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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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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 Jan 02. 2024

세상에 노는 땅은 없다

아내가 그리는 땅

멈춤보다 움직임에 익숙합니다.

뒤로 가는 것보다 앞으로 가는 것에 익숙합니다.

혼자보다 함께가 익숙합니다.

어둠보다 빛이 익숙합니다.

죽음보다 삶이 익숙합니다.

버림보다 쌓는 일이 익숙합니다.

성공보다 실패에 익숙합니다.

모름보다 앎이 익숙합니다.

미래보다 과거가 익숙합니다.

희극보다 비극이 익숙합니다.

희망보다 절망이 익숙합니다.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익숙한 것의 매력이 낯선 것의 유혹보다 질기다’라는 

누군가의 말이 그래서 더 마음을 울립니다.     




아내가 그리는 땅    

 

집 주변에 직각 삼각형 모양의 작은 터가 있습니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빈터입니다.

아내는 콩 한 포기 품지 않은 터가 늘 불만이었습니다.

일없이 놀고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래서인지 늘 뭔가 일거리를 안기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봄이면 겨우내 품고 있던 이름 모를 싹을 돋우고 

여름이면 풀잎마다 온갖 향을 품은 색깔을 피우고 

가을이면 날 선 비바람을 견딘 간절한 마음을 흩뿌리고 

겨울이면 또 다른 생명을 품고 고통의 시간에 드는 작지만 암팡진 땅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이런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수레를 끌기 위해 소 목에 멍에를 메우듯 빈둥대는 터에 얹을 멍에를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대문 앞에 낯선 상자가 놓였습니다.

농장 이름이 선명한 길쭉한 박스였습니다.     


예기치 못한 물건에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아내는 반색을 하며 박스를 안았습니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상자를 열었습니다.

상자에는 연한 갈색의 나무가 짧게 잘린 가지를 단 채 반듯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노는 것을 볼 수 없었던 터에게 안길 일거리였습니다.

나무와 눈을 맞춘 아내는 나무의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 서둘러 터에 웅덩이를 팠습니다.

어느 곳에 무엇을 어떻게 할지 이미 계산된 삽질이었습니다.

어디에 숨어 있던 힘인지 터에는 금세 십여 개의 웅덩이가 생겼습니다.

그리고는 나무를 넣고 흙을 덮고 물을 주고 다시 흙을 덮고 또 물을 주고… 땅다운 모습을 찾아주기라도 하려는 듯 삽이 헐떡일 만큼 정성을 다했습니다.     


아내의 이마에서는 금세 맑고 아름다운 땀방울이 흘렀습니다.

놀고 있는 터를 부루퉁하게 바라보던 아내에게 파릇한 기운이 도는 나무는 생각만으로도 여간 기특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내의 마음에는 벌써 잎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리고 꽃향기 풍기는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매일 나무의 안부를 챙깁니다.

눈만 뜨면 나무를 찾습니다. 

오늘도 아내는 나무 삼매경입니다.

꼬르륵거리는 내 안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실은 땅이 그동안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철마다 바람이 뿌린 씨를 돌보고 가꾸는 욕심부리지 않는 선한 땅이었습니다.

땅은 억울했을 법합니다.

그럼에도 아내의 청을 말없이 받아들입니다.

자연은 인간의 요구를 따지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그러랍니다.

그리고 인간의 요구에 최선을 다합니다.     




‘누군가의 이익은 다른 사람의 손해를 바탕으로 얻어진 것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아내의 기쁨이 땅의 슬픔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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