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사 동기가 맑눈광이었던 것에 관하여
사실 세상의 모든 것에 빛과 그림자는 있다. 국가 체제, 기업, 제도... 이런 거시적인 부분은 당연하고,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더라도 인간 하나하나에게도 빛과 그림자는 있다. 나는 어렸을 때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문장이 있는데, 바로 ‘인간을 하나의 형용사로 정의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문장이다. 한 인간이 있고 그 인간의 장점과 단점이 존재할 뿐이지 ‘나쁜 사람’처럼 어떤 사람을 완전히 표현해내는 형용사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 매장도 그렇다.
우리 매장의 빛이 나를 둘러싼 애정이라면, 그림자는 모두 내 입사동기들이 품고 있었다.
내 입사 동기는 총 5명이다. 그중 세 명이 퇴사했고, 지금은 나를 포함해 둘 뿐이 남았다. 그중 두번째로 퇴사한 나의 입사동기는 ‘맑눈광’이었다.
맑눈광은 맑은 눈의 광인이라는 뜻을 가진 줄임말로, MZ들 사이에서 종종 쓰인다. 나는 여러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내 동기에게 ‘맑눈광’이라는 별명을 붙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은 그녀와의 이야기를 해보려한다.
나의 맑눈광 동기는 나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입사했다. 맑눈광 동기는 매우 키가 큰 편이었다. 배구 선수를 해도 될 것 같은 건장한 체형에 팔도 무척이나 길었는데, 그녀는 처음 입사하고 모르는 걸 물어볼 때마다 그 기다란 팔을 발표하듯 거수하곤 했다. 마치 전봇대 같았는데, 그럼에도 그 모습이 우습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그녀의 코에 걸쳐져있는 안경은 그녀를 무척이나 지식인처럼 보이게 해주었고, 안경알 너머로 빛나는 눈동자가 무척이나 반듯했고 정의로워 보였다.
그녀는 마치 성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신자마냥, 거룩한 느낌이 들 정도로 선임들의 말을 새겨듣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난 그녀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암암리에 그녀를 도와주면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그녀는 종종 나에게 와서 특유의 얇고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감사해요. 복받으실 거예요.” 라고 인사했다.
그런 인삿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지만 그 특이함조차 그녀와 퍽 잘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가서는 그 이상한 인사를 듣기 위해 그녀를 도와줄 정도였다.
맑눈광 신입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어렸다. 물론 그래봤자 우리 엄마의 또래였지만.
그녀에게는 중학생 딸이 하나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가장 대학 입시와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틈만 나면 나에게 다가와서 “외대가는 팁 좀 알려줘요. 우리 딸은 맨날 행복하기만 해서 문제야.” 라고 말하곤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럴때마다 “행복하면 됐어요. 그게 최고야.” 이러면서 넘기긴 했지만, 내 작은 행동마다 칭찬을 넘어선 칭송처럼 들리는 말을 쏟아내는 그녀가 매우 낯간지러웠으며 그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우리 직원들과 마찰을 빚기 시작한 날을 기억한다. 문제의 시작은 그날 나와 같은 포지션을 함께했던 분이, 그녀의 행동을 ‘지적’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맑눈광 신입은 물병을 채우는 잡일을 하고있었는데, 내 파트너가 물병을 어떻게 쉽게 채우면 좋은지 꿀팁을 그녀에게 전수했던 것이다. 맑눈광 신입은 내 파트너의 조언을 무시하고, 그녀는... 바로 선임을 찾아가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 주제는 ‘근무하면서 겪는 어려움’이었다.
혼자 남은 내 파트너는 무안해보였다. 무척이나.
그녀는 나에게 심란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첨지님. 아까 내 말이 기분 나쁘게 들렸어요?”
그러니까 아마, 그런 기분이었을 거다. 나와 사소한 다툼을 했던 친구가 다음날 교무실에 앉아 선생님께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기분.
혼자 남아 있는 사람의 마음은 무간에 빠지게 되는 법이다. 무슨 말을 하고 있지? 내가 한 말을 부풀려 말하지는 않을까?
불안이 꼬리를 물고 물어 결국에는 내가 학폭 가해자로 몰리는 상상까지 치닫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맑눈광 신입에게서 직접 모든 전말을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으면, 어느정도 지켜봐주면 좋을텐데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지적하시는 게 섭섭했어요. 심지어 제가 몇번이나 실수하는지 세고 계셨던 분도 있으셨다니까요? 실수는 모든 사람들이 할텐데, 자신들의 실수에는 너그러우면서 저에게만 깐깐한 잣대를 들이미니까.. 섭섭하고 일하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심지어 몇년 된 분들도 아니고, 고작 몇개월 된 분들이 그런 지적질이 더 심해요.“
난 그녀를 이해했다. 나 역시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당 두 마디여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40마디.
그러니까, 그날 나와 같은 포지션을 했던 분은 그냥 운이 안 좋은 거였다. 맑눈광 신입이 여기저기 치이고 다니면서, 속에 쌓였던 걸 터지게 만든 그 타이밍에 우연히 그곳에 있었을 뿐이다. 타이밍을 잘못 맞춘 죄로 내 파트너는 그렇게 타깃이 되고 말았다.
그 일을 계기로 맑눈광 신입은 서서히 무리에서 겉돌기 시작했다. 맑눈광은 종종 나를 찾았다.
“쉬는 시간에 나는 책을 읽고 싶은데, 그러면 다들 나를 욕해요. 내가 재수없대요. 난 사실 출근하는 길에도 영어 팟캐스트를 듣거든요. 그냥,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영어예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자기계발을 하는 것도 죄인가요? 사실 쉬는시간 땡치자마자 휴게실로 몰려가서 이불부터 펴고 잠자는 꼴들이 한심해요.“
나는 또 그녀를 이해했다. 우리 매장은, 쉬는시간이 고작 40분이었다. 쉬는시간 땡 치자마자 다들 휴게실로 몰려가 미리 켜놓은 보일러 덕에 따땃해진 바닥에 몸을 달구며 쪽잠을 자는 것이다. 그 보일러를 미리 켜두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임이 소리치는 것도 봤다. 물론 나는 휴게실에 올라가본 적이 없다. 일단 가장 큰 이유는 40분 동안 잠에 들 수 있을만큼 나에게는 숙면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런만큼 난 맑눈광을 이해했다.
나의 이해심과 별개로 그녀가 직장내에서 겪는 문제는 커져만 갔다. 나는 모든 일이 일어나게 된 계기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가장 시작점이 되는 계기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내 맑눈광 동기 퇴사의 계기는 그날일 것이다.
그날, 선임은 나를 포함한 세명의 신입들을 불러모았다. 점심 피크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는 작은 룸에 우리 넷은 둘러앉았다. 바야흐로, 사자대면이었다.
선임님은 그 특유의 하회탈처럼 휘어지는 눈웃음을 치면서 우리에게 물으셨다. “뭐 힘든 거 없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이 조금 착잡했다. 질문을 듣자마자 나는, 그 자리의 존재 이유를 깨달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이미 입사한지 2개월차였다. 그리고 입사한지 한달도 되기 전에, 이미 점장님에게 불려가 그 똑같은 질문을 들었었다. ‘일하면서 힘든 거 없어요? 이런 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줘야 조직문화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돼요.’ 내 옆에 있는 입사동기는 나보다 한 달 더 빨리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런 상담의 탈을 쓴 취조의 시간을 갖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우리는 이미 다 했다. 그러니까, 우리 둘은 허울이었다. 결국 그 자리는, 맑눈광 신입을 취조하기 위한 연막이었다.
’너 요즘 문제가 많던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이야기해봐.‘ 그 속뜻을 첫질문부터 깨달았기 때문에, 내 고개는 저절로 수그러들었다. 착잡함이 솟아났다.
맑눈광 신입은 어느 때보다도 단단하고 굵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필요이상으로 과한 언변은 자제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번에는 제가 화장실을 청소하는데, 밖에서 누가 지나가면서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화장실 청소하는데 한나절 걸리네~ 이런식으로요.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라도 된 것처럼 내 수그린 고개 위로 웅웅거리면서 울렸다. 나는 그 순간, 내 맑눈광 신입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싶어졌다.
사람 간의 관계가 연약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관계가 깨질때 나는 소리는 초콜릿 부서지는 소리만큼 미약하지만 어느정도 확실하다. 그 소리가 어느때보다 크게 들리고 있었다.
“실수한 건 그냥 객관적인 사실로만 알려주면 되지 필요 이상의 비난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실수하는데요. 선임분들도 다 실수하시면서, 저에게만 그러시면 저는 너무 자존감이 떨어지고...”
여전히 하회탈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내 맑눈광 동기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선임의 표정이 그때 조금 굳었다. 그녀가 끼어들어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쯤 나는 마음이 너무 착잡해서 울어버리기라도 하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사실 따져보면 맑눈광 신입의 말은 명명백백 옳았다. 그녀의 말을 따랐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부조리는 존재하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건 철학자가 내세운 이상국가에서나 존재할만한 것이었다. 일단 ‘인간’의 나라에서 그런건 불가능하다. 그걸 그녀는 모르는 걸까?
나는 마치, 미생 드라마 속에 들어오기라도 한 것같은 기분을 느꼈다. 사회 초년생이 부조리를 겪고 억울해하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본 오과장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딱 그런 착잡함을 느꼈다.
물론 나는 겨우겨우 숨을 색색 내쉬는 것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나의 상태를 알 리가 없었던 선임은 말을 이어나갔다.
“뭐 한나절 걸린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더 잘해야겠다, 이런 생각은 안들어요? 나같으면 그 생각부터 할 것 같은데.”
그리고 그녀는 그녀 세대에서는 얼마나 선임들이 더 엄격했고 규칙이 까다로웠는지같은 것들을 줄줄이 설명했다. 그 다음, 그녀는 덧붙였다.
“첨지님처럼 즐겁게 지내면 얼마나 좋아?”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나에게 혐오감을 느꼈다. 나는 그랬다. 나는 입사한지 몇주가 흘렀을때 점장님과의 면담자리에서 똑같은 질문을 받았었다.
“일하면서 뭐 힘든 거 없어요?”
“아니요. 할 말 없습니다.”
그게 내 대답이었다. 나는 그냥 그런 게 사회라고 생각했다. 믿을 수 있을만한 상대같은 건 존재하지 않고, 뒷말은 계속해서 돌고, 내가 출근하지 않아도 나를 욕하는 사람들은 존재하는. 그런 곳이 사회이고 그걸 견뎌내는게 사회생활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모습이 선임의 입에서 언급되자 조금 부끄러웠다. 사실 내 맑눈광 동기야말로 개척자였다. 나는 방관자였다.
그 모든 말들의 다음에, 선임은 나에게 물었다. ”첨지님은 뭐 할말 없어요?“
나는 이를 악물었다. “없습니다.”
그 후 다시 이어진 질문에 내 옆의 동기도 별반 다르지 않은 대답을 했다. 우리는 이곳의 생태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맑눈광 동기와 맞닿은 것이 공기밖에 없었음에도 그것만으로도 지금 그녀가 얼마나 상처 받았을지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겁쟁이의 마지막 용기를 냈다. 아마 MZ만이 할 수 있을 것 같은 짓을 했다.
나는 눈앞의 선임을 무시한채 맑눈광 신입을 향해 이야기했다.
“지혜님. 그런 말들에 너무 상처받지 마요. 그 말을 스스로한테까지 끌고오지 마요. 나는 누가 나한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우와 저 사람 성격 진짜 더럽다, 라고 생각하지 그걸 나와 연결하지 않아요. 선을 그어버려요. 저 사람이 한 말은 그 사람 선에서 그쳐요. 왜 저딴 식으로 말하지, 성격 개더럽네? 이러고 넘겨요.“
물론 다시 한번 언급하지만 내 인생은 소년만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 한마디로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사자대면을 마지막으로 나는 2주 일을 쉬었고, 내가 복직했을 때쯤에는 모든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지혜님은 처음의 그 간드러지고 유들유들한 목소리를 어디다 버렸는지 포악하고 날선 목소리로 “혓바닥을 함부로 놀린 죄, 모두 벌받게 해줄거야...!”처럼 사이비같은 말을 마구 하고 다녔다. 그즈음 맑눈광 동기는 직원들 사이에서 정신병자처럼 취급되고 있었고, 그녀는 퇴사 마지막날까지 여기저기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심지어 사람들은 나에게까지 웃지말라고 했을 정도였는데, 그 이유는 ‘자기 기분 나쁜데 옆에서 웃었다고 해코지할 수도 있잖아요.’였다.
그러나 마지막 날, 지혜님은 나를 찾았다. “첨지님, 약국에서 일해봐요. 거기는 일도 안 힘들고 좋아요. 막 높은 학력이런것도 필요없으니까 한번 지원해봐요.”
그렇게 말하는 지혜님의 목소리는 예전처럼 어딘가 유약하고, 간드러졌으며.. 다정했다. 내가 처음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그녀를 안아줬다. 고생많았다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장난스럽게 이야기도 해줬다.
지혜님은 활짝 웃었다. 악귀가 들린 것처럼 내내 초점 나간 눈동자가 그제야 맑은 눈으로 돌아온 상태로, 그렇게 웃었다. 그게 내 기억속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다.
내 맑눈광 신입의 이름은 ‘지혜’였다. 그녀의 실명 역시 세상의 모든 순리를 깨우친 것 같은 뜻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이름만큼이나 모범생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여러모로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지혜님은 예전에 약국에서 전산 일을 하다가 이곳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사무직을 하다 온만큼, 일처리 속도는 조금 느렸지만 그녀는 센스를 가지고 있었다.
센스란, 나도 모르게 필요로 하던 것을 상대가 챙겨줬을때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까 센스있는 사람이 되려면, 상대의 행동을 관찰해야하고 상대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야하며 그곳에서 상대에게 필요할만한 것을 마련해줘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센스있는 사람은 결국, 배려심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지혜님에게서 ‘센스’를 느꼈다. 그녀에게서 철철 넘쳐흐르는 배려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내 안목을 믿었다. 여전히 모두가 맑눈광 신입을 아픈 손가락처럼 언급하곤 하지만, 나에게 아직까지 맑눈광 신입은 마음이 따듯하고 배려심있는 사람이다.
그녀를 생각하면 머리가 너무 아프다. 선과 악, 옭고 그름, 정의와 불의. 이 세상 모든 윤리적 쟁점들이 머리 속에 휘몰아치는 느낌이다.
부조리를 이야기할 곳이 없으면 사람은 악귀가 된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지만 억울하기 때문에 원혼이 쌓인 귀신처럼 변해버리는 것이다. 퇴사하기 직전 지혜님은 그런 상태였다.
“뭐 상처받았다고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어. 그래도 선임들도 실수한다고 이야기한 건 잘못된 거야.” 사자대면 자리에 있었던 선임이 나와 둘이 있을때 마치 뒤풀이처럼 한 말,
“실수한 건 그냥 객관적인 사실로만 알려주면 되지 필요 이상의 비난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혜님의 말,
“첨지님은 어려서 다들 잘 대해주죠? 나는 처음 들어왔을 때 벽을 느꼈어요. 콘크리트같아요. 아무도 말도 안 걸어주고, 말도 안 들어줘요. 뭐 그런 걸 텃세라고 한다면 그렇게 부를 수 있겠죠.” 나보다 한 달 먼저 들어온 입사 동기에게 들었던 말.
나는 모든 정보가 모이는 음푹 파인 골같은 거다. 내가 어리기 때문에, 모두가 속풀이를 하듯 나를 붙잡고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다양한 정보가 내 안에 고여있었다. 모두의 다른 입장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내가 내 눈으로 본 그들의 성격이 휘몰아친다. 그러다 보면 모두가 이해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기분이 든다.
우리 매장은 하루 평균 매출이 2000만원이다. 그러만큼 일은 힘들고, 하루 입사해서 일하고 다음날 퇴직하는 사람도 꽤 많다. 그만큼 오늘도 우리 매장에는 신입들이 더럿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아무도 그들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들이 고수해오던 방식과 다르더라도, 그들이 생각하는 ‘옳음’과 궤를 달리하더라도 섣불리 신입들을 가르치려들지 않는다.
그게 다 한 사람 덕분이었다. 그녀는 직장에 있을 때에는 악귀취급을 받았지만, 지금 들어오는 신입들에게는 일그러진 영웅이었다. 나는 내가 처음 들어왔을때와 너무나도 달라진 새로운 신입들의 근무환경을 오늘도 느꼈다.
가끔은 뭔가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신입 몇명을 붙들고 “원래는 더 힘든 곳이었어. 그걸 알아?” 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걸 참는다.
나는 아직도 지혜님을 떠올린다. 그녀 덕분에 우리 매장이 이렇게나 바뀌었다는 걸 안다면 씁쓸해할까, 좋아할까, 뿌듯해할까, 분노해할까?
그러다가도, 그녀가 우리 매장 따위는 까맣게 잊고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웃으며 생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한다. 이곳에서 생활했던 기억을 상처로 남기질 않길. 그녀의 안식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