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카페 사장이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선택지 안에 없었던 소상공인으로 살고 있지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내려고요.
한 때 꼬마빌딩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에 편승해 꼬마빌딩을 짓기 시작하여, 카페를 운영하는 일상을 공유하려 합니다.
어두운 체육관, 땀과 피 냄새가 뒤섞인 싸구려 링. 이름 없는 복서가 눈두덩이 터진 채 주먹을 내지른다. 그는 챔피언이 될 인물도, 대단한 스펙을 가진 선수도 아니었다. 하지만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다. 세계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와의 시합. 모두가 ‘얼굴만 내밀고 KO 당하겠지’라며 비웃었지만, 그의 목표는 끝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시합에서 져도 상관없어. 머리가 터져도 괜찮아. 단지 15회까지 버티기만 하면 돼. 아무도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거든.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두 발로 서 있으면, 그건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뭔가를 이뤄낸 순간이 될 거야.”
로키의 목표는 챔피언 벨트가 아니라 끝까지 버티는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결국 그는 해낸다.
록키의 '버티기 전술'은 자영업자들의 필살기다. 고난은 자영업자들을 귀신같이 찾아내어 '어디 이래도 버틸 수 있나 보자!'라고 시험하는 고약한 심보를 가졌다. 우리는 '흠~! 언젠가 니가 날 찾아올지 알았지!' 하며 비웃을 줄 아는 내공을 키워야 한다.
우리는 항상 링 위에 서 있다.
1라운드 - 끈질기고 지독한 상대 코로나
2021년,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
싸스, 메르스, 신종플루...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은 여러 번이었지만 이 녀석들은 잠깐 치고 빠지는 잽 수준이었다.
잽 : 권투에서, 스트레이트로 안면이나 몸통을 가볍게 연타하는 일. 상대의 공격을 방어하면서 공격을 노리는 기술이다.
잠시만 버텨내면 일상으로 돌아왔던 풍부한 경험이 쌓였기에 코로나도 그럴 줄 알았다.
'이번에도 조금만 버티면 끝나겠지.'
하지만 이 녀석은 달랐다. 시간이 갈수록 사망자 수는 늘어가고, 두려움은 눈덩이 굴러가듯 불어났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까지 빼앗아서 아파트 창문을 통해 바이러스가 집안으로 침투할 수 있다는 말에 '설마~'하는 의심도 품지 않고, 모든 문을 꼭꼭 잠근 채로 세상을 차단했다.
창문이 잠기고, 사람의 마음도 꼭꼭 잠겼고, 그들의 지갑이 잠기는 동안 자영업자의 눈물샘은 열렸다. 어떻게든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던 경제가 무너진 그 겨울 우리는 카페 문을 열었다.
이건 호기가 아닌 객기였다.
'안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라며 남의 실패를 가볍게 여기는 나쁜 생각,
'나는 잘 될 거야'라고 근거 없는 자신감에 취하는 더 나쁜 생각에 사로잡혔다.
인스타그램에 매일같이 신상카페의 근황을 올렸다. 라떼아트를 뽐내고, 케이크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오늘도 감성 한 잔’이라는 문구까지 곁들이니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뭔지 아는가?
정치? 주식? 글쎄.
그럼 연애? 모두 만만치 않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손님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결국 장사의 성패는 사장의 고군분투가 아니라, 매뉴얼도 없는 ‘손님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2라운드 - 절대 꺾일 줄 모르는 고집불통 매니저
전문성을 가진 직원을 뽑기로 했다. 공고를 내자 수많은 이력서가 몰려들었고, 그중 단연 눈에 띄는 친구가 있었다. 바리스타 경력, 자격증, 각종 세미나 수료, 탁월했다.
우리는 주저 없이 그를 채용했고, 매니저라는 직함을 달고 오픈 준비를 함께 했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메뉴 개발에 앞장섰고, 원두의 특성을 고려한 추출법을 함께 만들어 나가면서 내가 모르는 세밀한 부분까지 챙겨준 일등공신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링 위에서 맞는 뜻밖의 펀치였다.
‘취향’이라는 말로 포장된 '똥고집'
커피는 결국 취향이다. 진하고 고소한 콜롬비아, 과테말라를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에티오피아의 산뜻한 산미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서 둘이 조화를 이루는 대중적인 최상의 브랜딩을 찾아야 한다. 내 취향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대중의 취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나와 달리 자신의 취향이 곧 정답이라 여기는 매니저와의 갈등이 조금씩 자라났다. 노동법이라는 든든한 백으로 사장은 직원에게 '갑'일 수 없어서, 그의 생각을 듣고 나의 의견을 조율했다.
'경영은 고집과 신념 사이의 줄다리기다. 상대방을 꺾으려 하기보다는,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진짜 승부다.'
3라운드 - 별점으로 공격하는 프로악플러
링 위로 또 다른 강적이 등장했다. 그의 무기는 주먹도, 발차기도 아닌… 바로 ‘별점’이었다.
별 하나에 한숨과
별 둘에 아쉬움과
별 셋에 자책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생각난다.
'직원이 불친절하다. 별점 하나.'
'배송이 느리다. 별점 둘.'
5개의 별은 사장에게 희망과 기쁨이 되기도 하지만, 하나라도 빠지면 가슴을 가격하는 주먹질과 발차기로 다가온다. 별점테러는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 상처를 내고, 더디게 오래도록 곪는다.
'정말 그렇게 형편없었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자책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별점아래 피드백을 펼치기기 겁나지만 그걸 펼쳐볼 용기를 내야 한다. 별 다섯 개에 취하지 않고 별 한 개에 단련되어야 '장사의 신'이 될 수 있다.
4라운드 - 매일 상한가를 치는 물가
오늘 아침에 주문한 원두는 지난해보다 20% 올랐다. 브라질에 가뭄이 심하다고 한다.
디저트를 구워야 하는데 밀가루값이 심상치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다고 한다.
소보루에 들어갈 아몬드 값도 오른다. 미국 서부 산불로 우리 교민의 피해도 걱정되지만 세계 최대 아몬드 생상지가 불에 탔다고 한다.
커피 한 잔과 달콤한 디저트에 숨겨진 경제 논리다. 모두가 내 카페 한 모금과 연결되어 있다니, 믿기 어렵지만 현실이다. 불가사의한 것은 한 번 오른 물가는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다시는 예전 가격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브라질에서 내린 비 한 방울, 우크라이나의 폭격 한 발, 캘리포니아의 산불 연기 한 줄기까지 내 카페에 영향을 주기에 커피 한 잔을 만들 때마다, 나는 세계 안보와 지구의 날씨를 동시에 걱정하는 프로걱정러가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글쎄… 아무것도 없다.
'전쟁 좀 멈춰주세요~~'라고 캠페인이라도 열고 싶지만, 나는 지금 카페 안에 갇혀 있다.
나는 지금 15라운드짜리 시합에 올라 있는 선수다.
코로나라는 헤비급 챔피언과 맞붙었고,
고집불통 매니저와 인파이팅을 벌였고,
별점으로 날아드는 프로악플러의 잽을 수없이 맞아냈다.
고작 4라운드까지 왔는데도 링에서 내려갈까 말까를 수없이 고민한다. 그럴때면 수없이 맞고 터지면서도 15라운드를 견딘 록키가 떠오른다. 그는 상대를 쓰러뜨리려 싸운 게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싸워야 할 상대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악플에 상처받고, 직원과 뜻이 맞지 않을 때면 하루쯤 문 닫고 푹 쉬고 싶지만, 그래도 내 삶의 링 위로 다시 올라선다.
승패를 가르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그 자체가 내 한계에 도전하는 일일이다. 어쩌면 진짜 승리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 사이 잔근육이 생기고 맷집이 커졌으니 웬만한 강펀치가 날아오지 않으면 끄떡없다. 잠깐 흔들흔들 하다가 내자리로 돌아오는 소상공인의 내공을 쌓아가고 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링에 오른다. 누군가는 인간관계라는 라운드에서, 누군가는 건강이나 돈이라는 상대와 붙는다. 이때 중요한 건 이기자고 달려드는 것보다 치고 빠지며 버텨내는 기술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면 이미 반은 먹고 들어가는거다. 화려한 한 방이 아니더라도, 수백번 주먹을 내지르다 그 중 한 방은 제대로 맞을테니. 오늘도 정신줄 꽉 잡고 핵주먹을 날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