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 별과 달과 구름

by 이고


평소와 다른 오리들의 울음소리에 나무꾼은 둥지로 달려왔고, 사태를 파악한 나무꾼은 조심스럽게 엄마를 들어 둥지를 나섰습니다. 떠나가는 엄마의 몸을 부여잡고 싶었지만 우리들의 울음 속에 울타리 자물쇠가 철컥하고 차갑게 대답했습니다. 그날 저녁 나무집 지붕 기둥에서 근래에 볼 수 없었던 검은 구름이 피어올랐습니다. 그 검은 구름이 새카만 밤하늘에 묻혀 흩어지고 그 사이로 엄마별이 반짝였습니다.


저는 밤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아빠별과 엄마별을 바라보며, 엄마가 마지막에 누워있던 자리의 낡은 깃털과 지푸라기를 집어 옅어지는 엄마 향기를 붙잡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엄마, 거기 있어요? 엄마가… 보고 싶어요.'


하늘 위에 엄마별은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반짝일 뿐이었고,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대답 없는 하늘 위로 수많은 밤을 보냈습니다.




이젠 둥지에서 엄마의 향기도 사라졌고, 쌓인 눈도 녹아내렸습니다. 따뜻한 햇살에 숲과 나무들이 촉촉하게 움텄지만 저의 말라버린 눈가는 별빛에도 반짝이지 않았고 그저 매일 반복된 일과에 흘러갔습니다. 몇몇의 형제들은 아기 오리들을 낳았고 둥지 안은 시끌벅적하게 붐볐습니다. 둥지는 더 커졌고, 울타리는 더 높아지고, 둥지 마당은 더 넓어졌습니다. 모두가 자신에게 충실하고 서로 어울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 저는 전과 다르지 않게 그저 조용히 주어진 일을 하고, 밤이면 구석에 홀로 별을 보는 오리였습니다. 가끔 제가 궁금해 다가오는 호기심 어린 아기오리들에게, 저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저기 있는 어른오리들을 잘 따르라는 말만 해줄 뿐이었습니다.


시간은 전과 달리 빠르게 흘렀습니다. 그렇게 또 네 개의 숲이 지났습니다. 하얀 연못의 계절을 지날 때, 엄마 얘기를 하는 오리들은 많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곧 엄마가 되었고 아빠가 되었기 때문이겠죠.




눈이 녹아 물소리 들리기 시작한 밤, 밤하늘에 가르는 빼곡한 은하수가 펼쳐졌습니다. 은하수는 달을 지나 산 너머로 길게 이어졌습니다. 반짝이는 가장 큰 별인 아빠 별이 은하수에 적셔져 더욱 반짝였습니다. 엄마 별도 아빠 별 옆에서 옅게 미소를 띠며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엄마별이 새하얀 꼬리를 그리며 은하수를 따라 산 너머로 날아갔습니다. 별똥별이었습니다. 엄마는 별똥별이 되어 산 너머로 날아갔습니다. 저는 마당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엄마별이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엄마! 어디 갔어요? 어디 갔어요! 엄마!!!”


오밤중에,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간 저 때문에 깜짝 놀란 닭과 오리들이 하나둘씩 일어나 마당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껑충 뛰었지만 산 너머로 넘어간 엄마별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엄마와 처음 밤하늘을 봤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 엄마오리: '후후, 아가야. 우리는 모두 별이 된단다. 엄마는 저기 가장 큰 별처럼 언제 어디서든 너를 지켜보고 있을 거야. 언젠가 너도 별이 되어 엄마에게 찾아오렴, 언제든 널 기다리고 있을게. 알겠지?'


순간 머리에 번개가 꽂힌 듯,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둥지 지붕 위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얼마 만에 올라온 지붕인지, 아득한 높이에 다리가 후들거리고 바람에 몸이 휘청거렸습니다.


“별오리 아저씨! 위험해요! 내려오세요!”

“오리 양반! 형씨 왜 그래! 내려와!”

“지푸라기! 지푸라기 가져와!”


닭들과 형제 오리들은 허겁지겁 지푸라기를 챙겼고, 아이들의 눈을 가렸습니다. 힘 없이 흔들리는 몸과 아직까지 떠나지 않고 남은 하얀 연못 바람이 얼굴을 베었지만, 저는 땅바닥 아니라 아득히 펼쳐진 은하수 속으로 풍덩 빠져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은하수에 몸을 맡기면 그 옛날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산 너머로 갈 수 있을 까요. 은하수 연못에서 젖은 몸을 털어내며 먹었던 달오리와의 토끼풀 맛을 기억할 수 있을 까요. 별이 되어 간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요.


수 없이 던지고, 빠지고 깨진. 나는 별똥별일까요? 이대로 별똥별이 되어 산 너머로 날아간다면 만날 수 있겠죠.


“별 아저씨! 꺄악! 뛰지 마요!”

“별오리야! 안 돼! 뛰지 마!”

“형씨! 멈춰!! 안 돼!!!”


이렇게 올라올 때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뛰어 본 적은 없었습니다. 난 또다시 뛸 테니까, 이렇게 올라올 때마다 깨진 무릎과 날개가 욱신거려 무섭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섭지 않아요. 마음에 떠오르는 얼굴들.


- ‘인마, 남들이 놀리고 손가락질하는 것에 신경 쓸 필요 없단다.’

‘내가 널 다시 보니, 너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헤헤헤!’


- ‘하늘을 나는 상상과 믿음이 곧 나의 날개가 된단다.’

‘그때 구름 호수에 오면 내가 맛있는 물고기를 잡아주마.’


- ‘아가, 엄마 말 들으렴. 우리는 날 수 있는 동물이 아니란다.’

‘아가…! 너는 별똥별이야…! 아가… 엄마가 미안하다…’


- ‘이 밤하늘 연못의 친구인 거지! 내가 나중에 별똥별이 돼서 달님인 너에게 날아가느라 힘들면 네가 구름이 되어, 나를 업어 다시 땅으로 내려줘, 그럼 되겠네’


- ‘별오리야, 너는 정말 별똥별이 될 수 있을 거야. 나는 알고 있어. 네가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로 밤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게 될 거라는 걸.’


날개를 펴고 은하수를 바라보며 눈을 감습니다. 귓가에 은하수를 담은 연못의 시냇물 소리가 들립니다. 날갯짓을 시작합니다.

코끝으로 이는 초록 연못의 풀 향기가 느껴집니다. 이렇게 은하수 산 너머로, 뛰어오릅니다.



― 퍼덕, 퍼덕! 펄럭, 펄럭! ―


“날… 날았어!! 오리 양반이 날았어!!!!”


몸이 가볍고, 날개가 커진 것 같았습니다. 밑으로 둥지의 울타리와 놀라움에 가득한 형제, 닭들의 얼굴들이 보입니다.

이렇게 높았군요. 바람이 이렇게 가득했군요. 별이 더 밝아 보였습니다. 달이 더 커 보였습니다. 구름이 이렇게 부드러웠군요. 은하수, 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웠네요. 이젠 눈을 감지 않아도 보여요.




“별오리 오빠!!! 안 돼!!!”


―투두둑, 투둑! 쿠쾅!―




정신이 들었을 때, 저는 울타리 건너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밤하늘엔 아직도 은하수가 가득했습니다. 한쪽 다리가 꺾이고 양쪽 날개가 완전히 부러졌습니다. 울타리 건너편에선 오리와 닭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뛰어왔습니다. 온몸이 진흙과 피가 뒤범벅되어 엉켜있었습니다.


“형! 이러다 형 죽겠어! 가만있어!”

“꺄악! 오빠 어떡해! 으앙!”

“꼬끼오~! 형씨 가만있어! 나무꾼 부를게! 꼬끼오!”


저는 비틀거리며 일어났습니다. 저는 아직 가야만 했습니다.


“얘들아……. 나는… 별똥별은…. 간다… 잘 있어…. 나중에 보자…”


아우성을 등뒤로 저는 절뚝거리며 숲 속으로 향했습니다. 오래전에 나무꾼의 집으로 엄마를 모시고 걸었던 그 길을 돌아갑니다. 저와 같은 이 길을 걸었던 아빠도 저 은하수를 보며 걸었겠죠? 아빠의 꿈으로 가는 길.

아빠, 보고 있죠? 하늘의 아빠별을 바라보며 웃음이 났습니다.

달오리가 이 길을 걸었겠죠? 돌아가 저를 보러 왔었을까요? 연못을 떠나 물푸레나무 언덕으로 걸어가던 그 쓸쓸한 뒷모습이, 돌아오는 길엔 밝은 웃음이었다면 좋겠어요. 내가 연못에 없어 많이 당황했을 텐데, 오늘은 은하수가 떴으니 은하수 연못에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빨리 가야겠어요. 구름 호수에 데려가야 하거든요.


품속에 넣어뒀던 달오리의 회색 깃털과 엄마의 낡은 깃털, 엄마가 누워 있던 지푸라기 조각을 꺼내 쥐고 앞으로 절뚝이며 나아갔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엄마… 나… 별똥별이 맞았어요…….”


“내가 할 수 있다고 했죠…? 엄마 말이 맞아요…”


“나… 나 날았어요…!”


“내가, 날았어요. 다 봤어요……! 형제들도 닭들도… 다 봤어요!”


“내가, 엄마 아들이 날았다고요…! 지금… 엄마한테 가고 있어요!



저는 별들을 따라 산 너머로, 그렇게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얼마 뒤 눈앞에 수많은 별들이 담긴 은하수 연못이 보였습니다. 연못 속의 달님도 반가운 듯 일렁거리며 밝게 비추었습니다.

더 이상 걸을 힘이 없네요. 어린 시절 그렇게 뛰어올랐던 연꽃 바위에 앉아보니, 이렇게 작았었나. 이 조그마한 바위가 어찌나 미끈거렸는지. 이젠 다 부르터지고 찢긴 발바닥을 바위에 대봅니다. 이럴 줄 알았어요. 포근합니다.


엄마는 어디 있을까요. 예전에 우리 둥지는 그대로일까요. 달오리는 오고 있을까요.




그때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야! 여기 있다! 오리 여기 있어!”

- 어휴 꼴이 이게 뭐야? 그러게 왜! 어휴!


나무꾼들이 그물과 몽둥이를 들고 오더니, 뒤에서 제 날갯죽지를 잡아당겼습니다. 안돼요…! 난 아직, 엄마! 친구를 기다려야 해요! 놔요! 이거 놔요! 놔! 저는 있는 힘을 다해 몸부림쳤습니다. 하지만 꼼짝 할 수 없었습니다.


“야 잘 좀 잡아봐, 어? 자꾸 퍼덕거리잖아!”


제발 좀 놔줘요! 나는 아직 엄마도, 친구도 못 만났단 말이에요! 엄마! 달오리야! 어디 있어! 나 왔어! 나 여기 왔어요! 다 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퍼덕거리며 다 부러진 날개를 흔들었습니다.


“이놈이 왜 이리 말썽이야! 어? 또? 빨리 잡아!”

- 꽉 눌러놔, 기다려봐! 이걸 잡아서……!


―투둑―



저는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론가 풍덩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아요.

흐릿해져 가는 눈 앞에 또 다시 멀어지는 연못이 보입니다. 이제 느껴져요. 확실히 느껴져요. 기억이 모두 납니다.

제 고향은 수련의 잎사귀가 초록빛 그늘을 만들고, 부서지는 햇살만큼 반짝거리는 잔잔한 물결이 이는 연못이죠. 우리는 이곳을 초록 연못이라고 부릅니다. 제 첫걸음마 헤엄, 발끝에 닿았던 살랑거리는 물고기 친구들의 간지러운 꼬리가 아직도 선명합니다. 어머니의 포근하고 보드라운 하얀 깃털을 기억해요. 눈을 뜰 때마다 너무 화사한 세상에 신비함보단 겁이 났지만, 기분 좋게 바스락 거리는 나뭇가지, 뽀글대는 연못의 숨 방울, 형제들의 달달한 아기 냄새, 흙내 나는 친구의 웃음소리까지 모든 게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나른하게 쓰러지게 하는 그 모든 아득한 것들이, 이젠 기억이 납니다.


멀어지지만 가까운, 나는 그곳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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