지 크고 작은 풀들이 서로를 업고 이고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습니다.     


그냥 바라보는 것조차 섬뜩했습니다. 

한때는 서로의 고단함을 달래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서로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고 힘을 북돋우고 서로의 삶에 기대고 지지하고 서로의 손을 잡아주고 함께 걸어주고 함께 아파하고… 하나의 삶이 또 다른 삶을 위해 살았을 집입니다.     


그러나 삶이 떠난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었습니다.   

   

한참 후 숨 가쁜 걸음을 옮기시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죽은 거지”     


동네가 참 조용하다는 인사말에 할머니는 한숨 섞인 대꾸를 했습니다. 한때는 백호가 넘는 제법 규모가 있는 마을이었으나 지금은 동네가 다 죽었다며 웅크렸던 허리를 폈습니다.      


“동네는 사람 냄새가 풍겨야 되는 거여”     




사람 냄새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힘입니다.

걷고 뛰고 웃을 수 있는 에너지입니다.    

 

사람 냄새는 손길과 발길 그리고 눈길을 통해 전해집니다.    

 

인간의 발길이 집을 굳건하게 합니다.

인간이 발길을 돌리는 순간 집은 허물어지고 쓰러집니다.

인간의 손길이 끊긴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닙니다.     


인간의 삶도 인간의 발길로 견딥니다.   

  

인간의 발길이 끊긴 삶은 부서지고 인간의 손길이 끊긴 삶은 망가집니다.

그러다 인간의 눈길마저 끊기면 삶은 결국 무너집니다.    

 

가족을 향한 서로의 눈길이

그리고 이웃을 향한 서로의 발길과 손길이 귀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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