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카페 사장이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선택지 안에 없었던 소상공인으로 살고 있지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풀어내려고요.
한 때 꼬마빌딩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그에 편승해 꼬마빌딩을 짓기 시작하여, 카페를 운영하는 일상을 공유하려 합니다.
폭염으로 인한 재난문자가 연일 이어지던 여름날 오후, 손님 한 분이 이글거리는 아스팔트의 열기를 피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아, 시원해!'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자 아주 미세한 감탄사를 터뜨린다. 메뉴판을 훑어보는 손님의 시선이 잠시 멈칫하고 아주 잠시 고민에 빠진다.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드시고 가시나요?"
"네. 얼음 많이 주세요."
주문한 음료가 나오자 에어컨 바람이 가장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창가 자리에 가 벽에 몸을 기댄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크게 한 입 빨아들일 때 '이제야 살겠다'는 표정이다.
고객의 시선이 메뉴판 어딘가에서 머뭇거리는 그 찰나, 나의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가격 때문일까?
혹시, 선택장애?
원하는 메뉴가 없나?
머리에 스쳐 지나갔을 그 짧은 생각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눈빛의 미세한 떨림으로 사람의 심리를 분석해 주는 인공지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손님의 눈이 지금 아메리카노 4,500원에 멈춰 있네요. 이것은 다른 곳보다 좀 비싸다고 생각할 때 나오는 행동 패턴이에요.'
'손님은 지금 바닐라라테와 돌체라테 사이에서 결정을 못 내리고 있어요. 카페의 시그니처 크림바닐라를 추천해 주시면 선택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라는 상상을 해보지만 그런 기술이 있다 한들, 커피 한 잔 더 파는 데 쓰일 기술은 아니겠지?
카페를 오픈 한 이후 세네 개의 브랜드 저가커피 매장이 근방에 문을 열었다. 이전에 있었던 것까지 합하면 200m 반경 안에 무려 7개의 카페가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 좁은 반경은 단순한 상권이 아니라 치열한 전쟁터다.
그들은 앞다투어 1,500원 아메리카노를 앞세우고 전쟁을 시작했는데 누군가가 휘두르는 '저가'라는 총칼에 어떤 이들은 장렬히 전사할 것이며 또 어떤 이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만의 전술을 펼친다. 프랜차이즈의 특성상 본사에는 메뉴를 개발하는 팀을 두어 발 빠르게 신제품을 출시하고, 소비자의 유혹하는 마케팅 전략으로 유행을 만드는데 앞장선다.
그 사이, 나 같은 개인 카페는 값을 낮추고 저가 경쟁에 뛰어들어 참전용사가 될지, '마이웨이'를 외치며 신념을 고수할지 결정해야 한다. 경쟁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때로는 신념이 흔들리기도 하고, 피를 보기 전에 도망쳐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이 깊어진다.
아메리카노 가격에 숨겨진 비밀을 풀어보자.
카페에 들어서면 시원한 에어컨이 풀가동 되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쇼케이스 안에는 디저트가 시원하게 보관되어 있다.
'저는 달콤 쌉싸름한 에그커스터드푸딩이에요. 어서요. 저를 데려가주세요.'
누구든 손을 넣어 자신을 쇼케이스에서 꺼내주길 기다리고 있는 각종 디저트의 신선함 뒤에 숨겨진 것은 바로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전기세다.
가끔은 '이 음악 플레이리스트가 뭐예요?'라고 묻는 손님도 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월구독료를 내고 광고 없이 이용하는 어플을 열어 방금 들으신 음악을 찾아드릴게요.'
영업 매장에서는 음악도 무료가 아니다. 분위기를 만들려면 기꺼이 지불해야 할 대가다.
카드결제율은 100%에 가깝다. 카드가 리더에서 '삑'하는 소리는 내는 순간 2%의 수수료를 떼 가고, 일 년에 두 번 돌아오는 부가세 신고 기간에 수입의 10%를 나라 살림에 보탠다.
'감사합니다. 100원의 카드수수료와 500원의 세금까지 떼어먹지 않는 성실한 납세자가 되겠습니다.'
자영업자들은 부가세 신고를 하는 1월 7월이 다가오면 저절로 밥맛이 떨어지니, 혹 다이어트가 필요하다면 이때를 노리면 된다.
아무리 좋은 원두도 누구 손에서, 어떤 기계로 내려지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그라인더와 에스프레소 머신에 만큼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내 오른팔 같은 머신은 황금빛 크레마를 뽑아내지만, '세월에 장사 없다'더니 이따금 잔고장이 나 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기계는 날이 갈수록 감가상각이라는 무자비한 숫자의 폭탄을 맞는다.
카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커피와 디저트인데, 원재료값은 왜 이리 빨리 오르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세계 오일 가격의 상승은 농산물 하우스 냉난방비용에 영향을 미쳐 원재료 값을 올렸고, 예측 불가능한 기후 변화로 수확량이 줄어드는 것 또한 가격 상승의 일등 공신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압도하는 비용이 있었으니, 바로 인건비다. 최저시급은 이미 10,000원을 훌쩍 넘었고, 주 15시간 이상 근무 시 주휴수당 지급은 물론 4대 보험까지 계산하면 인건비는 가장 큰 지출 항목이 된다.
그래서 카페 사장은 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몸을 '갈아 넣을' 수밖에 없다.
인건비, 원재료와 공과금은 해를 거듭할수록 상승하지만, 물가 상승률을 매번 음료값에 반영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순수익은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 번쯤 큰맘 먹고 가격을 인상하고 싶지만, 다정한 단골손님들과 번쩍이는 주변 경쟁업체의 간판을 보면 금세 마음을 접게 된다. 그리하여 카페 사장의 가슴은 점점 새가슴이 되어가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커피 팔아서 경제적 자유를 얻는 '파이어족'이 되는 것은 글렀다. 그렇다면 오래 버틸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내 일을 더 사랑하기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 모닝커피 마시기를 시작으로 오전은 8시간을 꼬박 작품 집필에 전념하고 오후에는 10km를 달린다. 그런 그가 ’어느날 갑자기 나는 내가 좋아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날 갑자기 내가 좋아서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주의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다. 설사 다른 사람들이 말려도 모질게 비난을 받아도 내 방식을 변경한 일은 없었다.‘고 했다. 글쓰기와 달리기의 시작은 바로 사랑이었다.
커피와 연애한 지 10년, 권태기가 왜 없었을까. 그러나 이제는 하루도 그 없이는 맨 정신으로 살 수 없으니, 이제는 영원한 동반자로 살면 되겠다. 좋아하면 잘하게 된다는데 앞으로도 진하게 사랑하다 보면 월드바리스타챔피언쉽에서 우승의 타이틀을 거머쥔 커피 장인이 되어 있을지 모르니.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은 현재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 대회로 각국의 바리스타 챔피언십 우승자들이 세계 타이틀을 두고 경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