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되면 되게 하라.
군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조차도 한 번쯤 들어봤을 이 문구. 특전사의 상징적인 문구가 되었다.
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있어 특전사 공수기본훈련은 일종의 통과의례다. 보통 3~4학년쯤이면 이 훈련을 받게 되는데, 이름부터가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낙오했을 때 군복 가슴 위에 새겨지게 될 평생의 ‘빈자리’다.
특전교 공수기본훈련을 수료하면 가슴에 공수윙을 달게 된다. 이 윙은 주로 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의 상징이 되곤 한다. 학군과 학사장교들은 특전교육을 받을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전입 온 장교의 가슴을 보면 단번에 그 출신을 알아챌 수 있다.
군은 철저한 계급사회이자 네트워크 사회다. ‘출신’이 곧 경쟁력이 되기에 공수윙 하나가 가지는 상징성은 막대하다. 거기에다가 만약 동기들이 대부분 수료했는데 나 혼자 체력이나 부상 문제로 윙을 얻지 못하게 된다면, 향후 20~30년의 군 생활 내내 “사관학교출신인데 왜 공수윙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그때마다 해명 아닌 설명을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공수기본훈련은 대략 3주간 진행된다.
나는 6월 말에서 7월 초중순쯤 이 훈련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시기에는 ‘지상훈련’이라 하여 하늘에서 무사히 뛰어내리기 위한 연습을 하는 시간이다.
아침에는 극한의 체력훈련, 오후에는 천 번이 넘도록 모래바닥에 뛰어내리는 연습이 이어진다.
훈련 목적은 단 하나.
하늘에서 뛰어내릴 때 주저함 없이 행동하도록 몸과 정신을 완전히 비워내는 것이다.
정신을 잃거나 패닉상태에서도 낙하산을 펴고 착지할 수 있도록.
특전교에서는 몇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첫째, 특전교에서는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때 무조건 구보로 이동한다. ‘걷는다’는 건 곧 부상자라는 뜻이고, 부상자가 아닌데 걷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둘째, 밥이 매우 짜다. 열량소모가 심한 훈련들이 주로 이기 때문인지, 전반적으로 간이 센 편이었다. 그래서 더 맛있다^^
가장 힘들 때 동료애가 살아난다고 했던가. 맞는 말이긴 했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힘들기에 사람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질투, 갈등, 뒷담화…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하루가 끝나면 2~3kg씩은 훅 빠진다. 그러다 보니 저녁엔 에어컨 아래에 누워 과자며 초콜릿이며 고칼로리 음식을 마구 흡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뚱뚱했던 친구들은 살이 빠지고, 마른 친구들은 오히려 살이 찌기도 했다.
3주 차가 되면 드디어 공중강하 훈련이 시작된다. 그런데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이 3주 차는 그 어떤 훈련보다도 가혹했다.
강하는 공기가 가장 안정된 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에새벽 2시 반 기상, 오전 5시 반 강하 준비가 기본이었다. 전날 오후 11시에 훈련이 끝났다면 2-3시간 밖에 자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 2~3시간밖에 자지 못한 채 대기하는 생도들의 얼굴엔 피곤함과 긴장감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위험도가 높은 훈련인 만큼 교관들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고 차갑게 대했다.
3~4시간의 준비와 대기 끝에 드디어 기구에 탑승했다. 열기구 같은 장비에 6~7명이 조를 이루어 탑승하고 하늘 위로 천천히 올라갔다.
1분쯤 지나면 세상에서 가장 고요한 공간이 펼쳐졌다. 소리도, 바람도, 마치 시간조차도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600m 상공, 교관의 외침이 들린다. “준비!”
뛰라고 했을 때 세 번의 구호 안에 뛰지 못하면 실격이다.
여기서 여러분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교관이 "준비"를 외쳤을 때 안전한 곳에서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몸을 반쯤 난간에 내밀고 서서 대기하는 그 몇 초는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교관의 손이 내 등을 ‘툭’ 밀면 그 순간, 뛰어야 한다. 되도록 멀리 뛰어야 했다. 기구 근처로 떨어지면 기구를 고정하고 있는 줄에 낙하산이 얽혀 진짜로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뛰엇!"
(점프) 으... 읍.. 읍
실제로 뛰어내리는 그 순간,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사실 하얗게 변한다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경직되고 심장이 멈추는 느낌을 받았다. 눈을 뜨지도 못했다. 나는 무서우면 눈을 감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만약 본 낙하산에 문제가 생겨 비상낙하산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왔다면, 눈을 뜬 채 자유낙하 중에 정확한 동작을 수행해 비상낙하산을 작동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그때 나는 분명히 인지했고 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낙하산은 대략 3초 후에 펴진다.
그러나 체감은 4초처럼 느껴진다.
온몸을 웅크려 그 어떤 동작도 할 수 없는 그 순간
‘퍽’ 소리와 함께 낙하산이 펴진다.
몸이 붕 뜨며 멈춰있던 세상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제야 주위를 돌아봤다.
하늘, 들판, 바람…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고 평온한 풍경이 펼쳐졌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교관들은 훈련도중 여러 번 말했었다.
"우리가 연습하며 숙달한 수천 번의 동작과 안전한 낙하지점을 선정하기 위해 외워야 했던 주요 지명들은 평생 잊히지 않을 거야." 하지만 죄송하게도 사실 벌써 가물가물하다. 그러나 그때의 감정과 찰나의 순간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특전사 훈련이 내게 특별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진짜로 안 될 것 같았던 일을
동료들과 함께 해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내 안에 남긴 작은 믿음.
하늘에서도 뛰어내려봤는데,
세상에 내가 못할 일이 뭐가 있을까.
그 작지만 단단한 마음 하나가 앞으로의 삶에서 나를 더 강하게, 더 도전적으로 만들어줄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