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자가 혼자 여행가기 좋은 장소, 강원도 묵호
병원이란 정말 신기한 곳이다. 아무 문제도 없었던 부위들이,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진찰을 받는 순간 하나같이 ‘잠재적 발병 부위’가 되어버린다.
“다행히도 지금 첨지님이 느끼는 오른팔의 고통은 어깨충돌증후군은 아니에요. 하지만 여기 왼팔을 보시면.. 여기, 튀어나와있는 뼈 보이죠? 아마 첨지님이 왼팔을 쓰셨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한 고통이 수반됐을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그 한마디로 내 왼팔은 순식간에 잠재적으로 어깨충돌증후군 발생 가능성을 떠안았다. 내가 오른손잡이라 다행이다.
나는 입사한지 2개월되는 시기에 일을 그만두겠다고 선언을 했었다.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는 여러가지였지만 오른팔의 고통은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외투를 걸치기 위해 팔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그 당시 내 오른팔은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비명이 나올 정도로 팔이 아팠고, 잘못된 각도로 움직였을 경우에는 비명조차 안 나올 정도로 고통이 닥쳤다. 사실 팔이 아파온 건 꽤 오래됐는데, 처음에는 그냥 잠을 잘못 잤나보다하고 가볍게 넘겼던 것이 갈수록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고통으로 변해갔다.
그래서 그날은 일을 조퇴하고 병원에 갔다. 조퇴하고 싶다고 얘기했을때 선임님이 했던 말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내일 늦으면 안돼. 우리는 봐주는 거 없어. 알지?” 다음날 나는 아침 근무가 예정되어있었고, 선임님은 무시무시한 기세로 그렇게 말씀하셨다. 여기는 사시사철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허락 없이는 아파도 안되는 곳이었다. 한때는 그것이 삭막하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원래도 누군가 나를 ‘봐주는‘ 삶을 산 적은 없었기 때문에, 그저 순순히 대답했다. “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병원에서도 뾰족한 해답을 주지 못했다.
그냥, 갑작스럽게 같은 부위의 근육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는 상투적인 말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오히려 의사는 나에게 짚이는 원인이 있냐고 물어왔다. 하루에 평균 매출 2000만원이 나오는 매장에서 수십개의 테이블을 걸레질한 것이 짚이는 원인이었다. “걸레질이요”라고 말하려니, 21세기 신데렐라라도 된 것같은 기분이 들어서 머쓱해졌다. 내 대답을 들은 의사 역시 머쓱한 얼굴로 나에게 소염제를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이럴 거면 한의원을 가는 게 더 나았겠다, 생각하면서 나는 진료비용을 결제했다.
나는 전 에피소드에 적은 것처럼 원래 일주일만 더 하고 일을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러나 약속했던 근무 마지막 날에, 점장님은 나를 은밀히 불러내셨다. “첨지님. 생각에 변화는 없어요?” 나는 꽤나 단호하게 대답했다. “네. 그만두고 싶어요.”
“일 그만두면 뭐할건데요?” 그 말에 나는 잠시 멈칫했다. 일 그만두면? 고민은 짧았다. “쉬고 싶어요.”
분명 내 말은 대화의 마지막 말이었을 텐데, 점장님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받아쳤다. “얼마나?”
“네?” “얼마나 쉬고 싶냐고.”
우리 점장님은 이상한 구석에서 박력이 있었다. 예상치 못한 박력의 등장에 조금 당황해 어버버거리고 있자니, 점장님이 말을 이었다.
“쉬고 싶은만큼 쉬고 돌아와요. 그게 싫으면 그냥 지금 그만둬도 되고, 쉬어보고 중간에 일을 그만두고 싶어져도 괜찮아요. 그냥 미리 연락만 해줘요.”
점장님은 순식간에 나에게 수많은 선택지를 덜컥 안겨주었다. 인간은 자유의지의 동물이라지만, 이렇게 많은 자유의지는 아무리 나라도 부담스러웠다.
‘봐주는 게 없다’던 직장에서 들은 말 치고는, 너무.. 다정했다.
뜻하지 않은 과한 배려는, 그만두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자꾸만 눈에 밟혔던 걸 한꺼번에 불러왔다. 그건 그냥 얼굴들이었다. 직장 동료들의 얼굴. 나를 향해 웃음짓거나 무어라 말하고 있는 동료들이었다.
내 MBTI는 enfp이다. 엔프피, 사람만 보면 좋아서 미쳐 날뛰는 댕댕이 타입이다. 내 개 꼬리는 여기서도 정상 작동 중이었고, 나는 이미 시간을 보낸 동료들에게 정을 많이 줘버린 상태였다.
나에게 순식간에 수많은 선택지를 줘놓고 빨리 일터로 다시 들어가야한다는 듯 급하게 구는 점장님 때문에, 선택지의 수에 비해 주어진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계속 그냥 멍청하게 서있던 나는 결국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내 대답을 듣고 알았다며 쿨하게 뒤돌아 들어가는 점장님을 향해 내가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그.. 점장님. 감사해요.”
11월이 되면서, 하복을 벗고 동복 유니폼을 입은 그의 반듯한 등이 보였다. 점장님은 어깨를 으쓱였다.
“뭘. 첨지님이 그동안 잘해준 덕분인데.”
그렇게 내 퇴사 계획은 실패했다. 퇴사 대신 주어진 2주의 휴식을, 나는 어떻게 하면 뽕을 뽑을지 고민했다. 그러자마자 떠오른 곳은 바로 강원도 묵호였다.
나에게 묵호를 알려준 분은 쥬쥬님이었다. 물론 내가 좀 익명을 과하게 짓긴 했지만, 그분은 실명도 쥬쥬만큼이나 센세이션하다. 직원 분들이 나이가 있으신만큼 하나같이 ‘숙’이나 ‘자’가 들어간 올드한 이름들이 많았는데, MZ같은 쥬쥬님의 이름은 그 사이에서 항상 돋보였다. 이름만큼이나 쥬쥬님의 행보는 MZ스러웠다. 전국 팔도의 맛있는 음식을 매주 어딘가에서 들고 와서 “이건 경주 쪽에서 유명한 찰보리빵이야.” 이런 멘트와 함께 직원들에게 나눠주곤 하는 것이다. 그녀의 취미는 팔도의 맛집 탐방이었다.
또, 그녀는 딸과 함께 독서하는 걸 좋아하셨는데 나는 평균 연령이 56세인 내 직장에서 ‘이북 리더기’라는 단어를 들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쥬쥬님은 이북 리더기를 스스럼없이 입에 담으며 ”그건 좀 별로더라. 나는 책은 종이로 읽는 게 좋아.“ 라는 말을 하는게 아닌가. 내가 저번주에 친구와 나눈 대화랑 너무 똑같아서, 일순 내가 누구와 대화를 하고 있는 건지 헷갈렸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강추한 여행지가 바로 강원도 묵호였다. “첨지님! 내가 저번주에 딸이랑 여행을 다녀왔는데 말이야~” 이런 살가운 말로 시작된 대화는 내가 강원도 묵호 주민들의 인심이 얼마나 좋은지까지 알고 나서야 끝이 났다.
나는 묵호를 그때 처음 들어봤다. 어찌나 생소하던지, 처음에는 지명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했다.
네? 뭐라고 하셨어요? 무코? 목포요?
쥬쥬님은 분명 여행사 직원을 해도 꽤나 적성에 잘 맞을 게 분명하다. 그녀는 “혼자 놀러온 20대 여자들도 엄청 많더라. 다들 바다 보면서 카페에서 책읽고, 작업하고 그러더라고. 동네도 한적하고 평화로워서 참 좋았어. 내 딸도, 다음엔 자기 혼자 가겠다고 막 그래.” 이런 말을 늘어놓았는데 정말 사소한 하나하나까지 전부 나의 취향에 들어맞아서 놀랐다.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ai가 맞춤형 여행지를 찾아드려요‘ 이딴 서비스보다도 더 적중률이 높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2주 휴가를 받자마자 묵호로 향하는 기차표를 덜컥 예매했다. 원래 엔프피의 단점은 충동적이라는 것이고, 장점 역시 충동적이라는 점이다. 내 평생 인생의 모토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 였고, 나는 단김에 2박 3일 묵호 여행을 떠났다.
ktx에서는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펼쳤다.
책을 읽다가, 옆에 사람이 타고, 나는 졸고, 옆의 사람이 내리고... 어느 순간 잠이 깼는데 그무렵 난 거의 정동진에 다 와 있었다. 쥬쥬님의 조언에 따라 기차 좌석도 A열을 예매해둔 상태였다. 창문을 따라 펼쳐진다던 바다는 어디있는거지? 생각하자마자 옆에서 청량한 기운이 몰아쳤다. 갑자기 코앞에 나타난 바다는, 엄청, 매우, 너무 가까웠다. 바다 위를 달리는 기차라도 탄 것 같았다. 파란색 파도가 옆에서 몰아쳤다. 마치 서핑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바다가 나타나면 창밖을 멀거니 구경하다가, 그게 산으로 가려질때쯤에는 다시 책을 읽었다. 이걸 반복하고 있자니 너무 평화로운 기분이 들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묵호에는 해변이 굉장히 여러개 있었다. 그중에서 묵호 역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이 하나 있고, 역에서 30분가량 걸어야 나오는 어달항이라는 해변이 하나 더 있었다. 내 숙소는 그쪽에 있었다.
묵호는 하루에 버스가 두 번 다닌다. 그 버스를 기다려볼까 생각하다가, 그냥 숙소까지 가는 길이 모두 바닷가여서 그냥 하릴없이 걷기 시작했다.
바닷가라고 하기도 뭐 했다. 그건 정말 땅의 끝자락을 걷는 기분이었다. 내 바로 앞에 바닷물이 방파제에 맞고 튀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때도 1년전에 사서 다 헤진 보스 헤드셋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파도가 닿는 순서에 따라 튀어오르는 바닷물들이 마치 악보에 그려진 음표같았다.
음울하고, 회색이고, 거칠었지만 동시에 우아한 풍경을 보고 있으니까 그 그림이 떠올랐다. 프리드리히의 ‘안개 낀 바다 위의 방랑자’. 나는 고3때 김승리 커리를 탔었는데, 그 문제집 중 하나의 표지가 그 그림으로 되어있었다. 그때 처음 본 그 그림은, 나중에 내가 대학생이 되어 <미학의 이해> 교양 수업을 들을 때 다시 등장했다. 르네상스 시기때 정형화돠었던 그림 화풍을 깨고 등장한 그림의 예시 중 하나로 등장했던 그 그림은, 보는 순간 가장 높은 수준의 해방감과 자유를 만끽하게 해준다. 제목은 바다위의 방랑자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림 속에서 바다는 보이지 않는다. 그저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보는, 확트이고 웅장한 풍경만이 캔버스의 크기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나는 그 그림속의 방랑자와 같은 기분으로 겨울 바다 앞에 서 있었다.
묵호는 사실 2박 3일로 여행가기에는 관광지가 한정적이다. 논골담길, 도깨비골, 중앙시장, 청년몰 정도가 전부인데 논골담길과 도깨비골은 붙어있고 중앙시장과 청년몰도 붙어있다. 당일치기도 충분히 무리가 없을 것 같은 루트에, 작은 마을이다.
내가 묵호여행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장소가 있다. 바로 ‘투썸플레이스 동해어달해변점’이다. 우리나라 어딜가든 흔히 볼 수 있는 프렌차이즈 카페가 명소로 등극된 건 좀 웃긴 일이긴 하지만, 그만큼 그곳은 완벽한 장소였다. 카페의 어느 좌석에 앉든 넘실거리는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곳에 하루종일 앉아있기만 해도 이번 여행은 성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사람도 없고 매장도 커서, 훼방 놓을 사장 하나 없는 이곳에 하루동안 앉아있지 못할 이유도 없었으므로 이미 나의 여행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매장은 놀랍게도 본사 직영점이다. ‘직영’이라는 뜻이 분명 본사가 운영하는 매장이라는 뜻이긴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직영이다. 무슨 뜻이냐면 우리 건물의 4층에 본사가 들어앉아있다. 직원 식당에서는 이사의 얼굴까지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나에게 묵호라는 곳을 알려준 쥬쥬님은 우리 회사의 다른 계열사 음식점의 매장 점장이었다. 1층에는 우리 매장이 있고, 한때는 그 위층에 그녀의 매장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때 커다란 위기를 맞은 그곳은 결국 폐업했다.
지금 그곳은 거의 폐가처럼 변해버렸다. 담력시험을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텅비어버린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가 아무렇게나 쌓여있다.
쥬쥬님은 다른 직원들과 달리 아침에만 잠깐 출근하시는 분이다. 내 출근 스케줄이 아침으로 잡히는 날은 항상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때 나는, 쥬쥬님이 어떻게 우리 매장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들었다. 그녀의 매장이 코로나때 폐업을 했고, 관리와 운영으로 오랜 시간 지쳐있던 그녀는 이 기회에 은퇴를 했다. 그러나... 그녀의 빛나는 경력을 두고 볼 수 없었던 회사에서는 자꾸만 그녀를 우리 매장으로 끌여들였던 것이다. 쥬쥬님은 처음엔 계속해서 거절했다고 했다. 그러나 삼고초려도 아니고, 무슨 오고초려 정도 되는 끈질긴 설득 후에 결국 그녀는 우리 매장의 파트타임 근무자로 들어왔다.
그녀는 이곳에 들어오기까지 지지부진 이어지던 설득이 얼마나 거지같았는지를 길게 설명했다. 그녀의 전 직장이 등장한 건 서두의 ‘우리 매장이 폐업해서~‘ 고작 아홉글자밖에 없었지만, 그 아홉글자가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았다.
쥬쥬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혀끝에 걸려 데롱데롱거리던 질문 하나를 끝내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쥬쥬님은 괜찮으세요?”
회사 사정으로 문을 닫았든 뭐든, 그녀에게는 그녀가 책임지던 한 매장이었을 거다. 점장으로 있으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그곳이 폐업할 당시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녀는 괜찮았을까?
코로나때 자영업이 힘들었다는 건 전국민이 아는 이야기다. 재난 지원금을 명목으로 지역이름을 붙인 00페이가 그때 등장한 것도, 다 쓰러져가는 외식 업계를 어떻게든 부양해보고자했던 국가의 노력이었으니까. 코로나가 성행할 당시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하루종일 방안에 갇혀서 원격 수업을 들었던 내가 그런 자영업의 현실을 알 리 만무했다. 그런 사실이 3년 뒤에야 나에게 이렇게 와닿고 있었다.
쥬쥬님은 한때 점장이었던만큼 세세한 모든 것에서 관록이 넘쳤다. 진상손님을 마주했을 때도, 진상 직원을 마주했을때도 그녀의 삶의 경험치가 철철 흘러넘쳤다. “아우 나만 불러 나만. 통로에 대기하고 있는 다른 직원도 많은데 유독 나만 부른다니까.”
그렇게 사소한 불평 하나에도 이 일터, 이 업계가 익숙한 사람의 어떤 권태감이 엿보였다.
하루는 그런 날도 있었다. 록시땅 핸드크림이 한무더기로 쌓여있고, 쥬쥬님이 그 앞에서 곤란하게 미소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지나가던 나를 붙잡았다. “이거 하나 가져갈래?”
록시땅은 유명한 아로마 브랜드인데, 핸드크림이 특히 유명하다. 조그만 튜브에도 2만원씩이나 하는 고급 브랜드의 핸드크림을 뜬금없는 곳에서 그렇게 많이 볼줄은 몰랐기에 내 눈도 커졌다. “이게 다 뭐예요, 쥬쥬님?”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아, 나 위층 장사할때 자주 오셨던 단골 분이 가져오셨어.”
그런 일이 왕왕 있었다. 한때 그녀의 가게를 사랑하던 단골분들은 매번 그녀가 출근하는 아침 시간에 맞춰 우리 매장을 찾아왔고, 어디선가 들고온 선물을 매번 한무더기씩 안겨줬던 거다.
항상 권태감에 젖어 사소한 불평불만을 달고 있던 그녀의 입술은, 옛손님을 마주하는 순간만큼은 거짓말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품곤했다. 그런 모습을 목도할 때마다 나는 보면 안되는 것을 훔쳐본 사람의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매번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사이인 그녀가 그럴때만큼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이 우리 매장이 아니라, 시간이 돌아간 위층의 가게인 것만 같았다. 그 정도로 손님들과 그녀의 유대감은 짙었다.
한달에 두세번씩은 꼭 그녀를 찾아 방문하는 손님들, 그럴때마다 또 오셨냐며 웃으며 그들을 맞이하는 쥬쥬님. 쥬쥬님이 출근하는 아침시간만큼은 우리 매장도, 위층의 공간이랑 뒤섞인다. ‘정’과 ‘인연’, ‘인심’같은 단어들은 외국어로 번역하기 가장 어려운 단어라고들 한다. 그런데 웃긴 건, 그런 단어들은 한국어로도 완벽하게 뜻을 풀이해내기 힘들다. 그리고 더 웃긴 건, 가끔은 활자 백여개보다도 이미지 하나가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내 눈앞의 쥬쥬님과 손님들처럼.
아직도 가끔 엘레베이터가 고장나는 날이면 나는 계단으로 5층에 있는 락커룸까지 올라가곤 한다. 그 길에 항상 나는 쥬쥬님의 매장을 마주친다. 안에 있는 가구를 다 빼내지도 않아, 불꺼진 공간안에 테이블과 의자가 기묘한 구조로 쌓여있는 그곳은 여전히 담력시험장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달그락거리고 음식이 끓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쥬쥬님과 그녀의 손님들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떤식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어떤식으로 인사를 나누며 어떤 식으로 서로를 축복하는지 지켜봤기 때문이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빼고 장소를 정의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반대로 사람들이 있으면 그 장소를 정의하는 것도 가능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