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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데, 아무도 우산을 쓰지 않았다

통제에 굴복한 조직의 폐해

by 담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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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생도들은 근무복을 입고 있었고, 예정된 강의를 듣기 위해 약 10분 정도를 걸어 강연장으로 향해야 했다. 갑작스럽게 쏟아진 소나기에 생도들은 당황했고, 우산을 꺼낼지 말지를 망설였다.


* 참고사항

사관학교의 생도 체계는 조금 특이하다. 중대마다 중대장 생도를 포함한 지휘근무생도들이 선발되어, 생도 조직 내에서 자율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하며 동료들을 이끌도록 되어 있다.


한 생도가 말했다.
“중대장! 우산 들고 집합할까?”

“대기해. 아직 위에서 우산 쓰라는 통제 없었어.”


그 순간 나는 얼어붙었다. 우산 하나 쓰는 일조차 명령 없이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


사실 그러한 결정을 한 배경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정이 있다.

- 생도들은 복장이 여러 개이며, 복장별로 비에 대응할 수 있는 물품 매뉴얼이 있다.

- 중대장 생도는 리더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훈육관 등의 상급자 지시를 따르는 중간 관리자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들이 비를 맞으며 움직인 것은 규칙에 얽매인 것뿐만 아니라, ‘우산을 쓰라는 명령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복종과 통제에 길들여진 나머지,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것이 정말 효율적인 질서일까?
아니면 조용히 무너진 자율일까?


통제는 처음엔 안정을 위한 장치로 작동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사람의 생각을 지우고, 질문을 삼키며, 결국엔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약화시킨다.


더 모순적인 것은, 그 생도들은 모두 장차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장교’로 길러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정예 엘리트’라는 자부심 아래 교육받고 있었지만, 정작 그날의 모습은 그저 누군가의 지시에만 반응하는 수동적인 용사와 다를 바 없었다.


사관학교는 자율성과 판단력을 기르는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통제가 자율을 억누르기 시작하면, 조직은 어느새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채워지게 된다. 물론, 이 한 가지 사례만으로 조직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산을 쓰지 않은 것’ 자체가 아니라, 책임과 권한을 부여받은 지휘근무생도들마저도 판단을 유보하고 명령을 기다리게 만든 조직문화이다.

그들은 학습된 경험에 의해 자율적 판단보다는, 혹시라도 상관에게 혼나지 않을 선택만을 골랐다.


과연 이 현상이 군대에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공무 조직이나 많은 회사의 구조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늘 창의성과 자율, 비전을 외치지만

정작 현실은 ‘모난 돌’은 매를 맞는다. 질문은 불편함으로 여겨지고, 다름은 튀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괜히 나섰다가 눈에 띄지 말자.”





비가 올 때.
그 비를 막기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
그 결정을 내리도록 격려하는 조직.
우리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판단력과 책임감, 자율성과 감수성을 가진 사람을 길러내는 일.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는 일.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태도는 어쩌면 그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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