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9. 파이어족

경제적 자립으로 조기 은퇴를 꿈꾸는 사람들

by 첨지



지금 이 순간으로 인생이 완전히 변할 수 있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어렸을 때의 인생은 매일이 비슷하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어제같고, 내일도 오늘 같을 거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1교시부터 7교시까지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비슷한 생활을 십수년간 해야한다. 매일매일이 판박이 같았던 인생은 20대가 되는 순간부터 완전히 달라진다.



대학생이 된 순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수강신청이다. 네이버 서버 시계를 켜고, 정각 1분 전을 알리는 수상할 정도로 간드러진 알림소리와 함께 광란의 마우스질이 시작된다. 그날 손가락의 민첩함에 따라 시간표가 달라진다. 그건, 끔찍한 복선이다. 앞으로는 짜여져 나오는 시간표따위는 없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건지는 오직 나에게 달려있다는. 스무살이 되자마자 하는 수강신청은, 인생 내도록 지속될 그런 끔찍한 일들의 예고인 것이다.

내 마음대로 짜는 시간표, 내 마음대로 짜는 인생.



대학생이 되고 첫해가 되어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 “너는 왜 독일어과를 선택했어?”

이름, 나이, MBTI, 인스타 계정. 누가 정해놓기라도 한 것처럼 진부한 순서에 따라 첫인사를 마치고 나면 바로 나오는 첫질문이었다. 같은 과끼리 있어도 그 질문이 나왔다. 내 앞에 있는 너도, 내 옆에 있는 너도, 건너편에 있는 너까지도 모두 독일어과인데도 꼭 그런 질문을 했다. 그럴때마다 한숨을 쉬면서 허심탄회하게 내뱉어버리고 싶다.

“선택한 적 없어. 너도 알잖아.”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교를 늘어놓고 지원해볼만한 과들을 늘어놓았다. 그 리스트를 결정하는 성적은, 내 주위에 있는 아이들의 실력과 시험당일날의 운으로 결정된다.

모든 일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노력’은 존재하겠지만 그 어느 것에도 ‘선택’이라는 단어를 달 수는 없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나는 노력을 했지만 성적은 선택할 수 없었고 대학도 선택할 수 없었다. 나는 외대 독일어과를 선택한 적이 없는데, 독일어과라는 꼬리표가 달린 인생은 덜컥 내 것이 되어버렸다. 이제 그 인생은 나에게 요구한다. 삶을 어떻게 살아갈 건지 선택하라고.



마치 그런거다. 사람마다 무작위로 도화지를 나누어준다. 검은색 도화지를 받은 사람도, 새하얀 도화지를 받은 사람도, 분홍색 도화지를 받은 사람도 있다.

검은색 도화지를 받은 사람은, 종이를 어떻게 꾸밀지는 온전히 본인의 몫이지만 무엇을 적더라도 일단 흰색 펜을 사용해야한다.

독일 유학은 나에게 흰색펜 같은 거였다. 한 시작점에 같이 선 사람들이 으레 공통적으로 밟는 삶의 과정 중 하나인 것. 우리 과의 3분의 1은 독일 유학을 갔기 때문에 나도 유학을 고민했었다.



사실 나는 독일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대학 첫날 배운 건 독일 알파벳에 동요 멜로디를 붙인 챈트였다. 동심가득한 노랫소리를 듣고 있자니, 현타가 왔다. 내 고등학교 동창들은 베개보다 두꺼운 정치학개론같은 걸 공부하고 있을 텐데, 나는 동요를 따라부르고 있구나. 그날부터 독일어가 싫었다. 따지고보면 그냥 첫날부터 독일어를 싫어한 거다.

내 전공수업은 교양 수업보다도 전문적인 지식을 담고 있지가 않았다. 거기서 오는 자괴감이 너무 컸다.

실제로 그 시절 내가 입에 가장 많이 담았던 말은 이거였다.

“문과생들이 왜 취업 안되는지 알겠다.”



그러다 보니 전공 수업을 몇개 듣지도 않았고 그마저도 학점이 처참했다. 그렇다고 달리 하고 싶은 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1학년 때 나는 내 손에 들린 검은 도화지를 혐오했다. 가끔 흰색 펜을 억지로 들어올려 귀퉁이에 낙서같은 걸 끄적이기만 했을 뿐이다.

그랬기 때문에 당연히 독일 유학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신입생 첫 수업부터 다양한 전공 교수님들이 독일 유학을 준비하는 법 따위를 알려주셨지만, 전혀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독일 유학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한 선배님이었다. 20학번의 멋진 선배님이었다. 같은 동아리에서 만난 그녀는 얼굴도 아주 예뻤고 공모전에 나가는 족족 상을 탔으며 거침없는 성격으로 주변의 호감을 샀다. 그녀는 술에 취해 어느날, 내 손을 붙잡곤 조금 절실하게 이야기했다.

“첨지야. 너가 지금 연애 중인 거 알거든? 근데 남자친구에 얽매이지 말고, 독일 유학은 꼭 다녀오면 좋겠어. 나는 독일이 너무 좋았거든. 나는 그곳에서 많은 걸 경험했고, 내 목표도 많이 바뀌었어.“



사실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독일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독일을 잊지 못해서 졸업하자마자 워홀 비자를 받고 무작정 비행기에 오른 선배도 있었다. 그들은 비행기로 13시간이나 걸리는 먼 타향에 무언가를 두고온 사람처럼 굴었다. 영혼의 한 조각이든, 반짝이는 추억이든, 한국에서는 꿈꿀 수 없는 이상이든.

그들이 보고 온 게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독일 유학을 본격적으로 목표로 정하게 된 계기는, 우습게도 내가 2학년 겨울이라는 늦은 시기에 내 꿈을 정하게 되면서였다. 우리 학교 로터리를 돌아가는 자동차 번호판에 ‘외교’라는 두 글자가 적혀있었다. 그게 너무 멋져보였다. 작은 계기가 나에게 외교관이라는 꿈을 심었고, 그때부터 나는 외교관 후보자 시험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외교관에 지원할 수 있는 독일어 자격증 점수는, 우리 과 졸업요건 점수보다도 200점이나 높았다. 그걸 확인한 순간, 독일 유학으로 향하는 나의 길을 확정지었다.

독일에 가야겠다. 독일에 가야한다.

저 말도 안되게 높은 점수를 충족하려면, 현지에 가야한다!



유학자금을 위해서 지체없이 휴학계를 내고 식당에 취직했다.

하루에 10시간씩 일하고 있으니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식당 직원 페르소나가 하나 생긴 느낌이었다. 그만큼 또래들과도, 정상적인 생활과도 멀어진 삶은 너무 이질적이었다. 누군가 내 삶을 일시정지시킨 기분이었다. 매일매일 출근하면서 그 삶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졌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언젠가부터 우리 매장의 시스템에 분노하고 있었고 점장님의 말을 오롯이 따르고 있었으며 직원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어느새부턴가 내 소속학교가 있는지조차 믿기지 않게 됐다. 내가 대학생이라고? 헛소리.



마치 평행세계의 나 같았다. 대학교에 있던 나와 이 매장에 있는 내가 서로 다른 인물처럼 느껴졌다. 대학교 시절의 내가 평행세계 인물인지, 이곳에서의 내가 평행세계 인물인지 모를 노릇이었다. 꿈꿨던 외교관이라는 목표에 회의감을 가진 것도 그 시점이었다.

“엄마. 나는 사실 외교관이 안 맞을 것 같아.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는 게 너무 힘들어. 회사원을 하면 안될 것 같아.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어.”

“그러면 지금 일하는 건 어떻게 버티고 있는 건데?”

그야.. 언젠가는 그만둘거니까. 6개월 후에는, 난 더이상 이곳에 속해있지 않을 테니까.



항상 내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는 이유를 생각했다. 6개월 후, 독일에 도착해있을 나를 생각하면서 숨을 죽였다. 독일어 공부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하고 있었으며, 행정도 스스로 처리해야했기 때문에 파파고와 아빠에게 첨삭받은 영문 메일을 이곳저곳으로 발송하길 수어 번이었다. 웃긴 게, 독일행을 치열하게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 어느때보다도 독일이 멀게 느껴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독일은, 20대가 된 나에게 처음으로 ’수능‘같은 존재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야하지만 너무 버거워서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가장 크고 단기적인 목표. 고등학생 나에게는 그것이 수능, 스물 두살의 나에게는 독일.



그러던 와중 우리 집에 너무 커다란 일이 생겨버렸다. 아빠가 미국으로 주재원 발령을 받게 된 것이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4년 동안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 아빠가 나에게 말했다.

첨지야. 독일말고 미국 어학연수는 어때? 너의 독일 1년 유학 계획을 반년으로 바꾸는 건 어때? 미국으로 와서 인턴을 하는 건 어때? 미국 대학교에 편입하는 건 어때?

토할 정도로 많은 물음표가 나에게 불어닥쳤다.

“첨지야. 지금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어떤 게 가능한지는 아직 모르지만, 나중에 그 어떤 선택지라도 가능할 수 있게.. 독일보다는 일단 복학해서 대학교 먼저 졸업하는 게 어때?”

모든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독일을 포기하고 복학하는 것. 그게 부모님이 강하게 바란 나의 로드맵이었다.



나는 지금껏 독일을 목표로 숨을 참았는데, 이제는 다시 미국을 목표로 숨을 참아야한다. 수면이라고 생각했던 독일이 다시 멀어져간다. 수면이 보이질 않았다. 미국, 독일, 미국, 독일. 그 옛날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던 약소국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 이권을 빼앗기고 내 인생을 빼앗겨버렸다.

미국 다음에는 뭘까. 또 어떤 것이 내 숨통을 틀어막을까?

취업? 결혼? 육아? 집? 노후?



파이어족은 경제적 자립으로 조기 은퇴를 꿈꾸는 사람들을 말한다. 파이어족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예전에 봤던 기억이 난다. 파이어족은 빠른 은퇴를 위해 목돈을 모아야된다는 생각으로, 젊은 날의 대부분을 일에 매진한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는 것. 그게 파이어족이었다.

갑자기 천재지변이 닥칠 수도 있고 이상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 미래가 존재할지조차 불확실한데 우리는 자꾸만 현재를 포기한다.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된 계기는 무안 항공기 사고 이후였다. 무안군에 불시착한 항공기가, 끝내 콘크리트에 부딪히면서 폭발에 휘감기는 장면 하나로 대한민국 전체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항공기를 휩싼 불길만큼이나 커다란 비애와 슬픔이 우리나라를 휩쌌다. 그 항공기에 탑승한 175명의 승객들은, 비행기 탑승 전날 저마다 캐리어를 쌌을 것이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 우리나라로 여행을 오는 사람.. 저마다 지치고 설레고 허탈한 각양각색의 기분으로 비행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날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되리란 걸 알았을까? 그런 걸 생각할때마다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떠올린다. 내일 당장, 내가 죽을 수도 있다.



넓게 생각하면, 파이어족이 아닌 사람들은 없을 지도 모른다. 아무리 기상청이 일주일간 날씨를 90% 적중률로 예측한다고해도, 그 어떤 발전으로도 인간 지성은 인생의 미래를 확실하게 내다볼 수 없다.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을 향한 인간의 두려움은 엄청나다. 두렵기 때문에 단단히 준비를 해야하고, 준비를 하려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재를 갈아넣는다. 사고 싶은 걸 참고 적금을 넣고, 놀고 싶은 걸 참고 시험을 준비하고. 그렇게 따지면 부족단위의 ‘족’이 아니라, 파이어월드인 걸지도 모른다.



미래를 대비할 수는 있어도, 현재를 희생해서는 안되는 게 아닌가.

나는 내 현재를 생각해본다.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하루라면, 무엇을 할지 생각해본다. 그 상상 속 하루에 들어있는 마지막 순간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희생당해서는 안 되는 게 아닐까?

그것들만큼은 내가 버려서는 안 되는 순간들인 게 분명하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는 독일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만약 나에게 마지막 하루가 주어진다면, 나는 당장 독일행 비행기를 타고 그 땅을 밟을 것이다. 13시간을 비행에 쓰고, 남은 11시간을 독일에서 보낼 거다. 내가 그렇게나 기다려왔던 수면 밖의 세상을 보고 싶다. ’고작 이거였어?‘라고 생각하게 되더라도 그렇게 하고 말 거다.

왜냐하면, 독일은 스물 세살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수능같은 존재니까.

수능장에 지각하는 수험생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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