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 하얀 연못

by 이고


그날 이후, 저는 나는 연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둥지 구석에 틀어박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붕위로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닭 아저씨의 말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스스로 알고 있었죠. 둥지에서 뛰어오른 마지막 연습까지도 어린 시절 연꽃 바위에서 뛰어오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오히려 더 몸이 무거워진 느낌이었습니다. 그 섬뜩한 기분을 잊기 위해 스스로 무시하고, 과거의 이야기들을 곱씹으며 밝은 척했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형제들이 밥을 먹을 때 일부러 굶어가며 몸무게를 줄여보려고도 했었죠. 그러나 다 큰 오리의 배고픔은 어린 시절의 솜털만큼 가볍지 않았습니다.


발바닥은 모두 까졌고 떨어지길 반복한 무릎은 가끔씩 잠을 설치게 할 정도로 시립니다. 어린 시절부터 혹사당한 날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힘이 빠집니다. 외면하고 입술을 깨물며 눈을 질끈 감지만 나도 모르게 가슴 속에서 차오르는 불안감이 무겁습니다. 스스로 망가져 간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몸으로 이미 느꼈지만 이건 일종의 시련이며, 이를 극복해야 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더 끊임없이 뛰었습니다.


누군가의 비판이나 비웃음, 야유는 저의 고통이 아닙니다. 부서진 몸과 무관심 또한 저의 고통이 아닙니다.

나의 노력이 나의 고집임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나 자신을 새하얗게 잃어버리게 됩니다.


단 5초라도 나를 증명할 수 있다면, 형제들의 놀라움과 그간 걱정스러운 눈빛의 엄마에게 미소를 안겨 줄 수 있다면. 나를 보고 밤하늘 가장 큰 별이 크게 한번 반짝이길, 달오리가 “해냈구나! 친구야!” 소리 지르며 크게 웃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그간 꿈꾸던 것들이 전부 고요해집니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느리게 흘렀습니다. 모이가 뿌려지면 주워 먹고, 지푸라기를 뭉쳐 둥지를 만듭니다. 물통에 물이 얼면 부리로 밀어 치우고, 흙을 퍼서 화장실을 청소합니다. 주변에 알을 낳은 오리가 있으면 깃털을 뽑아 둥지에 넣어줍니다. 알들이 깨지지 않게 지켜봐 주며 둥지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하염없이 밤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별똥별이 날아가도 더 이상 설레거나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바라보고 있노라면 깊은 물속 같은 시커먼 하늘이 생각을 잡아먹고, 끌려 들어가듯 나도 모르게 잠들기 때문이죠. 그뿐이었습니다.


“꼭! 저기……. 오리 양반……. 그 괜찮나?”

- …….


“꼭… 이제 좀 오리답네…….! 보기 좋아! 꼭!”
- …….


“아니……. 밥 좀 잘 챙겨 먹고, 왜 이리 핼쑥해…….”

- …….

“꼬! 이거 토끼풀인데……. 구하기 힘든 건데……. 추워서 쫌 …시들었어…. 먹으라고...”

- …….


“꼬…. 그럼……. 또 먹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꼭…. 꼬…”


닭 아저씨는 토끼풀을 앞에 두고,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종종거리며 갔습니다. 어린 시절 제일 좋아하던 토끼풀이었지만 저는 아무런 입맛이 나지 않았습니다. 밤하늘 아래에서 달오리와 함께 뜯어먹었던 토끼풀의 맛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뭐가 그리 맛있다며 깔깔거렸었는지.


달오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토끼풀을 다른 형제 오리의 알둥지 쪽으로 넣어줬습니다.


“야! 눈 온다 꼬곡! 눈 와 꼭!”

- 와아! 이게 눈이구나!


옆집 아줌마가 말했던 회색의 넓은 구름, 미운(彌雲)입니다. 형제 오리들은 처음 본 눈에 신나 여기저기 뛰어다녔습니다. 부리를 열고 눈을 받아먹기도 하고, 소복하게 쌓이는 눈에 굴러다니며 웃고 떠들었습니다. 닭들은 부산스럽게 눈을 밀어 치우고, 눈을 피해 지푸라기들을 주워 들며 둥지로 들어갔습니다.


달오리의 솜털 같은 뭉게뭉게 커다란 회색 구름에서 새하얀 별이 펑펑 쏟아 내렸습니다. 금세 온 세상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품속에서 달오리가 주었던 회색 깃털을 손에 쥐어보았습니다. 말을 더듬는 달오리의 말투같이 띄엄띄엄 추억이 떠오릅니다.


달오리가 있는 곳에도 이렇게 별이 내리겠죠. 그리고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겁니다. 달오리는 어떨지 모르지만, 저는 기분 좋은 그리움을 할 수 있지 않아 더욱 슬퍼집니다.



눈은 며칠 내내 계속됐습니다. 나무꾼은 눈 때문에 먹을 것이 떨어졌다며 먹이를 주지 못했고, 이젠 눈에도 시큰둥해진 오리들은 배고픔을 달래며 닭처럼 둥지에 틀어박혀 추위를 피했습니다. 별들이 쌓여 온 세상이 하얀 연못이 된 고요한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구석에 앉아 눈 내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던 저를 엄마가 조용히 불렀습니다.


“아가…….”

- 네, 엄마. 어디 불편하세요?


“아가……. 우리 아가…….”

- 네, 엄마. 말씀하세요.


“엄마랑… 같이 별 볼까?”

- 네…? 엄마 제가 도와드릴게요.


기운이 없는 엄마는 부축을 받아 밤하늘이 보이는 구석 창가에 앉았습니다.


“아가……. 눈이 많이 오는구나……. 오늘도 별똥별을 보았니?”

- 네……. 몇 개 봤어요.


“좋구나… 어디로 가던데?”

- 하나는 달 아래로 가고, 하나는 산 너머로 갔어요.

“산 너머로……. 호호… 그래….”


“아가, 저기 보이는 큰 별… 저 별이 아빠 별이란다.”

- 엄마…….


은하수가 뜨던 밤, 엄마와 처음 밤하늘을 봤을 때처럼 엄마는 힘겹게 날개를 들어 가장 큰 별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숨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그래… 넌 알고 있었겠지, 아빠는 너희들이 알에서 나오기 전에 저 별이 되었단다…"

- 아빠…?


"그리고… 네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창가… 이 자리에 앉아 있었어.”

- 네?!


엄마는 별을 바라보며 나긋나긋 말씀을 이었습니다.


“아빠는 물소리 숲 나무꾼 집… 이곳에서 태어났단다. 어린 시절부터 아빠는 밤하늘을 보는 걸 좋아했어. 나에게 밤하늘을 보여주며 별과 달을 이야기했지…….”


“아빠는 저 별똥별이 떨어지는 산 너머로 가고 싶어 했어……별들이 가는 곳으로 가겠다고…”


“주변에서 모두 미쳤다고 했단다. 별똥별을 따라서 따뜻하고 안락한 둥지를 떠나, 여우와 늑대들이 있는 숲으로 가는 건 죽겠다는 얘기였거든. 하지만 아빠는 늘 밝고 자신 있게 말했어… 할 수 있다고…”


“은하수가 산 너머로 쏟아지는 밤, 아빠는 몇몇의 오리들과 둥지를 떠났단다……. 엄마도 그 오리들 중 하나였어.”


“우리는 초록 연못에 도착했고, 우린 정말 행복했단다. 난생처음 본 아름다운 숲과 물, 소리와 향기에 취했고, 아빠는 밤하늘을 보며 즐거워했지…”


엄마의 입가엔 옅었지만, 정말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습니다.


“몇 번의 숲이 지나가고, 다시 하얀 연못이 다가왔을 때 우린 너희들을 가졌단다. 아빠는 알에서 너희들이 태어나면 먹을 게 많이 필요하다며 여기저기 먹이를 구하러 갔단다.”


“사실 하얀 연못에선 우리 가족 모두를 먹일 만한 먹이가 충분하지 않았어… 아빠가 걱정돼서 내일 가면 안 되겠냐고 말했지만 아빠는 괜찮다며 나섰고, 나도 엄마로서 더 만류할 수 없었단다…”


“별이 뜨기 전에 돌아온다던 아빠는… 눈이 한가득 쏟아지는 며칠 밤까지 돌아오지 않았단다.”


엄마의 눈가에 또 다시 별똥별이 말갛게 드리웠습니다. 그리고 휑한 날개로 저의 새하얀 날개를 감싸며 쉬어가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눈이 그친 날……. 밤하늘에 전에 보이지 않던 크고 환한 별이 떴단다…. 나는 알았어. 아빠가 별이 되었다는 걸.”

- 엄마……?

“아빠가……마지막에 둥지를 떠날 때…! 내가 말릴 때…! 웃으며 아빠가 그랬단다! 내 별똥별이라고…! 내 꿈이라고……!”

엄마는 결국 눈물을 떨어뜨리고 우시며 내 날개를 있는 힘껏 잡았습니다.


“……아가! 넌, 아빠의 꿈이야!”

- 엄마……!


“아가…! 흐흑……! 너는…별똥별이야…! 아빠의 꿈이고! 엄마의 꿈이란다…!”


엄마가 나의 얼굴을 쓰다듬으시며 오열하셨고, 그 모습에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가! 너는 별똥별이야! 아가… 그러지 말거라…! 너는 별똥별이야! 엄마가 미안하다…”

- 엄마!! 엄마가 뭐가 미안해요……. 흐흑… 뭐가… 엄마 울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지금 네 모습을 보면… 아가… 그러지 마라……! 내 아가…!”


엄마의 마르고 휑한 몸을 받쳐 자리에 뉘었습니다. 엄마는 나의 망가진 날개와 상처 가득한 발을 잡고 계속 우셨고, 나도 눈물을 닦으며 엄마가 잠드실 때까지 눈물을 닦아드리고 날개를 잡아드렸습니다. 그 야윈 몸에서 수 없이 흐르는 눈물들을 주워 담아 드릴 순 없을까.


찢어지는 아픔에 저는 제발, 제발, 하늘에 기도하면서 엄마의 이마를 쓰다듬었습니다.




엄마는 다음날에도 일어나시지 않으셨습니다. 형제 오리들은 조용히 감은 엄마의 눈이 지긋이 뜨길 기다리며 울부짖었습니다. 하루 종일 둥지에는 오리 울음소리만 울렸고, 눈이 그친 밤하늘엔 가장 큰 아빠 별 바로 옆으로, 새 하얗게 빛나는 새로운 별이 떴습니다.



엄마는 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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