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선택의 자유는 모두에게 공평한가

고교학점제 바로알기 No.44

by 황은희

(제도 도입 이후 우리가 놓치고 있는 정책적 질문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누적 이수를 통해 졸업하는 제도로 소개된다. 이는 획일적인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학습자 중심 교육으로 전환하겠다는 분명한 정책적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현재, 현장에서 제기되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과연 이 선택의 자유는 모든 학생에게 동일하게 주어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선택권 확대라는 이상, 학교 현장의 현실


고교학점제는 ‘선택’을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하지만 실제 학교 현장에서 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의 폭은 학교 규모, 교원 수급, 지역 여건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대도시 일반고와 농어촌 소규모 학교 간 개설 과목 수 차이는 학생의 진로 설계 가능성 자체를 다르게 만든다.


결국 학생의 선택은 개인의 흥미나 적성보다 소속 학교가 제공할 수 있는 교육과정의 범위에 의해 제한된다. 이는 고교학점제가 의도한 학습자 중심 구조가 아직 충분히 제도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선택의 불평등’은 왜 발생하는가


이러한 격차는 학생이나 교사의 역량 부족 때문이 아니다. 구조적인 원인이 존재한다.


첫째, 학교 단위 자율성 중심의 제도 설계다. 자율성은 충분한 자원을 가진 학교에는 기회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에는 부담이 된다.

둘째, 다양한 선택 과목 운영을 뒷받침할 교원 배치 체계가 마련되지 않았다. 전공 교사의 절대적 부족은 선택권 확대를 구조적으로 제한한다.

셋째, 온라인 공동교육과정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으나, 학생의 학습 관리 부담과 학교의 운영 역량 차이로 인해 실제 활용에는 한계가 있다.


형식적 선택권을 넘어 실질적 학습권으로


고교학점제가 제도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정책적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국가 차원의 최소 선택권 보장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모든 학생이 일정 수준 이상의 선택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공적 책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둘째, 학교 간 공동 교육과정의 제도화가 요구된다. 거점학교, 지역 연합형 교육과정, 온·오프라인 혼합 운영 모델을 안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셋째, 고교학점제 전담 인력 도입이 필요하다. 과목 선택과 학습 경로 설계는 행정 업무가 아니라 전문적인 교육 지원 영역이다.


넷째, 학부모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제도 이해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정보 접근성과 해석 역량의 차이는 곧 선택의 격차로 이어진다.


선택 이후를 책임지는 제도로 나아가야 한다


고교학점제의 성패는 ‘얼마나 많이 선택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선택한 이후의 학습이 얼마나 의미 있게 보장되는가’에 달려 있다. 선택은 시작일 뿐이며, 그 이후의 학습 경험과 진로 연결이 제도의 본질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제도에 대한 낙관도, 성급한 비판도 아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단하고, 제도를 작동 가능하게 만드는 정책적 보완이다. 고교학점제는 아직 완성형이 아니며, 지금의 선택이 한국 교육의 다음 10년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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