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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조한 공간철학

by 아름다움이란

어쩌다 카페 사장이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선택지 안에 없었던 소상공인으로 살고 있지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내려고요.

한 때 꼬마빌딩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에 편승해 꼬마빌딩을 짓기 시작하여, 카페를 운영하는 일상을 공유하려 합니다.


12화 개나 소는 되기 싫었는데




공간은 늘 주어지는 것이었다.


물건 구매욕이 강한 엄마 덕분에 우리 집은 늘 '투머치'했다. 거실 벽면은 피아노, 책장, tv장, 소파, 정삭장이 병풍을 두르고 있었는데, 채워짐에서 엄마는 안정을 찾은 것 같지만 그것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하교 후 돌아오면 가구의 위치가 변해 있는 경우가 잦았다. 내 눈에는 ‘뭐가 달라졌나?’ 싶은데, 엄마는 물었다.


'어때?', '괜찮아?', '전보다 낫지?'


답정녀인 엄마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물을 것을 알기에 그것을 면하려면 무조건 격한 긍정의 반응을 해야 했다. 가구 이동에 도가 튼 엄마는 혼자서 피아노도 척척 옮기는 경지에 올랐는데 수건 한 장이면 장롱을 끌어내는 신공을 선보였다. 엄마가 사업에 욕심을 내었다면 포장이사 전문업체 CEO라는 타이틀을 얻었을 텐데. 여자는 살림을 하고, 아이를 잘 키워야 하는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 남편 때문에 끝내 날개를 펴지 못했다. 엄마는 그 위대한 능력을 집안에서만 마음껏 펼쳤다.


문제는 그 취미가 나의 사적 공간까지 침범했다는 사실이다.

'엄마, 나는 지금 사춘기라고~~~' 울부짖어도 소용없었다.

사춘기 딸 방의 책상은 동서남북 자유자재로 옮겨졌다. 그 안에는 몰래 쓰다 만 연애편지와 감춘 성적표가 있었지만 엄마는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쩌면 딸의 은밀한 비밀을 모른 척 지켜준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 엄마는 정말 BEST of best !


내 취향을 잃은 것은 아마도 그때부터다. 엄마가 만들어 놓은 동선을 받아들였다. 그러지 않으면 책상을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일에 동원되어야 했기에 차라리 새로운 질서에 순응하고 나를 맞춰나가면 몸은 편했다. 나는 취향을 버리는 대신 편안함을 선택했다.


하지만 작은 방 안에는 한계가 있었다. 책상과 침대는 늘 세트처럼 움직였다. 책상에 앉으면 침대가 눈에 먼저 들어왔고, 책을 펴기도 전에 침대가 '이리 와, 괜찮아 어서'라고 부르는 환청을 듣고 '그럼 딱 10분 만이야' 하는 순간 이미 게임은 끝났다.


뒤늦게 알았다. 책상과 침대를 붙이는 건 학생 집중력의 천적이라는 걸. 엄마는 학습능률을 고려한 배치 같은 건 안중에 없었다. 이제야 ‘공부 시간 대비 성적 저조’의 비밀을 찾았지만 너무 늦었다.


'STOP! 공부 못한 걸 엄마 탓으로 돌리지 말자. 더 이상 치졸해지지 말자.'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직접 카페를 운영하기로 결심하면서 이 문제가 다시 나를 붙잡았다. 감각 없는 내가, 공간에 무심했던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러나 해보고 싶었다. 아니, 해 내야 했다. 해보고 싶은 이상과 비용 절감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고뇌했다.



로댕처럼 생각하면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짧은 식견으로 이 작품을 설명하자면 이것은 단독 작품이 아니라 <지옥의 문>이라는 대작 속의 작은 청동상 중 하나이다. 단테의 <신곡>을 읽고 지옥 앞에 선 시인의 모습이다. 그는 인간의 죄와 운명, 삶과 죽음을 붙잡고 끙끙 앓고 있다.


나의 고민이 이 시인보다 깊지 않다고 폄하당하고 싶지 않다. 나에게도 넘쳐나는 카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고민이었으니까. 어차피 카페를 해야 한다면 결과는 둘 중 하나다. 흥하거나 망하거나. 지옥의 문에 서지 않는 것에 내 운명을 걸었다. 그러니 나도 한쪽 손을 턱에 괴고 고뇌해야 했다.




벤치마킹을 통해서 감각을 길러야겠다 싶어 공간투어를 시작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 찾았던 곳,

인스타에서 감성공간이라며 극찬을 받은 곳,

한 번 갔을 때 느낌이 좋아서 다음에 다시 찾고 싶었던 곳,

스쳐 지나가다 한 번 더 눈길이 가서 다음에 한 번 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곳,


돌아보니 ‘나의 공간 플레이리스트’가 꽤 풍성했다. 나의 멘토 건축가 유현준 교수가 그랬다. 자신에게 필요한 공간, 소중한 기억이 있는 공간 등 본인만의 공간 플레이리스트가 필요하다고. 본인에게 적합한 장소를 선별하면 필요할 때 그곳에서 마음의 휴식을 갖기도 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고. 시간이라는 비용을 지불하며 고른 공간이 결국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 그 분의 말씀은 무조건 옳다. 돌아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공간에 대한 나의 취향이 쌓여가고 있었다.


'그래, 철학이 뭐 별 건가. 생각을 정리해 보자.'


내가 좋아하는 공간은

조명 아래 빛의 색감이 따뜻했던 곳.

혼자여서 좋고, 함께여서 더 좋은 곳.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책을 펼쳐 들게 만드는 곳.

대충 놓아둔 것 같은 오브제가 시선을 붙잡았던 곳.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은 편안함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곳.

우연히 들렀는데 오래도록 여운이 남아 아지트 삼고 싶어지는 곳.


내가 만들 공간은 누구보다도 내가 가장 사랑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공간은 관계를 빚어낸다. 사람과 사람이 머무는 자리마다 시선이 교차하고, 그 안에서 이야기가 자란다. 동선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대화를 열기도 하고 닫히게도 한다. 의자 하나의 방향, 문 하나의 위치, 빛 한 줄기의 흐름이 누군가의 마음을 머물게도, 떠나게도 만든다. 그래서 나는 공간을 그저 ‘배경’으로 두고 싶지 않다. 공간은 사람과 사람을, 사람과 시간, 사람과 경험을 이어주는 조용한 매개자여야 한다. 그 안에서 기억이 쌓이고, 감정이 오가며, 관계가 자라난다.


그렇기에 모두의 사랑을 받겠다는 욕심도, 유행을 좇으려는 마음도 내려놓고 천천히 마음속에 쌓아온 ‘공간 리스트’를 떠올리며, 나의 색깔을 입힌다. 가구의 배치에, 오브제에, 빛의 색감에도 내 생각과 이야기가 스며들도록 공간을 디자인해야 한다. 공간이 나를 닮아간다면 더없이 좋겠다.


이것은 생존이고, 내 운명을 걸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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