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 노란 깃털과 회색 깃털

by 이고


초록 연못은 우리들의 수영장이었고, 풀과 물고기들이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웬만큼 수영에 자신 있게 되었고, 더 이상 수영이 무섭거나 어색해지지 않았을 때, 저는 오동통한 날갯죽지를 피며 연꽃 바위에서 나는 연습을 했습니다. 물론 물에 떨어져 부레옥잠을 부여잡고 젖은 몸을 추스르길 반복했지만 저는 연습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저는 별똥별이니까요. 한 동안 물에 젖어 푸득 거릴 때, 물가에서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그곳에는 옆집 오리들과 우리 형제들이 왁자지껄 싸우고 있었습니다.


“너희 변종 놈이 얼마 전에 회색털을 뿌리고 다녔어!”

- 무슨 소리야! 그놈은 우리와 관계없어!

“너네 막내 놈이 자꾸 물을 튀기잖아!”

- 그 녀석은 변종이야! 우리 형제가 아니란 말이야!


큰 덩치의 달오리가 물가에서 수영을 하다가 우리 형제 오리에게 물을 튀긴 모양입니다. 달오리는 잔뜩 주눅이 들어서 구석에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미안해, 물이 튀긴 줄 몰랐어……. 용서해줘.”


옆집 오리들이 고갤 숙인 달오리에게 다그쳤습니다.

“너는 항상 사고를 치는구나! 물가 말고 저기 진흙탕 주변에 있으란 말이야! 털도 안 날리고 좋잖아!”


우리 형제 오리 중 한 명이 튀어나와 말을 이었습니다.

“내 동생도 얼마 전에 너네 막내 털이 몸에 붙고 나서 자꾸 날겠다, 별이 되겠다, 정신이 나갔어! 우리 가족에게 가까이 오지 말란 말이야!"


저는 그 순간 참을 수 없어 뛰어들었습니다.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저는 옆집 오리 형제들과 우리 형제가 얽힌 사이를 비집고 달오리의 앞에 섰습니다.


“수영을 하면서 물 좀 튀길 수 있잖아! 이 친구는 그냥 회색의 오리일 뿐이야! 그만해!”

- 넌 정말 쟤가 오리라고 생각해?


“그래! 오리야! 우리와 같아! 우린 모두 같은 오리라고!”

- 시커먼 부리에 시커먼 다리, 회색 털에 저 우둥퉁한 몸을 봐!


이렇게 날카로운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급하게 옆집 아줌마와 엄마가 달려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엄마는 각자의 자식들을 자신의 뒤로 물러 세우며 말했습니다.


“우리 애들이 심한 것 같네요. 미안해요. 어서 너도 사과드리렴. 어서!”

- 저는 잘못 없어요! 회색 오리, 저 변종이!


찰싹! 엄마 오리는 날개 끝으로 형제 오리의 엉덩이를 쳤습니다. 그리고 화가 나신 표정으로 등을 떠밀었습니다. 눈물이 고인 형제 오리는 우물 쭈물대다가 낮게 읊조렸습니다.


“미안해……. 죄송합니다…….”


초록 연못의 시끄러웠던 회색 오리 사건은 이렇게 사과로 마무리되었고, 맨 마지막으로 뒤따라 둥지로 돌아가던 달오리의 축 처진 뒷모습에 저는 형제들에게 더 많은 화가 났습니다.


저는 그 사건에서 달오리를 편들었다는 이유로 변종이 되었다는 놀림과 함께 형제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물고기도 가장 작은 것으로 받게 되고, 풀을 뜯어먹으려 해도 형제들이 가로채가는 경우가 많았죠. 몇 번의 엄마의 만류와 꾸중이 있었지만 형제들의 따돌림은 뒤에서 일어났기에 매번 엄마가 신경 써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따라 엄마가 움직이는 시간이 적고 날개 깃털이 조금씩 빠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언제나 촉촉하던 엄마의 부리가 갈라지고, 엄마 등에 타서 초록 연못을 도는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형제들에게 떨어져 연꽃 바위에서 나는 연습을 하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사실 대부분 혼자 놀고, 먹고, 자고, 밤이면 별을 보며 지냈습니다. 요새 달오리는 밤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별똥별을 기다리던 중 바위 구석지에서 달오리가 터벅터벅 힘없게 걸어왔습니다.


“달오리야! 무슨 일이야? 요즘 왜 이렇게 보기 힘들어?”


달오리의 몸은 전 보다 좀 더 큰 모습이었지만, 잿빛 털이 듬성듬성 빠져있고, 우울하고 초췌함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달오리는 한숨을 한번 쉬더니 말을 했습니다.


“별오리야, 나는 떠날 거야.”

- 그게 무슨 소리야? 떠나다니? 그리고 꼴은 왜 이래? 형제들이 또 괴롭힌 거야?


“아냐, 형제들은 더 이상 날 괴롭히지 않아. 근처에도 안 오거든. 털은 그냥…… 빠지더라고.”

- 근데 왜 떠난다는 거야?


“나는 변종… 맞는 것 같아. 아니, 사실 알고 있었어. 나는 오리 형제들과 같이 있으면 안 좋은 일만 생겨. 그래서 여길 떠날 거야.”

-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내 모습을 봐, 털들이 빠지고 이상하게 온몸이 쑤시고 아파.”

- 그건…


“엄마도 처음과 다르게 날 어색해하셔, 물론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시지만, 그 눈빛 속에 알 수 없는 거리감이 있어.”

-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리고… 나 때문에 누군가 피해 보는 건 나는 원하지 않아.”

- …….


“별오리야… 그간 고마웠어. 나에게 친구가 되어준 건 너뿐이었어. 너와 함께 했던 별과 달, 하늘과 연못 모두 잊지 않을 거야.”

- 달오리야……. 가지 마.


“별오리야, 너는 정말 별똥별이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알고 있어. 네가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로 밤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게 될 거라는 걸.”

- 달오리야…….


“그때, 우리가 처음 봤던 그 연못을 기억하니?”

- 초록 연못이 밤하늘을 담고 은하수 연못이 되었던 그때 말이야?

“나중에… 나중에… 내가 다시 널 찾아올게, 은하수를 따라서 너에게 갈게 별오리야.”


달오리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처럼 몽글몽글하게 일렁였지만 어느 때보다 굳게 빛났고, 저는 달오리의 마음을 바꿀 수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노란 털 품 안에서 가장 큰 깃털을 뽑아 건넸습니다.


“이거 받아……. 나의 첫 깃털이야. 다시 볼 때까지 꼭 잘 가지고 있어 줘.”


노란 깃털을 받은 달오리는 자신도 듬성듬성 빠진 회색 털 사이에서 깃털을 뽑아 나에게 건넸습니다.


“우리… 꼭 은하수 연못에서 다시 만나자.”

- 그래, 고마웠어, 별오리야.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일렁이는 눈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뒤돌아선 달오리에게 억지로 싱긋 웃으며 인사했습니다.


“내일…보자… 달오리야.”


달오리는 반쯤 얼굴을 비추며 싱긋 웃더니 인사했습니다.


- 그래…내일 보자…! 별오리야.


뒤돌아 걸어가는 달오리의 발걸음이 처음 본 달오리의 처진 어깨보다 그나마 가벼워 보였습니다. 달님도 헤어짐이 안쓰러운 듯 그날따라 더욱 밝게 비추었습니다. 저는 달오리가 물푸레나무 언덕을 넘어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몸은 구멍이 난 듯 밤바람에 힘없이 흔들리는데, 손에 쥔 회색 깃털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져 저는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저는 노란 깃털을 뽑았던 털 품 안으로 회색 깃털을 껴안고 커다란 회색 구름이 된 듯, 별 같은 눈물을 떨어뜨렸습니다.




혼자 남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함이었을까요, 달오리와의 약속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연꽃 바위에 이끼가 닮아 사라질 때까지 열심히 나는 연습을 했습니다. 형제 오리들은 유유히 연못 위를 떠다니며 손가락질했습니다.


“저 바보가 뭐하는지 모르겠네."

"변종이 떠나더니, 별종만 남았어.”

“내가 말했잖아, 변종과 어울리면 바보가 된다니까?”

“야 이 바보야! 그런다고 네가 날 수 있을 것 같아? 크크크”


실패와 별개로 도전마저 비웃음 받는 날들이 많아졌습니다. 사실 저는 많이 실망스러운 상태였습니다. 열심히 연습했지만 전보다 확연하게 나아지지 않았죠. 몸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날개는 짧고 통통해 마냥 추락하기만 했습니다. 하늘의 하얀 구름처럼 가볍게, 풀 사이를 뚫고 부서지는 햇살처럼 날카롭게, 바람을 느끼며 날 수 없을까. 저는 뛰었습니다.


―파닥파닥, 풍덩!―


“꽥꽥꽥! 아하하하! 혼자 또 왜 저러는 거야?”

- 깔깔! 저 바보 좀 봐!

“오리가 아니라 개구리 아니야? 하하하”


비웃음은 흠뻑 젖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창피하고 분한 마음은 물먹어 무거워진 가슴 털을 털어내며 꼭 움켜쥔 오리 발가락으로 매번 연꽃 바위에 다시 올랐습니다.


“또 하려고? 아주 별난 오리야!”

- 변종은 아니지만 별종이구나! 하하하!

“개구리 오리야 그만 뛰어라! 깔깔!”


모두에게 단 10초라도 보여줄 수 있다면, 아니 단 5초라도 연못 넘어 비웃고 있는 녀석들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날아갈 수 있다면. 앙다문 부리를 바들바들 떨며 다시 자세를 잡았습니다.


“보여줄 거야. 난 별똥별이야!”


힘차게 바닥을 차면서 뛰어올랐습니다.


―미끌, 후닥닥 쿠콩콩―


이끼가 닮아버린 연꽃 바위는 반질거렸고, 작디작은 발톱에 넓은 오리 발바닥은 바위에서 미끄러져버렸습니다.


“어? 야 별오리야!”

- 별오리가 다쳤어!

“괜찮아? 별오리야! 정신 차려!”


형제 오리들의 외침이 흐릿하게 들리고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에 형제들이 혀를 차며 몸을 주무르고 있었습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엄마 오리 얼굴이 보였습니다.


“아가! 정신이 좀 드니?”


“별오리가 깨어났다!”


“엄마……? 이게 무슨……?”

- 너 바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졌어! 너 죽은 줄 알았다고!


“아가…… 괜찮은 거니?”

- 엄마…죄송해요…….


“아가, 위험하게 왜 그랬니? 요즘 바위에서 뛰어내린다면서.”

- 별…별똥별이 될 거예요…….


엄마는 눈을 감고 큰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다 고갤 젓고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아가……. 이젠 그만 연꽃 바위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하지 말거라.”

- 뛰어내리는 게 아니라, 날아오르는 거예요!


“아가……. 이젠 그만하렴. 앞으로 그런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말거라.”

- 엄마! 안돼요, 저는 꼭……!


“그만!”

- 엄…마…….


“그만하라고 엄마가 말…! 콜록! 콜록!”


엄마는 기운 없이 콜록대며 날개를 접고 주저앉았습니다.


“아가! 엄마 말 들으렴. 우리는 날 수 없단다.”

- 엄마, 난 할 수 있어요! 제 날개를 보세요! 전 보다 더 커진……! 아얏!


고갤 돌려 보니 날개가 살짝 꺾여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왼쪽 무릎도 까져 풀로 동여맨 상태였죠.


“엄마는 네가 더 이상 다치는 모습을 볼 수 없단다. 이젠 제발. 다른 형제들과 지내며 오리답게 살 수 없겠니? 부탁이란다.”

- 엄마, 저는 아직…….! 아! 이거 보세요! 나도 엄마 같은 새하얀 깃털이 쏟아 올라요! 조금만 있으면…….!


저는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언제부터 이렇게 달라진 거죠. 부스스하게 마른 부리와 눈가의 주름, 듬성듬성 빠진 깃털. 그 폭신하고 따뜻했던 품이 더 이상 없을 것만 같은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아가, 엄마는 속상하단다. 네가 너무 걱정된단다. 나는 것은 이제 그만두고 수영을 더 열심히 하렴...”


엄마의 변한 모습과 간절한 목소리에 어떠한 반문도 할 수 없었지만, 수긍을 하자니 갓 나온 깃털들은 아직 빳빳하기만 했습니다. 어리광을 부리지도 못하겠지만 세상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저의 연못은 노란 품 안의 회색 깃털처럼 마냥 혼자 겉도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전 03화3장 : 별오리와 달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