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되 멈춰 서진 말자
자신의 휘하 병력이 고된 행군으로 모두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러다 문득 중대장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잘못된 방향이었음을 직감했다. 눈동자는 더 이상 흔들릴 틈조차 없이 얼어붙었고, 판단력은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우려들이 현실이 되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는, 나지막이 그 말을 내뱉고 말았다.
“이 길이 아닌가벼…”
수많은 고지와 능선이 얽히고설킨 대한민국의 산악지형에서 지도 한 장만을 가지고 길을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시대에 스마트폰의 네이버지도 하나면 어디든 갈 수 있는데, 굳이 이런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느냐고?
글쎄,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그 스마트폰조차 먹통이 되는 전쟁 상황이라면? GPS가 끊기고, 오직 종이 지도와 나침반만이 남아 있다면? 그때도 우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길을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장교가 되기 전, 생도들은 수없이 지도를 보고, 산을 오르고, 길을 찾는 훈련을 반복한다. 사방이 헷갈리는 산속에서 목표 지점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 훈련은 단순한 체력 단련을 넘어, 혼란 속에서 판단하고 이끄는 법을 익히는 필수적인 시간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도 겪게 된다. 그때마다 선배 장교들은 자신이 겪었던 실수담을 들려준다. 그들이 처음 부대를 이끌고 산속에 들어갔을 때, 자신이 세운 경로와 전혀 다른 지점에 도착해 망연자실했던 경험.
무전기가 불통이고, 해는 지고, 병사들의 얼굴엔 불안이 밀려오는 그 순간. 그 어떤 지휘관이 아무렇지 않게 온전한 판단력을 유지한 채 병력들을 이끌 것이며 그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도 군대 안에서 이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유가 있다. 그만큼 많은 리더들이 비슷한 상황에 놓였고, 그때 그 말 한마디가 중대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지휘관이란 단순히 길을 찾는 사람이 아니다. 길을 틀릴 수 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리더는, 사람의 마음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 길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 진짜 리더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부터 다시 확인하겠다. 내가 책임지겠다. 끝까지 함께 가겠다.” 그 한마디면 된다.
리더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으면, 병사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리더의 목소리에 확신이 담겨 있으면, 누구도 낙오하지 않는다. 지도 한 장, 나침반 하나보다 더 강력한 도구는 바로 리더의 신념과 말 한마디, 그리고 책임지는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