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깃털들이 이젠 색을 잃고 말라 떨어져, 소리 없이 오는 비에 추적추적 젖어갈 때, 우리 오리들은 이제 솜털을 완전히 벗고 오리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형제들끼리 싸우는 일도 적어지고, 더 이상 물을 튀기며 물장구도 치지 않았습니다. 먹이를 착실히 찾아 먹거나, 버드나무 가지를 주워 모아 둥지를 수리하는 오리들이었습니다. 엄마 오리는 싸한 밤바람처럼 차갑고 마른기침을 하셨습니다. 더 이상 집 밖으로 걸음을 하지 않으셨고, 물에도 들어가지 않으며 자식들이 물고 온 버드나무를 추슬러 둥지를 만드는 걸 겨우 도우실 뿐이셨죠. 찬 바람이 불수록 엄마의 휑한 눈빛과 한숨이 잦았고, 오리 형제들은 불안한 시선으로 엄마 오리를 지켜보았습니다.
어느 날 엄마가 형제들을 모두 불어 모았습니다.
“아가들아, 엄마가 할 말이 있단다.”
- 예, 말씀하세요!
“조금 있으면, 하얀 숲과 연못이 온단다. 맛있는 풀과 벌레들은 모두 땅속 깊이 사라지고, 나무와 연못은 고요히 잠에 들지. 차가운 바람이 계속되고 해님도 추워 일찍 산 너머로 들어간단다.”
- 해님도 일찍 간다고요?
“그래 엄마 말이 맞아! 요즘 산 너머로 일찍 가시더라고!”
"맞아! 그리고 요즘 풀벌레도 잘 안 보이고, 연못물도 줄어든 것 같아!”
“추워서 그런가, 난 물에 들어가기도 싫어졌어.”
“우리 아가들이 걱정되는구나,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아서. 하얀 연못은 초록 연못과 다르게 많은 걸 허락해주지 않는단다. 차갑고 투명한 문으로 닫고 있지만, 우린 볼 수 있을 뿐, 그 문을 열거나 부술 힘이 없단다.”
- 엄마는 그 하얀 숲과 연못을 보셨군요?
“많은 하얀 연못을 보았었고, 나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지.”
- 무엇을 가져간 거죠?
엄마는 묻는 형제 오리의 부리를 깃털로 쓰다듬으며 말을 아꼈습니다. 엄마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지만 이내 스며들었고, 떨어지는 고개를 간신히 잡는 듯 얇게 떨렸습니다. 형제 오리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갸우뚱거렸습니다. 엄마는 언제나 인자했고, 강인했기에 형제 오리들은 엄마의 이런 눈빛을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저는 엄마의 이런 눈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별똥별을 처음 알려주며 밤하늘의 별들을 함께 보았던 그 밤이었죠. 이내 뒤돌았던 엄마였지만 밤하늘의 별만큼 반짝이던 엄마의 눈가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엄마는 심호흡을 크게 하더니, 다시 형제 오리들에게 말을 이었습니다.
“초록 연못 뒤로 넘어가면, 엄마가 가지 말라던 물푸레나무 언덕이 있단다. 그곳을 넘어가면 그곳 물소리 숲에 사는 나무꾼이 있단다.”
- 나무꾼이요?
“그렇단다. 그 나무꾼 집에서 하얀 연못을 나려고 한단다.”
- 초록 연못을 떠난다는 말씀이세요?
놀란 형제 오리들의 부리와 날개가 퍼덕거리며 웅성거렸습니다.
“왜 그곳으로 가는 건가요?”
- 너희들은 아직 하얀 연못을 만나본적 없고,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하얀 연못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기 어렵단다.
“저희는 다 컸어요! 저희가 엄마를 보살필게요!”
- 콜록…….! 아니다 얘들아. 사실 초록 연못은 우리 모두가 살아가기엔 비좁단다. 이젠 모두가 연못에서 같이 수영할 수 도 없잖니?
맞는 말이었습니다. 오리들의 몸집이 아기오리였을 때 보다 더 커져, 어린 시절 물장구치던 연못이 너무 작게 느껴졌었죠.
“나무꾼의 집으로 가면, 매일 맛있는 풀과 열매를 먹을 수 있을 거야. 살쾡이나 여우의 습격을 겁내지 않아도 되고, 우리 모두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거란다.”
- 예전에 옆집 아줌마가 나무꾼은 피하라고 했어요! 위험하다고요!
“……. 꼭 그렇진 않단다. 사실 엄마도 오래전에 그곳에 살았었단다.”
- 엄마 가요!?
형제 오리들은 많이 먹고 안전하다는 말과 함께 엄마도 그곳에 있었다는 말씀에 동요가 있는 듯 물었습니다.
“수영도 할 수 있나요?”
- 그럴 거야.
“혹시 버드나무 침대도 있나요?”
- 그것보다 부드러운 지푸라기 침대가 있고, 튼튼한 지붕도 있어서 둥지에 비가 세거나 무너져 고칠 일도 없단다…….
“오오~멋지다!”
형제 오리들이 상기된 얼굴로 미소를 띠며 서로 끄덕거렸습니다. 밝아진 분위기 속 형제 오리들이 앞 다투어 나무꾼 집에 대한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구석에서 어두운 표정의 엄마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엄마, 그곳에서도 별을 볼 수 있나요?”
- 아가, 그곳에서도 별을 볼 수 있을 거야.
“엄마, 그곳에 가도 아빠 별이 우릴 보고 있겠죠?”
엄마는 흠칫 놀랐습니다.
“엄마가 밤하늘을 볼 때 면 엄마의 눈에 아빠 별이 보여요. 그리고 저는 아빠를 본 적 없지만 밤하늘을 보면 누군가 나를 지켜봐 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밤하늘이 좋아요.”
엄마는 큰 눈을 그렁거렸습니다.
“어릴 때 엄마가 말한 엄마를 비추는 가장 큰 별, 그 별 때문인지 저는 밤에 혼자 별을 보고 있어도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사실 매일 밤이 반가웠어요.”
- 아가… 너……
저는 새하얗게 난 깃털로 엄마를 껴안았습니다. 흐르는 엄마의 별똥별을 다시 보기엔 너무 아파 겁이 났습니다.
사실 겁에 질린 제가 엄마에게 또다시 안긴 것 일지 모릅니다. 야위고 작아진 엄마의 품이었지만, 그토록 따뜻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무들이 깃털을 모두 내려놓기 전에 우리 오리가족은 초록 연못을 떠났습니다. 옆집 오리가족들도 우리들의 일행에 합류했습니다. 초록 연못의 끝에 물푸레나무 언덕에 올랐습니다. 달오리가 마지막으로 걸어갔던 길이었습니다. 정든 초록 연못을 떠나 형제들과 다 같이 가는 길이었지만 이렇게나 외로운데, 이곳을 혼자 가야 했던 달오리를 생각하니 울컥했습니다. 초록 연못에 멀어질수록 달오리가 걱정되었고, 품 안에 숨겨둔 달오리의 회색 깃털을 꺼내보며 착잡한 마음으로 길을 걸었습니다. 아쉬움이 길을 더 멀게 느껴지게 하는 걸까, 어느덧 밤이 되었고, 다른 오리들은 꽤나 기대감에 찬 모습이었지만 몸이 불편한 엄마를 위해 걸음을 멈출 때마다 밤하늘의 가장 큰 별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처럼 더욱 쓸쓸했습니다.
드디어 물소리 숲 나무꾼의 집이 보였습니다. 반듯한 물푸레나무로 만든 집과 지붕 위 기둥에는 검은 구름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창문과 문틈으로 세어 나오는 따뜻한 불빛이 우릴 맞아주었습니다. 마침내 도착했다는 즐거움에 오리들은 꽥꽥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무집의 문이 열렸습니다.
“음? 어라? 웬 오리들이야?”
- 이 오리들, 추워서 왔나 본데요?
“어머, 딱해라! 야윈 것 좀 봐~”
오리들의 웃음소리에 나온 나무꾼 가족들이 우리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디서 버린 건가? 비실비실한데 다들?”
- 이 오리들, 그 남는 닭집 있잖아? 거기 넣어주면 되겠는데요?
“야 얘들아~ 저기 들어가렴. 괙괙~ 저기로 들어가! 괙~”
나무꾼 가족들은 우리를 둥지 쪽으로 몰았습니다. 모두가 추위와 배고픔에 지치고 힘든 상태였는지라 우린 차례대로 따뜻한 불빛이 세어 나오는 둥지로 들어갔습니다.
―철컥!―
형제들은 기운이 없는 엄마를 둥지에 모시고, 가물가물한 정신에 밤하늘의 달과 가장 큰 별을 보았을 때 저는 금방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꼭? 꼬곡? 얘네 뭐야? 오리들이잖아?”
- 꼭? 언제 왔대? 주인이 데려왔나? 일어나 봐 꼭꼭!
“앗! 엄마야!”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 뾰족한 부리와 붉은색 모자를 쓴 새들이 콕콕 찌르고 있었습니다. 오리들은 제 비명에 놀라 눈을 떴습니다.
“뭐야? 누구세요! 아저씨는 누구세요!”
- 나? 닭 처음 봐? 꼬꼬?
“닭이요?”
- 꼭! 얘네 우릴 처음 보나 본데? 꼭!
엄마는 힘겹게 일어나 닭들에게 말을 이었습니다.
“저희는 초록 연못에서 온 오리들입니다. 어젯밤에 왔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 이 아줌마는 꼭! 닭을 아나 본데? 안녕하세요! 잘 지내봅시다. 꼭!
“이 아이들은 제 아이들입니다. 얘들아 인사드리렴.”
- 안녕하세요……. 초록 연못 오리입니다.
닭아저씨들은 서로를 번갈아보며, 갸우뚱 거렸습니다.
“잉? 근데 초록 연못이 어디야? 꼭!”
- 나도 몰라 꼭! 어디 농장인가 봐. 아무튼 잘 지내요!
눈을 뜬 둥지는 둘로 나뉘어 있었고, 한쪽은 닭 가족들이 쓰는 듯했습니다. 바닥에는 따뜻하고 푹신한 지푸라기들이 가득했고, 커다란 지붕과 구석마다 그릇에 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때 나무꾼들이 둥지 마당의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오리들 일어났구나? 배고팠지? 밥 먹자!”
- 밥이다 꼭! 밥 먹자!
나무꾼은 모이를 뿌렸고, 닭들은 일제히 마당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바닥에는 갖가지 씨앗과 풀 조각들이 가득했습니다. 우리 오리들도 그간 쉽게 볼 수 없었던 씨앗들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아이고,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많이 먹으렴.”
- 꼬꼬 꼭! 꽥꽥꽥! 맛있다! 맛있다!
형제들은 허겁지겁 밥을 먹었습니다. 엄마는 그 모습을 슬픈 눈으로 지켜보았지만 나와 눈이 마주치자 천천히 기어와 조심스럽게 모이를 주워 먹었습니다. 저도 모이를 주워 먹었습니다. 사실 그간의 배고픔에 모든 걱정이 사라질 것만 같은 맛있고 풍족한 맛이었습니다.
배를 좀 채우고 정신이 들었을 때, 나무꾼의 집은 큰 마당이 펼쳐 있었고, 주변은 숲으로 메워져 있었습니다. 넓은 마당 구석에 큰 둥지 마당이 따로 있었고, 우리의 둥지 마당엔 높은 나무 울타리가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밤이라 볼 수 없었던 둥지 주변의 풍경에 저는 크게 당황해서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저 울타리, 높은 울타리가 보세요.”
- 저건……. 살쾡이나, 여우로부터 우릴 보호하는 벽이란다.
형제들은 미소를 띠고 서로를 쳐다보며 고갤 끄덕였습니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여우들이 못 들어올 거야!”
"튼튼해 보여! 정말 여긴 밥도 많이 있고 안전한 곳이야!”
모든 오리들이 안심한 듯했지만, 저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엄마에게 다가갔습니다.
“엄마, 저는 왠지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 아가, 하얀 연못보다 이곳이 더 안전하단다.
“엄마, 그럼 이번 하얀 연못만 피하고, 다음엔 다시 우리 연못으로 돌아가요.”
- …….
“엄마, 우린 초록 연못이 있잖아요. 다시 초록 연못이 되면 다시 돌아가면 되잖아요?”
- ……. 그러자꾸나.
엄마의 짓눌린 대답으로 불안감을 지울 순 없었지만, 기운 없는 엄마의 모습에 더 이상 어떤 질문도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이곳은 답답하면 넓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배가 고프면 바닥에 떨어져 남아도는 모이를 먹으면 되는 곳이었습니다. 추우면 들어와 지푸라기를 덮고, 야밤에 여우의 울음소리에도 불안하지 않은 모든 것이 완벽한 둥지였죠. 형제 오리들의 유일한 걱정은 엄마였습니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추위에 타지 않도록 깃털을 뽑아 엄마가 눕는 지푸라기에 섞었고, 모이가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엄마의 부리 앞에 주워 놓고 나서야 자신들도 밥을 먹었습니다.
저는 이유 모를 불안감을 주장하며 분위기를 헤칠 수 없었습니다. 부족할 것 없는 날이 매일 반복된 만큼 시간은 매일 빠르게 흘렀고, 밤 사이에 물통이 얕게 얼어붙는 하얀 연못의 계절이 찾아오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