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리더는 태양처럼
어느 날 북풍과 태양이 서로 누가 더 강한지 다투기로 하였습니다. 지나가는 여행자의 외투를 벗기게 하는 쪽이 이긴다고 내기를 했습니다.
북풍이 먼저 나서서 세차게 바람을 불었습니다. 그러나 여행자는 오히려 외투를 더 꽉 여미며 버텼습니다.
태양의 차례가 되자, 태양은 따스한 빛을 내리쬐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함에 여행자는 스스로 외투를 벗었고, 더 나아가 시냇가에 멈춰 목욕을 즐기며 완전히 자연에 몸을 맡겼습니다. 태양의 따뜻함은 여행자에게 신뢰와 안락함을 주었고, 스스로 마음을 열어 옷을 벗게 만들었습니다.
특전교에서 공수기본 지상훈련 중 교관님께서 언급하셨던 북풍과 태양 이야기.
교관님은 패잔병처럼 뜨거운 태양 아래 굴복한 우리를 바라보며, 내리쬐는 태양을 가리켰다.
그리고 외쳤다.
교관은, 여러분이 태양과 같은 리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비바람이 몰아쳐도 결코 여행자의 외투를 벗기지 못했지만
따뜻한 태양의 햇살은 은은히 여행자를 비춰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태양 같은 리더가 되십시오!
30분 전.
바닥과 한 몸이 되어 뒹굴던 우리 위로, 교관들은 끝없이 물을 퍼부었다. 뜨겁게 달궈진 운동장은 금세 진흙탕으로 변했고, 우리는 흙과 땀과 물에 뒤엉킨 채 서로의 얼굴조차 알아보기 힘들었다. 이곳에 ‘덜 힘든 곳’ 따윈 없었다. 운동장의 모든 지점이 지옥이었고, 더 지옥 같은 지점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아직 심장이 멈추지 않고 뛰고 있다는 것이 의문스러웠고, 그 사실이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단상 위 교관의 눈에 비친 우리는, 군기 따윈 다 던져버린 채 절규하며 버티는 패잔병들처럼 보였을 것이다.
더는 볼 수 없었던 걸까. 교관님은 호루라기를 불어 우리를 집합시켰다. 집합이 끝난 뒤엔 어김없이 정신교육을 위한 연설이 이어졌다.
군대에서 교관들이 장황한 연설을 자주 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강인한 정신과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서.
둘째, 훈련병들에게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을 주기 위해서.
하지만 당시의 우리는, 그 말들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모두가 과호흡을 하며, 다시 그 지옥 같은 진흙 속으로 끌려가기 전 겨우 몇 분의 시간을 이용해 생존 본능을 다듬고 있었을 뿐이었다. 마치 건조기와 세탁기를 동시에 돌리는 듯한 고통을 갓 빠져나온 우리는 그 어떤 명언도, 그 어떤 교훈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 이야기가 가슴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 장황한 연설을 했던 그 교관님이 어쩌면 내게는 태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외쳤던 정신과 신념은
내가 바랐던 장교의 모습이었고,
내가 이루고 싶었지만 늘 닿지 못했던 마음가짐이었으며,
끝끝내 온전히 맞서지 못하고 무너지기만 했던
그 태양 앞에 당당히 선 전사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 말에 마음이 녹았고,
그에게 인간적인 존경과 깊은 감동을 느꼈다.
그는 늘 우리에게 외쳤다.
여러분들이 멋진 장교가 되어서 특전사로 돌아오면,
그때는 제가 여러분께 정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칼에 수십 번 찔리고 총을 수백 발 맞아도
여러분을 반드시 지키고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날 그의 모습은,
가장 강인했던 사나이의 가장 충성스러운 무릎 꿇음이었고,
가장 평범했던 한 가정의 아버지가 들려준 진심 어린 조언이었다.
그는 부사관이었으나,
내게는 누구보다 위대한 장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