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별오리와 달오리

by 이고


달은 부끄럼이 많나 봅니다. 밤하늘 뒤로 숨었지만 어색하게 반쯤 나온 얼굴이 유난히 말갛습니다. 매일 밤 저는 혼자 연꽃 바위에 앉아 달을 부리로 다가 대고, 별과 날아다니는 별똥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직 아기 젖살이 빠지지 않아 작고 통통한 저의 날개를 파득거리며 흔들어봅니다. 아득하고 넓은 밤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서, 달과 별로 다가가고 싶어 조그마한 오리발로 힘껏 뛰어봅니다.


―풍덩!―


발을 헛디뎌 초록 연못으로 미끄러져 빠졌습니다. 밤하늘이 잠긴 초록 연못은 너무 차갑고 더욱 깊은 것 같았습니다.


“어푸, 어푸, 발이 말을 안 들어! 어푸어푸! 꽥꽥!”


너무 당황스러워 그간 배운 수영기술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왜 이리 몸이 무겁고 말을 안 듣는지, 차오르는 숨에 움직이지 않는 발, 힘이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어푸 어푸푸! 엄마! 살려주세요! 오리 살려요! 꽥꽥!”


연못 깊숙이 진흙 속에 커다란 눈동자가 껌벅거립니다. 송사리 친구들이 제 주변에서 어쩔 줄 몰라하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죠. 송사리들이 소리쳤습니다! “메기다! 진흙 메기야!”


진흙 메기는 크기가 엄마만큼 크다며, 혼자 밤에 수영하지 말라던 엄마의 당부가 기억납니다. 뿌연 진흙 먼지가 연못 깊은 곳부터 요동쳐 올라오고, 저는 더이상 소리도 지를 수 없을 만큼 공포를 느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시커먼 주둥이가 제 목덜미를 낚아챘습니다.


“꽤액! 으윽!”


파닥거리는 몸을 조이듯 검은 주둥이는 저를 끌고 갔습니다. 달빛이 비친 연못에 세찬 물결을 마지막으로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오리야! 저기……. 오리야! 정신 차려!”


가물가물한 정신을 차렸을 때, 저는 연꽃 잎사귀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새까만 부리질이 머리를 톡톡, 안절부절못하는 파닥거리는 회색의 날개가 보였습니다. 옆집에 따돌림을 당하는 막내 회색 오리였습니다.


“어? 오리야? 정신이 드는구나? 괜찮니?”

- 어……. 어……. 괜찮은 것 같아. 네가 날 구해줬구나……?


“……. 아……. 음……. 그래.”

- 넌 옆집에 막내 오리구나?


“어……. 음……. 어……. 그 괜찮으면, 난 갈게……. 아 털 떼 줄게…….”


회색 오리는 고갤 숙이고 얼굴을 마주치지 않다가 저를 구하느라 묻은 자신의 회색 털을 떼어주며 성급히 자리를 피하려고 했습니다.


“잠깐만! 회색 오리야 잠깐만! 날 구해줘서 고마워!”

- 어……. 아냐…그… 난 갈게…


“잠깐, 잠깐만 오리야! 난, 나는 버드나무에 사는 다섯째 오리야! 형제들은 나를 별오리라고 불러! 밤마다 별을 보러 다니거든……. 너는 뭐라고 부르니?”


- 아……. 나는 흰 연꽃 근처에 사는 막내 오리야. 형제들이 변종이라고…… 변종 회색 오리라고 불러, 난 변종이거든……. 난 이제 가볼게……


회색 오리는 고갤 떨어뜨리고 힐끔힐끔 눈을 돌리며, 풀 죽어 읊조렸습니다.


“잠깐만! 기다려봐! 이렇게 몸이 다 젖어서 집에 가면 분명 혼날 거야! 나랑 같이 몸을 말리고 들어가자! 혼자 있으면 무섭잖아!”


고갤 숙이고 우두커니 서있는 회색 오리를 부리로 끌었습니다. 가까이서 본 회색 오리는 멀리서 본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물에 젖어 그런지 잿빛보단 빛나는 은빛이었고 새까만 부리가 저의 노란 부리보다 배나 컸습니다.


“구해줘서 고마워, 발을 헛디뎌서 헤엄을 못 치겠더라고! 그런데 어떻게 이 시간에 여기 있던 거야? 나도 몰래몰래 나오는 편인데… 너도 별 보러 왔니?”

- 아니……


“그럼 배가 고팠구나! 저 옆쪽에 토끼풀이 많아! 같이 먹을까?”

- 난……. 집에서 못 자……


“집에서 못 잔다고? 왜…….?

- 형제들은 내 털이 묻으면 나처럼 된다고……. 나가서 자라고…… 밀어내.


“아줌마한테 말해서 혼내버려! 그런 게 어디 있어!”

- 엄마를 잠에서 깨우는 것도 한두 번이지……. 죄송해서... 난... 그냥 밖이 편해…….


“너 정말 착한 오리구나! 헤헤”


어쩔 줄 몰라하는 회색 오리의 부리를 저의 작은 부리로 툭치며 웃었습니다. 회색 오리는 온몸 구석구석이 형제들이 쪼아댄 터라 털이 빠지고 상처가 많았습니다. 저의 작은 부리질에도 놀란 듯 살짝 움츠렸지만, 저의 웃음을 보고 고갤 숙여 옅은 미소를 뗬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너는……. 왜 집에 안 가?”

- 별을 본다고 했잖아! 나는 별을 보는 게 좋아! 특히 별똥별을 보는 게 좋아!


“별똥별?”


별똥별을 처음 듣는 듯 갸우뚱거리는 회색 오리였습니다.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작은 별이야!”

- 별이……. 날아?


“잠깐 누워봐! 누워서 밤하늘을 보면 별들이 날아다니는 걸 볼 수 있어!”


우리는 연꽃 잎사귀에 나란히 누워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별이 날아올랐습니다.


“봤어? 봤지! 저게 별똥별이야!”

- 엇!


놀란 회색 오리의 눈망울과 까만 부리가 넋을 잃고 벌어졌습니다.


“봐! 저기! 저것도 날아간다!”

- 와! 봤어! 저게 별똥별이구나!


“그래! 맞아 하늘을 나는 별! 별똥별이야!”

- 근데 어디로 가는 거지? 사라졌어


저는 엄마와 나눴던 별똥별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듣는 내내 회색 오리의 눈은 초롱초롱 빛나고, 그 밤하늘 같은 눈망울 속으로 별똥별이 날아다닐 때마다, 물에 젖은 회색의 날개가 은빛으로 파닥거렸습니다. 저는 연꽃 바위에 올라가 통통한 날개를 피고 가슴을 힘껏 부풀리며 외쳤습니다.


“나는 별똥별이 될 거야! 그래서 저 밤하늘을 날아 달도 만나고, 별도 만나고! 이 세상 어디든 날아갈 거야!”

- 와……!. 별이 된다고? 날아다니는 별똥별? 멋져……!


한창 동안 우린 달 아래에서 연꽃잎을 기울이며 별똥별에 대해 신나 얘기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빤히 보며 듣고만 있는 회색 오리가 이렇게 오래 한 대화한 게 처음이라는 기분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너……혹시 형제들……. 아무랑도 안 친한 거니?”

- 형제……. 형, 누나들은 내가 형제가 아니래……. 나는 변종 회색 오리야...


기죽은 목소리에서 회색 오리의 움츠러든 마음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래! 그럼, 형제는 없다 치고, 나랑 친구 하자!”

- 친구……?


“응! 나랑 친구가 되는 거야!”

- 별오리야……. 나랑 친해지면 너도 혼이 날 거야……. 초록 연못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오리는 없어……. 네 형제들에게 혼이 날 거야……


회색 오리는 눈을 떨어뜨리며,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별똥별 이야기 알지! 보고 싶은 이에게, 가고 싶은 곳으로 날아가는 별! 나는 별똥별이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별오리지!”


“회색오리야…… 나는 네가 변종으로 보이지 않아. 너는 좀……. 수줍음이 많고…… 음…… 우리보다 좀 크고 회색? 아니다! 은색 오리야! 그냥 그런 거야! 히히”


아직 기가 죽은 회색 오리는 고갤 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에서 회색 오리를 찾았습니다.


“넌 달이야!”

- 응…? 달?


“그래! 넌 저렇게 커다랗고, 은색에, 부끄럼이 많아서 매번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는… 넌 딱 달이야!”


저는 달을 가리키며 크게 웃었습니다.


“저기 봐! 너랑 똑같지? 저 커다란 게 부끄러워서 밤하늘에 얼굴을 반만 비춘 모습이 딱 너잖아! 헤헤! 닮았지?”


회색 오리는 저의 웃음소리가 닿는 하늘을 보며 방긋 웃어 보였습니다.


“나 사실… 아줌마가 하는 말을 들었어. 미운(彌雲) 오리. 별을 품은 구름 이야기. 넌 달오리면서 미운 오리, 미운 달오리야! 나는 별똥별, 별오리!”


- 별오리…


“이 밤하늘 연못의 친구인 거지! 내가 나중에 별똥별이 돼서 달님인 너에게 날아가느라 힘들면 네가 구름이 되어 나를 업어주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줘, 그럼 되겠네!”


- 미운 달오리……. 별오리… 친구……?


깔깔거리는 모습에 회색 오리는 기분 좋은 듯 미소가 부리에 번졌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달과 별과 구름을 함께 했고, 연못과 밤벌레의 노랫소리를 함께하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꽥꽥 웃음소리에 개구리도 궁금한 듯 까끙거리고, 살짝만 엿듣고 싶은 지 물 밖으로 꼴깍대는 송사리들. 밤하늘을 담은 은하수 연못에서 우리는 그렇게 친구가 되었습니다.


“잘 가! 내일 보자 달오리야!”

- 응…….! 잘 가 내일 보자 별오리야!


우리는 밤마다 만나 이슬을 머금은 토끼풀을 먹고, 통통하게 오른 배를 두드리며 싱그러운 풀 향기를 이불 삼아 잠들었습니다. 이젠 내일 보자는 인사에 회색 오리는 더 이상 어색한 웃음은 사라졌고, 집으로 돌아가는 회색 오리의 자박거리는 가벼운 발걸음은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진흙 없이 빛나는, 은색의 뒷모습이었습니다.


뽀송뽀송 마른 털을 정리하고 집에 들어갔을 때 둥지 안 형제들과 엄마가 엄청 부산한 눈치였습니다.


“너 어디 갔었어! 엄마가 엄청 찾으셨어!”

“다섯째야! 너 여우가 물어간 줄 알았어!”

“별오리 저 녀석! 또 밤에 몰래 별 보러 다녀왔겠지!”


형제들은 꽥꽥거리며 다그쳤고,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습니다.


“나간다면 말을 해야지, 걱정했잖니… 밤새 어딜 다녀온 거니?”

- 별을 보다가……. 밖에서 잠깐 잠들었어요.


형제들은 부리로 저를 콕콕 쑤시다가 놀라 소리쳤습니다.


“엇! 이게 뭐야!”

“으아! 회색 털이야! 옆집 회색 털이야!”

“꽤액! 건들지 마! 다가오지 마!”


형제 오리들은 등 뒤에 끼어 묻은 회색 털 쪼가리를 보고 놀란 듯 뒤로 나자빠졌습니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회색 털을 떼어주며 물었습니다.


“아가, 이게 뭐니…?”

- 아……. 이건 옆집에……. 제 친구 깃털이에요……


형제 오리들은 기어코 그렇구나라는 두려운 표정으로 엄마 뒤로 숨고, 털을 찾았던 형제 오리는 부리를 사방으로 휘두르며 울었습니다.


“으앙! 난 끝났어! 변종이 될 거라고! 회색 털이 돋아날 거야! 꽤액~ 난 끝났어~!”

- 아니야! 내 친구는 변종이 아니야! 달오리야!


우리가 투덕거리는 동안 엄마는 지그시 눈을 감다가 한숨을 쉬며, 조용히 떼어놓은 회색 털을 집어 둥지 구석 안 보이게 치웠습니다.


“엄마! 만지지 마요! 큰일 났다! 엄마도 만졌어! 다 끝이야! 변종이 될 거라고! 저놈 때문이야!”

- 아니야 이 겁쟁이들아! 내 친구야! 변종이 아냐! 너넨 다 나쁜 오리들이야!


“아가! 너희들! 형제끼리 무슨 말버릇이니! 멈추지 못해!”


엄마는 호된 목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처음 본 엄마의 화난 모습에 저는 기가 죽어버리고 서러움에 몸이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내 친구란 말이에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 아가! 너…!


저는 그 자리에서 둥지를 박차고 뛰어나갔습니다. 엄마의 안쓰러운 표정이 뒤로 느껴졌지만 차마 돌아볼 수는 없었습니다. 왜 전부 친구를 욕하는지 이해가지 않았고, 서러운 마음에 뾰로통하게 땅을 발로 치댈 뿐이었죠.


진흙 범벅이 된 오리발만큼 마음도 싱숭생숭할 때 커다란 그림자가 발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깜짝 놀라 올려본 하늘에 구름같이 큰 새 한 마리가 날아갔습니다. 해를 가릴 만큼 큰 새를 처음 봐 신기한 마음에 열심히 뛰었지만 짜리 몽땅한 발로는 큰 새를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큰 새는 구름 사이로 초록 연못을 지나 멀리 산 너머로 날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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