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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가 되면,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by 담담이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나이를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


수없이 들어온 말들이다. 하지만 아직 청년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내가 이 말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건, 어쩌면 오만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들어 이 말들이 조금씩 와닿는다. 조직이라는 구조 안에서는 누구나 언젠가 선배가 된다. 후배였을 때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들, 납득되지 않았던 선배의 말과 행동이 서서히 이해되기 시작했다.




나는 늘 그런 선배가 되고 싶었다.
위엄보다는 다가가고 싶은 사람.

가르침보다는 함께하고 싶은 사람.


그래서 일부러 장벽을 허물었고, 친근함을 우선하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후배들은 선배를 여전히 어려워한다. “말 편하게 해”라고 해도 말을 놓지 못하고, “편하게 대하라”라고 해도 어디선가 경계를 둔다.


그리고 그런 후배들이 또 예뻐서, 고작 1~2년 선배 주제에 괜스레 조언을 하게 된다. 장황한 이야기, 지나치게 길었던 충고, 결국 돌아보면 늘 그랬다. “또 나만 너무 많이 얘기했네.”


후배가 나와의 대화가 끝나고 떠나고 나면 이런 후회가 밀려든다. “그냥 들어주기나 할걸.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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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훈련 중이었다.

산속의 칼바람이 살을 베듯 스쳐갔고, 1분 1초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총을 다뤄야 했기에 두꺼운 장갑은 낄 수 없었다. 차가운 장비들은 얼음덩어리처럼 손마디마디를 무감각하게 만들었고 날이 선 금속처럼 더욱 차갑고 냉정하게 우리를 몰아붙였다.


그때였다. 훈련을 주관하는 교육장교가 외쳤다. “대령님 오신다! 정신 차리고 장비 정비해!”

익숙한 일이었다. 높으신 분들은 가끔 훈련장을 방문해 격려의 말을 전하고 떠난다.


“이 선배도 40년 전 이런 훈련을 했어.”
“이 추위도 결국은 너희 피와 살이 될 거야.”
“이 정도 추위에 약해지면 안 되지.”


대령님의 말씀은 진심이 담긴 조언이었다. 하지만 그 진심은, 이미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우리에게는 닿지 않았다.

20분 넘게 이어진 연설은 오히려 우리의 피로감을 증폭시켰다. 그 누구도 귀 기울일 수 없었다. 우리의 현실과 그분의 말 사이엔 단지 계급이 아닌, 감정의 간극이 있었다. 진심이었지만, 그 방식은 너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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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비슷한 상황 속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 일이 있었다. 무더운 여름, 유격 훈련이 한창일 때 보병병과장인 투스타 장군님이 위문 방문을 왔다.


더운 여름 고생 많다는 짧은 인사, 그리고 전 생도에게 아이스크림 쭈쭈바 하나씩. 그걸로 끝이었다.

그러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생도들은 다시 힘을 냈고 모두 병과장님을 칭송했다. 누군가는 “별것도 아닌데”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현장에선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력한 효과를 가져왔다. 말이 짧았기에 더 강력했던 공감. 지시 대신 손에 쥐어진 쭈쭈바 하나가 더 강한 울림을 주었던 순간이었다.




물론 모든 상황에 이런 방식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어른이나 선배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하며, 때로는 조언과 가르침으로 조직의 중심을 잡아줄 목소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조언이 전달되는 시점과 방식은 언제나 고민해야 한다. 적절하지 않으면, 그것은 조언이 아닌 소음이 되고 오히려 자신의 진심과 리더십의 무게를 깎아내리는 결과를 낳는다.


때로는 말을 줄이고, 그들에게 조용히 작은 위로를 건네는 것- 그것이 진짜 공감이며, 때로는 가장 깊은 조언이자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의 진심이 당신이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해지길 바란다면 어쩌면 거창한 조언보다 아이스크림을 쥐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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