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이슬 오리지널 빨간뚜껑 소주
빨뚜라는 말 들어본 사람?
이건 어엿한 MZ라면 모두가 아는 단어일 거다. 20대 초반, 밤새 술을 마시는 대학시절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빨뚜는 참이슬 오리지널을 뜻한다. 참이슬 오리지널은 일반 소주보다 더 높은 도수를 가지고 있는데, 경고라도 하듯 초록 뚜껑이 아니라 빨간 뚜껑을 가지고 있다. 내가 지내던 대학가에서, 남자 동기들 사이에서는 생일이면 소주 한 병을 통째로 원샷하는 미친 문화가 있었다. 그럴 때면 옆에서 자꾸 바람을 잡는 거다. “빨뚜 각?”
물론 나는 그런 허세넘치는 동기들 말고도, 진짜 말도 안 되는 찐 술고래도 알고 있다. 동기 오빠인데, 그는 점잖은 성격을 가졌다. 그러니까 한심하게, 주량을 자랑거리로 삼고 그러지 않는다는 거다. 그는 요란스럽게 소주 주둥아리를 입에 물고 빨뚜 각? 이라고 외쳐대는 대신, 조용히 혼자 술집 냉장고에서 빨뚜를 가져오며 허허 웃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빨뚜’라는 단어가 나를 나이 차가 넘는 직원들과 친해지게 만들어주었다. 그건 아마 내가 입사한지 막 한달쯤 되었을 때의 일 일 거다. 그때까지 나는 직원들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했다. 나는 그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그들도 나에게 예의를 차려주었다. 결코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속사정을 이야기해주지도 않았다.
나이 차가 있기 때문에 나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산산조각이 난 건 그날 이후였다.
원래 서빙이 주 업무인 다른 음식점과는 다르게, 우리 매장은 서빙을 가장 늦게 배운다. 이곳의 일은 굉장히 체계적으로 각 분야로 나뉘어있다. 테이블을 치우는 게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물론 테이블을 치우는 것에도 다 규칙이 있다. 뚝배기는 어떻게 정리하고, 공기밥은 어떻게 정리해야하고... 등등. 이 단계가 끝나면 그 다음으로는 그 치운 식기들이 실린 카트를 비우는 포지션을 배운다. 카트에 실린 식기를 주방 설거지대로 가져다주는 역할이다. 이 포지션은 빨래까지 도맡아했기 때문에, 신참들만 한다. 이 포지션만 주구장창하고 나면 드디어 최종단계 서빙을 배울 수 있다.
메뉴가 많고, 메뉴에 따라 준비해야할 것도 많으며 서빙 포지션이 배달 포장도 같이 하기 때문에 가장 나중에 배우는 거다. 서빙을 하다보면 손님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추가로 더 주문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서빙 포지션은 주변에 대기하고 있는 직원을 불러 대신 가져다달라고 해야 한다. 서빙은, 서빙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고고한 포지션이다. 약간 그런 거다. 계급제로 따지면 귀족. rpg 게임으로 따지면 힐러.
그 일이 일어난 날 나는 서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손님이 나한테 참이슬 오리지널을 달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는 당연하게 가장 가까이 있는 직원을 불렀다. “춘식님! 여기 빨뚜 하나만 가져다주세요!” 그런데 춘식님의 표정이 이상해지는 거다.
춘식님은 주춤주춤 가까워지면서 나에게 물었다. “뭐라고?” “빨뚜요.” 춘식님의 표정이 더이상해지더니 또다시 나를 향해 주춤주춤 가까워졌다. “뭐?”
이제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못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쯤되자 줄임말이 익숙하지 않으신 건가 했다. 나는 고작 네 글자를 더 늘려 말했다. “빨간 뚜껑 소주요.”
헉. 그럼에도 춘식님은 계속해서 나를 향해 주춤주춤 다가오셨다. 춘식님은 내 목소리가 잘 안 들리는 건가 싶어 다가오고, 나는 내가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 계속해서 명칭을 바꿔 말했다. 춘식님이 저 건너 통로에서 여기까지 계속 되물으며 주춤주춤 다가올 동안, 손님들까지 우리 둘의 만담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결국 춘식님은 내 코앞까지 다가와 귀를 들이미는 지경에 이르렀고, 나는 결국 풀네임을 말했다.
“참이슬 오리지널 빨간 뚜껑 소주요.“
춘식님의 눈이 커지는 게 무슨 슬로우를 건 것마냥 천천히 보였다. 그러고 춘식님은 빵 터지더니, 깔깔거리며 웃으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남은 근무 시간동안 그걸로 놀림을 받았다.
스무 명이 넘는 이곳의 직원들은 두 명 빼고는 모두 여자다. 그러니까, 소문은 빠르고 수다는 엄청나다. 춘식님이 나와의 기묘한 빨뚜썰을 전 직원에게 동네방네 소문내기까지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춘식님은 스무 명에게 말을 옮기는 동안 질리지도 않으시는지 매번 깔깔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고 그 얘기를 들은 상대도 깔깔 웃었다.
사실 대학가에서 당연하게 ‘빨뚜’라고 불러온 나는 빨뚜를 빨뚜라고 부른 게 그렇게 웃긴 이야기인지는 잘 이해가 되진 않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빨뚜’는 대충 나 스스로 지어낸 줄임말처럼 들린 모양이다.
어쨌든 그 일 이후로 춘식님은 나를 빨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빨뚜야!” 괴상한 호칭이었지만 나는 즉각 대답했다. 네?
본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반응하는 내가 웃겼던 건지 또 웃음을 터뜨린 춘식 님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주절주절 설명을 덧붙였다. “혹시 빨뚜라고 불러서 기분 나빴던 건 아니지?” 춘식님은 그러고도 노파심에, 이건 장난치는 것뿐이라고 다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거라며.... 세살배기도 알 법한 말들을 정성스럽게 해주셨다. 거기서 내가 혹여라도 상처받을까봐 노심초사하는 게 느껴졌다. 그 기다란 변명에 마음이 따뜻해졌던 것 같다.
나는 또래들 사이에서는 소문난 탱딜이었다. 모든 공격과 장난을 탱킹하는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호칭이었다. 사실 나는, 오히려 그 호칭이 고마웠다.
첫 한 달 동안 나는 하루에 몇마디 할까말까했다.
그러나 춘식님은 그 호칭으로, 나를 향해 불쑥 다가와주었다. 그때 일을 계기로 춘식님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나에게 야금야금 장난을 걸어오기 시작했고, 나 역시 그들과 장난을 치고 웃으면서 친해질 수 있었다. 아직도, 그때 춘식님이 아니었으면 직원들과 말을 틀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춘식님한테는 나와 동갑인 아들내미가 한 명 있다. 그래서 그런지 춘식님은 유독 나를 살뜰하게 챙겨주셨다. 한때 나를 빨뚜라고 불렀던 춘식님은, 이제는 무슨 일이 있으면 나를 “딸!”이라고 소리쳐 부른다.
그런가하면 나를 손녀딸이라고 부르는 분도 계신다. 손가락까지 동원해가며 우리의 나이차를 세어보시더니, 이 정도면 딸이 아니라 손녀딸이라고 하시더니 그 뒤로 종종 심심할때면 “손녀딸!”이라고 부르시는 거다.
나를 막내공주라고 부르는 분도 계신다. 나보다도 더 공주같은, 우아하신 분인데 그분은 내가 출근해서 탈의실에 들어가면 “우리 막내공주 왔네~”라고 살갑게 말씀해주신다.
점장님은 아직도 나를 마스코트라고 부르신다. 저번에 다른 지점의 점장이 이곳에 온 적이 있는데, 점장님께서 나를 마스코트라고 소개했다. 가끔 ’깜찍이‘라고 부르실 때도 있다. 점장님이 기분이 좋으실 때만 그 호칭을 사용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아기’이다. 사람들이 내가 없는 자리에서는 나를 그렇게 부른다는 걸, 나는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됐다. 우리는 식당이기 때문에 전 직원이 다 함께 점심 식사를 할 수가 없다. 우리가 밥먹는 동안에도 우리 식당에는 손님들이 밥을 먹으러 들어오니까.
그래서 항상 직원 절반을 나누어 1차 식사, 2차 식사를 하는 거다. 이 인원은 항상 달라졌기에 배급을 담당하신 분은 그날도 내 상사를 향해 묻고 있었다.
“1차 식사 이 인원이 전부예요?”
1차 식사의 막차를 타고 직원 식당으로 내려갔던 나는, 얼떨결에 이어지는 그 말을 듣고 말았다. “아니. 아기 남았어. 우리 아기 와야돼.“
문지방 너머로 흐릿하게 들었던 호칭은 그날 이후 종종, 꽤 자주 내 바로 앞에 등장하곤 했다. 그들은 아예 대놓고 나를 “아가야.”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을 당황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 호칭에 아무런 당황도 느끼지 않은 척을 했다.
그래, 그런 ‘척’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내가 진짜 아기, 그러니까 내가 입에서 쪽쪽이를 떼어내지 못했을 그런 시기를 벗어난 이후부터는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으니까.
나는 k-장녀다. korean 장녀. 나에게는 다섯 살 어린 동생이 있다. 나는 내 기억이 남아있는 인생 최초의 순간부터 그녀와 함께였다. ‘함께 존재한다.‘ 같은 게 아니다. 나는 정말, 동생을 모든 순간 끼고 살았다. 아역 배우를 해도 될 정도로 예쁘장하고 귀여웠던 동생은 나에게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생명체였다. 내 팔에 힘이라는 게 생길 때부터 그녀를 업고 다녔고, 어딜가나 손을 붙잡고 다녔다.
나에게는 얼마나 작은 반찬이던지 깨물어먹는 버릇이 있다. 그 버릇은, 어릴적 동생이랑 같이 밥을 먹을 때마다 어떻게든 동생에게 맛있는 반찬을 더 먹이고 싶은 마음에 내 반찬을 깨물어 먹으면서부터 생겨났다. 내가 햄 하나에 두숟갈을 먹는다면, 동생은 두 숟갈에 햄 두개를 먹을 수 있을테니까.
물론 나도 원하는 만큼 먹고 반찬이 부족해지면 햄을 더 구워달라고 말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그 순간이 오는 것조차 싫었다. 동생만큼은 하고 싶은 걸 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는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동생의 인생은, 그런 순간들로만 가득 차길 바랬다. 오로지 자기가 하고싶은 것만 해도 괜찮은 순간들로만. 아직 어렸던 내가 동생에게 해줄 수 있었던 게 고작 햄 반찬이었던 것뿐이다.
가장 오래된 기억이 있다. 내가 아직 초등학생이었을 적의 일이다. 어째서인지 그 찰나의 기억만이 생생하다. 다같이 해외여행을 갔다가 공항에 돌아온 날이었다. 동생이 늘 그랬던 것처럼 떼를 써서 부모님과 작은 마찰이 있었고, 그 마찰에 잔뜩 성이 난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공항 화장실로 들어갔던 기억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화장실에 가면 같은 칸에 함께 들어가곤했다. 그 안에서, 나는 동생에게 말했었다. “부모님이 절대 너를 싫어해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것만 기억해. 지금 엄마 아빠는 너무 바쁘고, 그래서 너한테 화냈을 뿐이야. 엄마 아빠는 누구보다 널 사랑해. 지금은 다들 많이 바쁘니까 짜증내지말고 잠시만 가만히 있자.”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과거의 내가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했지? 싶다. 나는 요즘 종종, 지금의 내가 과거를 절대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어찌됐든 나는 그런 k-장녀였다. 응석이란 걸 몰랐고 떼를 쓰는 건 뭔가 어색하다. 아직도 그건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갖고 싶은 게 생겼으니 사달라고 말해본 적도 없다. 우리 삼촌은, 내가 초등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명절마다 동생과 나의 손을 잡고 울산에 있는 가장 큰 이마트로 데리고 갔었다. 여기 있는 것중에 사고 싶은 걸 다 고르라는 삼촌의 말에, 동생은 큰 장난감 박스를 두세개씩 끌어안곤 했다. 박스에 온갖 그림과 캐릭터와 제품을 착용한 실제 아동 모델이 그려져있는 그런 장난감이었다. ‘크리스마스 선물’하면 바로 떠오르는 그런 큰 박스 장난감. 동생이 너무 떼를 써서 엄마랑 아빠가 크게 혼을 냈던 적도 많을 정도로 그녀는 사고 싶은 게 많았다. 그리고 동생 옆에서 나는, 열두색깔 젤펜 세트를 하나 골랐다.
그냥 나는 성격이 그랬다. 성격 자체가 ’k-장녀‘였다. 장녀라는 위치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게 아니라, 나는 적성이 장녀다.
분명 모자람없이 자랐는데도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가 무언가를 사주겠다고 하면 물건 이름보다 가격표를 먼저 봤다.
남의 입장에서 과할정도로 많이 생각하는 바람에, 어렸을 때는 사람을 만나는 걸 싫어했다. 사람을 만나는 순간 나는 또 모든 순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될테니까. 그래서 옛날에는 내 성격도 싫었다.
어찌됐든 이런 식으로 한평생 장녀였던 나는, 직장에서 처음으로 막내가 되었다. 직원들은 모두 나를 아기라고 불렀고 맛있는 것만 생기면 모두 나부터 찾았다. 내가 신나서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면 다들 나와 눈을 마주쳐주었다. 그럴 때마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할머니 집에 놀라온 손녀가 수다를 떠는 걸 바라보는 것처럼, 그들의 눈에는 그런 묘한 따스함이 있었다.
파스텔 연보라색 칫솔을 사고 기뻐서 “어때요? 저 칫솔 새로 샀어요. 예쁘죠.“ 라고 말하면 웃으면서 ”아휴, 예쁘네요. 첨지님인데 뭔들 안 예쁘겠어~~“ 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다. 손님이 입은 눈꽃 모양 후리스가 예뻐보여서 장난삼아 가까이 있던 선임님이랑 주임님한테 이야기를 했다. “옷 정보 물어보고 싶은데 용기가 안 나요.”
그분들은 저런 옷이 취향인 거냐며 MZ도 별거 없다, 장난스럽게 이야기했고 나도 웃으면서 곧 그 일을 잊어버렸다. 그러나, 그날 저녁 선임님은 나에게 와서 말했다. “계산하고 나가실때 물어봤어. 쿠팡에서 샀대.”
그리고 그때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주임님은 나한테 쪽지 하나를 건넸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쿠팡 물건 명이 적혀있더라.
“그때 그 손님 오늘 다시 왔길래 후리스 어디서 샀냐고 물어봤어. 손님이 옷 이름까지 적어줬어.“
주임님은 선임님이 이미 옷 정보를 물어봤다는 걸 몰랐기 때문에, 한 달이나 지난 일을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매장을 찾은 손님에게 기어이 질문을 한 거였다.
두 명의 직원한테 옷을 어디서 샀냐고 질문받은 그 손님은 영문도 모르고 얼마나 황당했을까? 아마 샐럽이라도 된 기분이었을 것이다. 요즘 인플루언스 댓글창에는 죄다 ‘언니. 상의 정보 알려줘요. 하의는요?’ 이런 댓글들밖에 없다는 걸 생각하면 더 그렇다.
그런 비슷한 일들이 많았다. 내가 장난삼아 던진 말을 한 달이나 기억하고 있었던 주임님같은 일들. 너무 마음이 따뜻해져서 어쩔줄 모르게 되어버리는 그런 일들.
나는 명예 MZ답게 앱둥이이다. 아이폰에는 피트니스 앱이 있는데, 내 움직임을 감지해서 매일 내가 설정한 운동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나는 취직하고 나서 매일매일 ‘움직이기’만으로 500 칼로리를 소모하는 중이다. 하루에 2만보를 넘게 걸었다고 추산이 될 정도로, 하루종일 개처럼 뛰어다녀야하는 직장이지만 동시에 이곳에는 나와 같이 뛰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분들이 좋다. 이게 내가 이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다.
나는 사랑받는 막내 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