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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Mar 20. 2023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잃을 수 없는 존재

내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하다는 기분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버린 순간이었다.

뜨겁고 더웠던 날씨에 딱이었던 민소매가 차갑고 서늘해진 순간. 한 창 고르고 골랐단 빨간 산딸기며 복숭아를 모두 떨어뜨렸던 순간. 노란 레몬무늬가 가득했던 남색접시를 놓쳐 깨져버렸던 순간.

입속에서 달콤한 레몬향을 품었던 사탕이 돌처럼 변해 버렸던 순간.

나는 소리를 지르며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기 시작하였다.


아이가 사라졌다. 세 돌이 막 지난 어린 재이가 사라졌다.   

그릇가게에서 분명 내 손을 잡고 있었는데, 과일가게에 와서 과일을 고르다가 아이의 손을 놓친 것이다.  

더운 여름날, 순간의 실수로 아이를 잃어버렸다.           




2017년 10월 가을 방학을 맞아 이태리 남부여행을 계획했다. 이번 여행은 특별히 부모님을 로마에서 만나 이탈리아 남쪽인 나폴리를 거쳐 소렌토, 폼페이, 아말피 해안가 지역을 둘러보는 기차 여행을 계획하였다. 이탈리아의 10월은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더군다나 우리가 방문하는 남쪽지역은 낮과 밤에 온도차가 벌어지는 가을에 가까운 여름날씨였다. 한낮의 더위와는 다르게 한풀 꺾인 밤 기온은 우리의 여행을 충분히 편안하게 해 주었다. 만 8살이었던 첫째 아이도 힘들다는 목소리 보다 매일 먹는 아이스크림과 피자에 기분이 좋았으며, 아직 유모차를 타는 둘째 아이는 기차여행에 신이 났다.

로마를 거쳐 나폴리, 폼페이등 걸어 다니는 관광 일정이 많았던 탓에 푸른 바다가 보이는 소렌토의 풍경에 도착하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 3일을 머문다는 생각에 기분이 한껏 부풀어졌다. 부모님을 모시고 하는 여행이라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도 마음이 가벼웠다. 소렌토의 시내에 가니 각종 샵, 호텔, 골목 시장들이 보였으며 여름 끝자락을 붙잡으려는 듯 하얀 옷과 휴양지 모자를 쓴 우리 같은 관광객으로 붐볐다. 관광기차가 보여 얼른 기차를 잡아 타고 소렌토를 한 바퀴 돌아보는 여유롭고 시원한 시간도 보냈다.


소렌토의 시내에 내려 이곳저곳 구경하려는데, 유모차가 갑갑한 둘째 아이는 곧 걸어 다니려고 하였다. 어린아이와 손을 꼭 붙잡고 혼이 빠진 듯 레몬이 그려진 그릇가게, 기념품 가게, 가방 가게등 아이와 둘이서 이곳저곳 기웃거렸다. 단체로 다니기엔 좁은 골목이라 부모님은 부모님끼리 우리들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시며 구경하셨다. 레몬이 가득 그려진 파란색 접시 가게에서 접시 몇 개를 사고 나왔는데, 예쁜 과일들이 향긋한 냄새를 피우며 나를 잡아 이끌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베리 종류를 잔뜩 집어 계산을 하려고 정신 차려 보니 나는  아이의 손대신 산딸기와 베리를 넣은 봉지를 들고 있었다.


오던 길을 반복하여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아이의 이름을 불러댔다.

“재이야!! 재이야!!”

아무리 불러도 아이의 작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마침 아까 들렀던 그릇가게가 눈에 들어왔고, 열려 있던 커다란 원목 문에 작은 손가락이 문 뒤에서 붙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의 손이다.

아이가 “깍꿍” 하며 문뒤에서 나와 나를 보며 까르르 웃었다.

너무 놀랐던 내 마음, 아이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기겁했던 길고 길었던 십여분의 순간이 나의 짧은 한숨과 함께 한껏 달려가 아이를 안았다.

“엄마가 놀랐어, 재이가 없어진 줄 알고. 어디에 있었어… 미안해. 우리 재이도 놀랐지? 사랑해. 엉엉.. “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걸 인지한 순간 나는. 온갖 상상을 했고,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혼비백산이 되어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톰슨 씨에게 아이를 목마 태워 이동하자고 했다.





이탈리아 골목길 시장에서 아이를 잃어버렸다가 찾은 그날을 잊지 못한다. 아이들은 이제 내게 잃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아이는 이제 만으로 8살이고 혼자 학교와 집을 오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매일밤 잠들기 전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줄 때마다 아이는 묻는다.

“엄마, 엄마는 재이를 사랑해? “

“그럼 엄마는 재이를 사랑하지.”

“얼마큼 사랑하지?”

“재이가 지구에서 우주를 두 번 다녀올 만큼 사랑하지.”

“언제 사랑하는데..?”

“재이가 엄마에게 웃을 때, 재이가 울 때, 재이가 치카 혼자 할 때, 재이가 노래할 때… 무엇을 해도 사랑하지.”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엄마 나도 엄마를 사랑해.”  


나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 무조건 다 해주는 부모는 아니다. 종종 악어로 변하고 부족한 엄마이지만 종종 아이를 붙잡고 쉽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아이가 내 곁에 있는 시간 동안 사랑받는다고 느껴주기를. 사랑한다고 하는 나의 마음이 아이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번 이야기는 ’희.로. 애. 락. 애. 오. 욕‘ 중 ‘애(사랑)’ 입니다.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성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동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 애. 락. 애. 오. 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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