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브런치 연재북, 사관학교에서의 삶을 다룬 "인내하라 새벽은 그리 길지 않으니"가 벌써 열 번째 글을 맞았다. 충분한 준비 없이 시작된 글이었기에 부족한 점도 많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편안한 글’을 쓰지 못했다는 점이다. 나에게 사관학교 시절의 경험은 평생 뼈에 각인될 만큼 특별했다.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분명 있음에도, 그것을 글로 옮겼을 때 과연 누군가에게 흥미롭게 읽힐 수 있을까, 가치가 있는 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늘 따라왔다.
나는 늘 긍정적이고, 어려움 속에서도 팀을 이끌어가는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사관학교에 들어섰을 때 나는 우선 ‘생존’에 집착했다. 나를 보존하는 것에만 신경 쓰다 보니, 훈련·인간관계·생활은 매 순간이 도전이었고 아름다울 리 없었다. 이는 군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놓인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점점 내가 평소에 사회에서 비판하던 사람의 모습, 즉 조직과 환경을 매일 비난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견뎌내고 있을 뿐이었다.
군에서는 자주 ‘MZ세대’ 이야기가 나왔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군대도 변화하고 있었다. 자유와 책임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주의가 만연했고, 때로는 책임보다는 방임과 회피가 선택되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학교에서 말하는 ‘엘리트’의 자리에 들었다. 조금 덜 MZ 스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잠을 줄여 일하고 공부했으며, 상급자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고 관계를 맺었다. 그것은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정통 성공 방식’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자연스레 더 많은 선택권과 시야를 가지게 되었고, 높이 올라갈수록 보이는 세상도 달랐다.
사실 보잘것없으며 빈 껍데기뿐인 헛된 명예였다. 그것은 나를 더욱더 성장시킨 것이 아닌 나를 교만하게 만들었고 그 체제 하에 굴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군에서 성공한다라는 일반적인 개념은 인맥과 끌어주기, 엘리트주의가 만연해 있는 군 조직에서 부정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나는 그 현실을 좋아하면서도 냉정하게 비판했다. 이중적 잣대였을까, 아니면 최소한의 양심의 소리였을까.
군에서 많은 혜택을 누렸지만, 내 안의 불평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점점 진급과 성공, 편안한 삶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갔고, 그로 인해 비합리적인 것들에 더 큰 혐오를 느꼈다. 개인 물통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 오래된 수통으로만 물을 마셔야 했던 일, 흙먼지를 쓸어내라고 시켰다가 나중에 공사용 흙이라 다시 채워야 했던 일. 이사를 시킬 땐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개개인 한 명 한 명이 일개미가 되어 짐을 나르는 일. 작은 것 하나하나가 모두 불합리하며 비합리적으로 보였다.
그렇게 난 군 비판론자가 되었었다.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는 것일까. 어젯밤, 일이 끝나고 밤 12시에 홀로 호수공원을 달렸다. 아무도 없는 고요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사관학교에서 수없이 혼자 뛰던 기억이 떠올랐다. 시간이 흘러 지금에 와서야, 그때의 불합리한 상황조차 그 안에서 묵묵히 버텨낸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늘 군대가 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상이 변하면 군대도 변해야 한다고. 그러나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장교의 가치관이다. 리더이자 지휘관은 시대가 변해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우리 세대일지라도, 이름 모를 고지에서 목숨을 던진 전우들의 고통, 일제강점기에서 처절하게 싸운 선조들의 울부짖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정신을 잇기 위해서는 때로 불합리를 감내하고 숭고한 가치를 지켜내야 한다. 그것이 보수적이고 진부하게 보일지라도, 오히려 진중하고 무게 있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다시 돌아가 그 시절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믿지는 않는다.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는 반대되는 환경이며 기본적으로 내가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더 이상 그들을 비난하거나 불쌍히 여길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충분히 현명하며, 숭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시대를 초월해 추구한다. 그리고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여전히 지금도 군대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 결국 나 역시 군을 정말 사랑했던 것 같다.
+ 앞으로 이 이야기를 이어나갈지는 모르겠다. 경험의 한계와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글을 멈추게 만들게 했다. 하지만 글은 계속해서 쓰고자 한다. 그동안 부족했던 사관학교 이야기 "인내하라, 새벽은 길지 않으니"를 읽어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