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7. 휴학

번아웃은 부분적용이 안된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by 첨지



언제였더라? 인스타에서 좋은 글귀를 필사하는 계정이 알고리즘에 뜬 적이 있는데, 유독 그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너의 상상으로 만든 불안에 지지 마.’

휴학을 하고 초반을 생각하면, 그때의 난 온통 불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휴학을 할지 말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대학 새내기들을 보면 나뿐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긴하다.

요즘은 ‘계획 없는 휴학은 독이다.’ 이런 말들이 무슨 명언 취급을 받으며 떠돌고 있고 ‘휴학하고 추천하는 활동 30가지’ 이런 주제의 숏츠도 거의 세 개 걸러 하나 꼴로 보인다.

그런 걸 보면 코웃음 쳐주고 싶을 때가 많다. 휴학은 쉴 휴에 학교 학인데. 그냥 쉴 수도 있는거지, 세상은 끊임없이 나를 향해 커리어를 외쳐댄다. 단순히 한자처럼만은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나는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휴학계를 냈다. 유학자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인턴도 생각해보았지만, 나에게는 고작 6개월의 시간밖에 없었다. 그 어느곳에서도 나를 뽑아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6개월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허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자소서 하나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음식점을 택했다. 초반에는 힘들었다. 처음 해보는 10시간의 근무는 육체적으로도 꽤나 고통스러웠지만, 정신적인 어지러움이 컸다.

정말 과장이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내 일을 반대했다.



아빠는 나에게 하루에만 몇번씩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너 나이때는 16시간씩 공부만 했어. 너가 지금 돈을 벌 때야?“

아빠는 그렇게 공부를 해서 자수성가를 이룬 인물이었다. 그 말은 잔소리라고 취급하기에는 너무 무게감이 있었다. 다 맥락은 비슷했다. 일의 강도만 보고 걱정하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고, 지금 내 시점에서 적합하지 않은 일이라며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말이 따로 있었다. 그건 주방에 처음 들어온 직원이 나를 보자마자 했던 말이었다. “왜 여기있어요? 외식경영과예요?”

그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왜냐면 나는 외식경영과가 아니었으니까.



내가 잘못된 곳에 와 있는 건가? 라는 생각이 머리를 후려치자마자 그날 하루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 도통 힘들었다. 내가 인생을 낭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아주 끔찍한 생각이 들어버렸다. 그 일말의 가능성이 내가 그때껏 무시하고 있던 수많은 불안감을 부추겼다.

남들이 반대하는 길을 걷는 건 꽤 힘든 일이었다. ‘잘하고 있어.’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그 무렵의 나는 오직 혼자만의 싸움을 해야했다. 불안과 인생과 나. 그 셋이 어딜가나 함께였다. 함께하기에는, 영 끔찍한 라인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그 시기를 버틸 수 있게 해줬던 것도 직장이었다.

하루 평균 매출 2000만원이 나오는 나의 직장은 매우매우 바빴기 때문에 잡생각은 불쑥불쑥 찾아왔다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일쑤였다. 육체노동은 상큼했다. 불안도, 평온도 모두 이곳에서 떠안은 셈이다. 아주 병주고 약주고다.

그러니까 아직도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나에게 찾아와라. 내가 우리 직장의 추천장을 써주겠다. 장난이고, 육체를 움직이는 건 아주 큰 도움이 된다. 걱정이 생기면 한바탕 달리고 오라는 사람들의 말은 완벽에 가까운 정답이다.



우리 매장은 급여를 국민은행으로만 넣어준다고 했다. 나는 신한카드 보유자였기 때문에, 취직하고 처음으로 국민은행에 가서 급여통장을 만들었다.

처음으로 신용카드도 발급받았다. 그 신용카드를 처음 결제한 건 언어 인강이었다. 대학생 때는 쉽사리 결제하지도 못하던 것을 3개월 할부를 끊어가며 고민없이 구매했다.

하루에 10시간씩 근무를 하다보니까 시간이 많이 없었다. 12시에 출근하기 전 카페에 가서 간단한 빵을 먹으며 인강을 들었고, 근무 쉬는시간 40분 짬을 내서 인강을 들었고, 퇴근한 뒤 야심한 시각 무인카페같은 곳에 가서 공부를 마무리했다. 시간이 너무 없었다. 그당시 나에게는 시간이 분단위였다. 1분이 얼마나 길고, 10분은 얼마나 어마어마한 시간인지 깨달았다.



그렇게 용을 쓰는 내가 불쌍해보였는지 직원이 쉬는시간에는 좀 쉬라고 토닥여준 적도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어본 사람도 있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답했다. “유학 자금 벌려고 일하는데, 정작 공부를 안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잖아요.”

장난스럽게 대답했지만 사실 내 속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나중에 이 시기를 돌아봤을 때 조금의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아서, 남들 하는 것만큼은 하려고 미친듯이 나를 쥐어짰다.



‘남들 하는 것만큼’

그 목표가 너무 어려웠다. 내가 보기에 남들은 모두 멋진 커리어를 쌓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군대마냥 이곳에 10시간씩 갇혀있는 동안 남들은 쑥쑥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 같아서, 그 속도 차이가 얼만큼인지를 모르니까 불안은 자꾸 커져가고 초조함은 쌓였다.

미친듯이 일하고 자투리 시간에는 미친듯이 공부하면서도 자꾸만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나를 괴롭히는 불안이 너무 버거워서, 나는 그 불안을 구체화시켰다. 정확히 내가 어디에 불안감을 느끼는지 줄글로 표현하고자했다. 항상 뭉뚱그려서 다가오는 그 시커먼 감정을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만드는 첫 단계를 밟았다. 내가 스스로에게 문제를 내는 거다. 불안 1. 내가 3학년이 될때까지 아무런 대외활동을 하지 않은 것.

문제를 냈으면 이제 풀어야한다. 저 불안을 어떻게 해결하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냥, 일단 시작하는 거다.



그때까지 밥먹거나 짧게 통근할 때는 인스타나 유튜브를 보곤 했다. 머리 쓸 필요없이, 가볍게 휙휙 넘기며 시간을 떼우기에 그것만큼 제격인게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 시간에 대외활동 사이트를 들어갔다. 무슨 옷쇼핑하듯 스크롤을 내리면서 대외활동 리스트를 구경했다. 괜찮아 보이는 걸 찜하고, 하고 싶은 대외활동 링크를 나와의 카톡방으로 보냈다. 나는 내세울만한 경력이 딱히 없었기 때문에 합격하는 비법은 물량공세 하나뿐이었다. 동시에 한 여섯개 정도 되는 대외활동을 지원하면서 ‘다 붙으면 어떡하지? 너무 바빠지는데.’ 거만한 생각을 하고는 낄낄거리기도 했다.

한동안은 지원하고 떨어지는 것만 반복됐지만 그것마저 괜찮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보다, 그래도 내가 무언가를 준비는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대외활동은 네 개 정도 한 것 같다. 릴스 편집도 처음 해보고, 컨텐츠를 구상하기 위해 맨날 머리를 끙끙 부여잡고, 맨날 노트북을 붙잡고 앉아서 네시간씩 홍보용 디자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대외활동도 근무, 공부와 병행되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배로 바빠졌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고 쪼개고. 그렇게 쉬는 시간 없이 달려와서 고작 내 이력서에 늘린 문장은 네 줄이었다. 주변에 대외활동을 열개씩 스무개씩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미미한 숫자였지만, 나는 과욕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불안에 휘둘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작하고 멈출 때를 잘 알아야한다는 거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시작했다면, 더이상 불안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멈출 줄도 알아야한다.



제일 좋았던 대외활동은 교보문고 대외활동이었다. 나는 교보문고에서 제공해준 자기계발 강연 영상도 시청했고, 책을 읽고 서평도 썼으며 우수 서평자로 뽑혀서 상품권도 선물받았다. 그 상품권으로 다시 책을 사서 읽었다. 선순환이었다. 그 덕분에 독서도 꽤 했다.

희한하게도, 마침 ‘패션독서’가 MZ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보여주기 식으로 독서하는 건데, 그 유행 이후로 지하철에서 독서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우수수 생겨났다. 나도 MZ였기 때문에 그 유행에 힘입어 필사도 해보고, 책을 예쁘게 쌓아서 찍어보기도 했다. 문득 어디서 본 그런 말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패션이면 뭐 어떠냐고. 그렇게라도 무언가를 한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니냐고.



<달과 6펜스> <면도날>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문학전집도

읽었고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입니다>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가장 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에세이도 읽었고 <철학한다는 것> 비문학도 읽었다. 막상 한가했던 학교 다닐 때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이 읽은 게 웃음벨이다. MZ는 유행에 강하다! 아자 패션독서.



그런가하면 나는 새로운 취미도 찾았다. 방탈출이 그렇게 재밌는지 처음 알았다. 그때 나는 독서한 걸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아서 책스타그램도 운영했고, 방탈출한 것도 헛되이 하고 싶지 않아서 방탈출 리뷰 블로그도 운영했다. 돌이켜보면 기록 강박증이었다. 조금이라도 내 시간이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가는 걸 허락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그걸 초석으로 만들고자했다. 미래에 커리어를 위한 초석. 그때 내가 하는 것 중에 단순한 취미는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한두달 살았더니, 번아웃이 와버렸다. 번아웃은 부분적용이 안된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어떤 분야에만 번아웃이 오고 그치면 좋을텐데 그게 아니었다. 하긴 그렇게 속편하게 일이 굴러갔으면 애초부터 burn out 이라는, 사람에게 붙이기에는 무시무시하게만 들리는 그런 말을 쉽사리 쓰지는 않았겠다 싶다. 근무도, 대외활동도, 공부도, 독서도, 방탈출도, 기록도, 대인 관계도. 한번 찾아온 번아웃은 무슨 유행병처럼 퍼져나가서 그때 나를 이루고 있던 모든 것들을 태워버렸다.



12월 한달 간은 정말 놀기만 했다. 물론 근무를 계속했기 때문에 펑펑 놀 수는 없었지만, 주어진 자투리시간마다 최선을 다해서 놀았다. 원래 내 취미였던 휴대폰 게임도 하고 닌텐도 게임도 했다.

불안감이 찾아올 때도 당연히 있었지만, 그럴때마다 무시했다. 정확히 말하면 번아웃이라는 더 거대한 깡패가 불안감을 때려눕혔다.

아니, 나 지금 존나 힘들다니까? 어쩔건데 니가.

이런 느낌이었다.



오히려 게임을 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기록 강박증이 많이 치유가 됐다. 게임은 사실 하등 쓸모없는 행위이다. 열심히 키운 캐릭터는 사실 데이터 쪼가리에 불과하고 열심히 올린 레벨은 내 실제 레벨이 아니었으므로 게임 세상을 벗어나는 순간 하등 쓸모없어진다.

최준영 강사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관심에서 유용성을 찾으려 하지 말아라.’

우리는 관심이 가는 걸 그냥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관심있고 재미있는 건 그냥 하면 될텐데, 계속 이게 나한테 도움이 될까? 라는 생각을 한다고.

책스타그램을 만들고 방탈출 블로그를 운영했던 나를 생각하면 정말 그렇다.



사실 유용성을 찾으려고 하는 순간부터 관심은 점점 옅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냥 관심이 생겼을 뿐이었는데, 이제는 그 관심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아야되기 때문이다.

게임 속 나의 캐릭터가 데이터 조각에 불과하더라도, 읽은 책의 내용이 언젠가는 완전히 기억나지 않게 되더라도... 쓸모없는 순간 몇개 정도는 인생에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거니까 쓸모없는 순간이라는 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만 쓸모있다고 생각하면 그 누구도 태클걸 수 없다. 내 세상에서는 내 말이 법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할 건 하나다. “잘 놀았다!” 이 한마디만 해주면 된다.



나는 운이 좋았다. 해의 말에 번아웃을 맞았으니까. 번아웃보다 강력한게 있다면 바로 1월 1일이다. 새해목표라는 더 커다란 깡패는 성큼성큼 다가와서 불안감과 번아웃을 모두 때려눕혔다. 더블다운이었다. 2025년이 되고 번아웃을 깔끔하게 이겨낸 나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하고 싶은 운동도 하고 다시 공부도 하면서 적당적당히 잘 살고 있다. 한달 논 만큼 공백은 당연히 존재했기 때문에 그걸 메꾸느라 고생을 하긴 했다. 그러나 한때 그렇게 놀기만했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내 인생에 전체 적용되어버렸던 번아웃을 이겨낼 수 있었고, 또 지금 다시 일어서서 달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이젠 나도 내 인생 첫 휴학기를 자랑스럽게 말할 자신이 있다.

나는 미친듯이 일해봤고, 미친듯이 시간도 쪼개봤고, 미친듯이 놀아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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