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직원부터 정직원, 그리고 말년병장까지.
우리 직장에서는 수습 2개월차를 맞았을 때 인사평가를 진행한다. 인사평가라는 과한 닉네임을 달고는 있지만, 실상은 간단하다. 모든 직원이 신입에 대한 평가 카드를 작성하게 된다. 해당 신입의 장단점 그리고 최종평가 등급을 작성해서 제출하면, 이 평가 결과에 따라 우리 점장님은 계약연장을 인질로 쥐고 협박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평가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달 동안 얼마나 근무태도가 개선되는지에 따라 정직원으로의 전환이 결정된다. 근무 3개월차가 될 때에야 비로소 ‘수습’ 이라고 적힌 이름표가, ‘정성’이라고 적힌 이름표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나도 입사한지 2개월차에 인사 평가를 받았다. 점장님이 나를 작은 방으로 불렀을 때 ‘올게 왔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점장님은 내가 초등학생 시절 다녔던 영어학원에서 자주 쳤던, 영어 쪽지시험같은 종이 뭉치를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나를 앞에 앉힌 채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그들이 나에 대해 평가한 내용을 읊어주었다. 스무 장도 넘는 평가지를 한줄로 요약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이 나에게 작성한 장점도, 단점도 다 비슷비슷했다. ‘어린 나이답지 않게 일을 잘함.’ ‘어린 나이답지 않게 센스가 좋음.’ ‘어린 나이답지 않게 성숙하고 생각이 깊음.’
그런가하면 단점으로는, ‘늦게 출근함.’ ‘출근 시간이 아슬아슬함.’ ‘너무 정시에 가깝게 출근해서 보기 불안함.’ 이 비슷한 내용들이 줄지었다.
나도 예상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어느 매장에서나, 어느 직장에서나 10분 전 출근은 기본이다. 그 10분동안 직원들은 출근 준비를 마쳐야한다. 우리 매장은 출근 전 락커룸에서 머리망부터 시작해서 유니폼까지 수칙에 맞게 깐깐하게 갈아입어야한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업장으로 내려와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항상 50분 전에 락커룸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고, 55분쯤 업장으로 내려가 근무를 시작했다.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했던 행동을 나는 세글자로 부정당했다.
“첨지님. 늦었네?”
당황스러웠다. 정각을 지나서 출근한 것도 아니고, 항상 정각보다 몇분 전에 출근하는게 내 일상이었는데 매일 아침마다 나를 향한 지적이 쏟아졌다. 너무 아슬아슬하게 출근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른 직원분들은, 정시 출근인데도 불구하고 20분에는 락커룸에 도착해서 옷을 갈아입는다. 그리고 그들은 락커룸에 앉아 수다를 떨면서 40분이 되길 기다리고, 무려 20분이나 이르게 업장에 출근하는 것이다. 나로써는 그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락커룸에서 모든 준비를 하고 내려가기 때문에, 우리는 업장에 도착하는 즉시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장갑 하나만 끼면 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로서는 그 20분이나 되는 갭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문화를 나에게 강요하는 것도.
“첨지님. 좀 더 빨리 와요. 다른 분들은 빨리 온단 말이에요.”
“첨지님. 그렇게 딱 맞춰서 출근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 거예요.”
거의 모든 아침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50분이 넘어가는 순간 나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선임들도 있었고, 초반에는 내 출근시간을 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당당했다. 내 행동이 그 어떤 규칙에도 위반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사 평가지를 들고 있는 점장님께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다.
“10분 전 출근이 원칙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어느 매장, 어느 직장에서나 그렇잖아요. 그 10분은 근무를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매장은 락커룸에서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내려와 바로 일을 시작하기 때문에, 저는 락커룸에만 일찍 도착해서 정시 전에만 업장에 내려오면 아무런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점장님이 나에게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에요. 첨지님의 출근 시간을 두고 ‘늦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야겠죠.“ 그리고 그는 웃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 나도 그들에게 그렇게 이른 출근을 강요한 적이 없어요.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다들 그렇게 행동하는 겁니다. 아마, 책임감 때문이겠죠. 그들이 첨지님한테 그렇게 말하는 걸 이해해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스스로 살아오면서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한 적 없었지만, 내 책임감에는 예외가 있었나보다. 20분 먼저 근무를 시작하고 싶은 책임감은 일단 나에게는 없었다.
하루는 그런 날이 있었다. 밤 늦게, 평소 친하게 지내는 나은 언니한테 전화가 왔다. 언니라고는해도 30대 중후반이긴 했지만, 나를 제외하고서 이 업장에서 가장 어린 사람이었다. 나은님은 쾌활하고 털털한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술로 유명했다. 회식도 일년에 할까말까한 이 직장에서 술로 유명해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게 분명하다. 그녀는 거의 대부분 숙취로 헤롱대면서 출근하거나, 숙취에 괴로워하며 끼니를 모두 거르거나, 취한 상태로 출근하는 등 갖가지 방법으로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나한테 전화가 온 날 밤도 그녀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언니의 말투는 여전히 호탕하고 쾌활했지만 가끔 자음몇개와 모음 몇개가 그녀의 입술 위에서 미끄러졌기 때문에 그가 마신 알코올 양이 적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첨지야~ 내가 말이지, 내일 오픈조거든? 근데 지금 다른 지방에 왔는데... 도저히 돌아갈 수가 없을 것 같아. 나랑 내일 근무 시간 좀 바꿔줄 수 있을까?”
“알았어요. 근데, 저 오픈 조 한번도 안해봤는데 괜찮아요?”
“아이 괜찮아 괜찮아. 오픈 조도 별 거 없어. 그냥 일찍 가기만 하면 돼. 6시 20분.. 아니 30분... 일찍 갈수록 좋아!“
그리고 그녀는 고맙다고 연달아 얘기하더니,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첨지야 나... 너가 출근 안하면 내가 죽어. 진짜 큰일난다. 정말 부탁 좀 할게.
나는 그때까지 오픈 조 출근을 한 번도 없었지만, 건너건너 그 악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우리 매장의 오픈 시간이 7시였기 때문에, 오픈 조의 출근 시간은 일단은 7시였다. ‘일단은‘.
그러나 오픈 조 근무자들은 오픈 준비를 위해 40분 가까이 일찍 나와야한다고 그랬다. 무급으로 한 시간 더 일해야하는 꼴이었기 때문에, 오픈 근무는 직원들 사이에서 기피 대상이었다.
나는 거의 5시에 일어나서 출근 준비를 마치고, 6시 20분에 업장에 출근했다. 언니는 6시 30분까지만 가면 된다고 나에게 부르짖듯 말했지만, 나는 10분 더 일찍 출근했다. 거의 자지 못했고, 지하철도 운행하지 않는 시각이라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음에도 몸은 저절로 척척 움직였다.
원래도 목소리 큰 언니가 외치듯이 애원한 말들이 간밤 내내 내 머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일찍 갈수록 좋아.“ ”너 진짜 할 수 있는 거 맞지??“ ”너가 출근안하면 내가 죽어.“
나는 그 모든 말들에서 거부할 수 없는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내가 언니의 대타였기 때문에. 언니의 몫을 오롯이 해내야하기 때문에. 내가 실수하면 언니가 욕을 먹기 때문에.
그러니까.. 그 언니의 부탁이었기 때문에.
나은님은 내 멘토였다. 우리 직장에서는 내가 입사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갑자기 멘토멘티 제도가 생겨났다. 아마 그쯤 들어온 신입 수가 갑자기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섯명 정도되는 신입들의 관리를 위해 그들은 전담 마크하는 멘토를 한명씩 붙여주었고 나은님은 내 멘토였다. 그녀는 멘토였지만, 나에게 해주는 말들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됐어. 너무 열심히 하지마. 적당히 해.”
“휴지 줍는 척 의자에 좀 앉아. 다리 아프지?”
“화장실 들어가서 남자친구랑 통화 좀 하고 와. 아무도 뭐라 안해.”
겉으로 들으면 그 어처구니 없는 말들은 하나같이 나를 향한 애정과 염려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나는 내 입사첫날 나와 첫 끼니를 단둘이 먹은 상대가 나은님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도 전날에 술을 마셨던 게 분명한 그녀는, 조금 수척한 얼굴을 어떻게든 구겨가며 나에게 미소를 지어보였으며 외롭지 않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주었고 양치도구도 챙겨오지 않은 나에게 자신의 새 칫솔을 내어주었다. 그때 받은 칫솔은 아직까지 화장실 찬장에, 그녀와 나의 똑같은 칫솔이 마치 커플처럼 나란히 꽂혀있다.
나은님은 내가 처음 들어오고 일주일 내내 똑같은 질문을 했었다. 항상 ”남자친구 있다고?“로 시작되는 그녀의 질문은, 내가 신나서 남자친구를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떠들때까지 이어지곤 했다. 그녀는 특유의 커다란 웃음소리로 항상 이야기 내내 화답해주었고, 중간중간 짓궂은 농담으로 내 이야기의 감초가 되어주었다. 나는 그것이, 또래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근무하는 나를 위한 말동무였다는 걸 안다.
내가 오픈 조로 근무를 교환하고 일찍 출근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업장으로 퍼져나갔다. 그들은 기특함, 의구심, 의아함 등등이 섞인 감정을 담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첨지님이 글쎄, 오늘 6시 20분에 출근했어요~ 엄청 빨리 왔다고요~~”
“첨지님이 그렇게 일찍 출근했어?”
나한테 몰려와서 물어보는 그들을 향해 나는 멋쩍게 웃어보일 수밖에 없었다. “오픈해야하니까 일찍 왔죠, 뭐.” 능글맞게 이야기했지만 나는 오후 느지막이 출근하는 나은님의 손을 부여잡고 부드럽게 웃었다.
“어제는 잘 들어가셨어요?”
20분 일찍 출근할 책임감과, 40분 일찍 출근할 책임감.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내가 근무를 바라보는 방식에 있었다. 나는 항상 사람을 보고 일했다.
내가 최근에 읽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세이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에서 인상깊게 읽은 구절이 있다. 바로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일했기에 모두가 그를 존경했다’라는 구절이었다.
나는 말하자면, 매장을 위해서도, 돈을 위해서도, 손님을 위해서도 일한 게 아니었다. 나는 항상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보고 일했다. 그랬기에 나는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이해했지만 몇몇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사람들은 이기적인 사람들이었다.
내 퇴사일이 가까워지면서 주임님이 나를 말년병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를 대신할 신입들도 대거 들어왔는데, 총 네명의 스무살짜리 알바들이 들어왔다. 나는 그녀들에게 힘들면 화장실에 가서 앉아있으라고 말하기도 하고, 쉬는시간에 코코아를 끌여주기도 하고, 그녀들이 촘촘한 근무에 적응하지 못해 놓친 몇몇가지 일들을 대신 해 주기도 했다.
내가 받은 것들을 그들에게 해주었고, 내가 받았으면 했던 것들을 그들에게 해주었다. 나은님에게 직접 받았던 따뜻한 배려들을 그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다. 내 움직임 하나하나에 바람을 담았다. 이곳이 신입들에게 더 다정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근무는 힘들더라도 사람을 보고 위안을 얻길 바라는 바람.
나는 분명 아직 미숙하다. 그리고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나를 한결같이 품어주었던 동료들을 보면서, 약자를 포용하는 ‘어른’의 모습을 배웠다.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배운 가장 큰 인생의 교훈이다. 나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약자를 어떻게 품고 어떻게 위해줄지 배웠다.
그것이 내 정직원 이름표에 적혀있는 ‘정성’이라는 두글자에 담긴 비밀이다. 내 정성은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사람들을 위해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