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입 메뉴얼북에는 오선지가 있다
우리 점장님이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만물의 영장 인간’이다. 나는 면접 첫날부터 그 단어를 들었다. 그리고 점장님은 입사 후 첫 교육 시간에 나에게 “만물의 영장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잖아요. 바로 미소! 미소입니다.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고 미소를 띠며 인사할 때 그 사람의 기품이 느껴지는 거예요. 기품이 무슨 말인지 알아요? 바로 기와 품격이 합쳐진 말이에요.” 이런 말을 했다. 한 30분 동안.
그 정도로 점장님은 미소와 행복을 입에 달고 산다. 자신을 ‘행복 전도사’라고 부르고, 심지어 일터 벽면에는 대문짝만 하게 ‘행복한 직원이 되는 법’ 이딴 것도 달려있다. 그런 만큼 점장님이 나에게 요구한 건 정말 간단했다. 활기참과 인사. 정말 단 두 가지였지만, 그 안에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조건이 되고 만다.
그 세부적인 조건을 줄줄이 써놓은 게 바로 신입 교육 메뉴얼 북이었다. 나는 그걸 입사하고 한 삼일 정도 후에 읽었다. 거기에는 정확히 이렇게 적혀있다. ‘인사는 다장조 ‘솔음’의 경쾌한 목소리로 한다. 고객님과 대화할 때는 평음 ‘미’ 음으로, 컴플레인 응대는 ‘도’로 한다.’
나는 내가 악보를 보고 있는 건지 메뉴얼 북을 보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내가 대한민국 여학생이라면 으레 그렇듯 여자적 기본 소양을 기르기 위해 초등학생 때 5년 동안 피아노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면, 그 메뉴얼북은 평생을 가도 이해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다장조? 평음? 그것 뭐예요.
저렇게 기술해놓았을 정도로 우리 매장에서 인사는 가장 깐깐한 척도였다. 누가 들어오는 고객을 보고 큰 소리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면 ‘안녕하세요’라고 복창해야 하고, 나가는 고객을 향해 ‘안녕히 가세요’라고 선창 하면 ‘감사합니다’라고 복창해야 했다.
다 같이 목에 핏발이 설 정도로 외치고 있노라면 일식점이 생각나곤 했다.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하얀 두건을 두르고 힘차게 입을 모아 ‘이랏샤이마세!’라고 인사하는 장면. 회전 초밥 집을 한 번이라도 들어가 본 적이 있다면 아마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서 일식 노장처럼, 단전에 힘을 주고 “감솸다!”라고 외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교양 없이 인사하지 말라고 혼이 났다.
하지만 이 인사가 진짜 쉬울 듯 어려운 게, 전 편에도 이야기했듯이 우리 매장은 하루 매출이 2000만 원이다. 즉, 회전율이 패스트푸드보다도 더 빠르다는 이야기이다. 분명 우리 음식점에서 파는 음식들은 ’슬로우 푸드’로 분류될 게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햄버거 보다도 더 빠른 회전율이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어찌됐든 그 회전율에 맞춰 정신없이 테이블을 치우면서 들락날락하는 손님에 맞춰 인사를 하다 보면
“감사안녕감사안녕감사합니다!” 이런 식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점장님은 인사에 한에서는 정말정말 엄격해서, 하나라도 놓쳤다가는 따가운 눈총을 받게 된다. 목소리가 작아도 안된다.
그래서 손님이 많았던 어느 날은, 인사를 하다가 목이 쉬어버린 적도 있다.
그 깐깐한 인사를 해내기 위해 나는 입사하자마자 인사 교육을 받았다. 다 같이 둥그렇게 서서 돌아가면서 선창, 복창을 하고 그때마다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거였다. 나는 처음에는 이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매체로만 보던 90년대 80년대, 백화점 오픈 전에 직원들끼리 모여 할 것만 같은 교육이었다. 그날은 정말 단단히 멘탈이 나가버렸다.
심지어 내 인사 교육을 담당했던 분은 계속해서 나에게 소리쳤다. “안돼요. 톤이 너무 낮아요. 다시!”
인생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던가. 나는 평생 연이 없었던 성악 전공생의 마음을 조금 이해했다. “한 옥타브 더 높여서! 다시!” 이걸 계속해서 듣고 있자니 민망하고 수치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물론 울진 않았다.
결국 한 다섯 번은 반복하고 나서야 그 과정이 끝이 났다. 물론 내 교육을 맡았던 분은 그리 만족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힘들었던 인사교육을 매주 화요일마다 했다. 계속 반복하고 있자니 언젠가부터 그게 조금 덜 수치스러워졌다. 민요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하더라.
왜, 우리 전통 민요에는 다 같이 모내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가 있지 않은가. 한 사람이 어기영차하고 선창 하면 다른 사람들이 따라서 부른다. 딱 그 꼴이었다.
나는 모내기 중이다. 속으로 계속 되뇌었더니 그나마 견딜만했다.
그때는 모든 게 어색했다. 공간도, 인사도, 사람들도, 점장님도, 10시간 근무도. 생애 처음 10시간 동안 움직이면서 다리는 아파죽겠는데 심지어 같이 이야기 나눌 또래도 없으니까 초창기의 나는 근무 시간 내내 얼음장을 걷는 것만 같았다. 인사를 할 때마다 불려 가서 교육을 받으니까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다. ‘내가 그렇게 못하나.’ ‘이번에도 못했나?’ ‘이게 아닌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거지?’ 이 생각이 번갈아가면서 들었다. 그 끔찍한 인사 교육을 그만 받고 싶은데, 노력한다고 노력해도 교육이 반복되니까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걸 계속해서 시키는 점장님이 원망스러웠다.
근무 시간은 길었고 일은 반복적이었다. 당연히 상념이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그 시기의 나는 꽤 자주 내 인생을 되돌아보곤 했다. 물론 짧은 인생에 되돌아볼 만한 순간은 몇 없었다. 나는 주로 그 순간들을 떠올렸다. 내가 학교 연극 동아리에서 총연출로 있었던 순간들.
그때 나는 총연출로서, 배우들의 연기를 지적하는 게 내 일이었다.
내가 맨날 입에 달고 살았던 것들은 하나같이 인사교육 속 이야기와 비슷했다. ‘말의 끝을 좀 낮춰볼까?’ ‘톤을 좀 높여보는 게 어때?’ 이런 비슷한 말을 배우들을 향해 반복했다. 내가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아이러니하게도 인사교육을 받으며 개고생을 하고 있자니 내 배우들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너희들도 이런 기분이었니.
우리 연극 동아리는 학교 내에서 꽤 유명했는데, 우리 무대가 오른 날이면 과의 교수들이 모두 보러 왔었다. 성공적인 무대의 주인공 배우들은 몇 년이 가도록 교수들에게 기억됐고 수업시간에 교수들에게 반가운 눈인사를 받기도 했다. 교수, 그리고 역대 선배들까지 총출동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1년간 우리는 무대 하나를 바라보며 모두가 피와 살을 깎아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총연출은 그 무대의 총책임자였다. 다르게 말하면, 총체적인 욕받이 역할이었다. 무대가 망하면 관객들에게 욕을 먹지만 무대를 성공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다그치면 동아리 내부에서 욕을 먹었다.
가끔 나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학생이 있을 때마다 ‘배우가 되기로 선택한 건 너지, 내가 아닌 걸.’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는 똑같은 말을 점장님한테 들었다. “이곳에 취직하길 선택한 건 너였지 내가 아니야.”
정말 똑같아서 놀랐을 정도였다.
양쪽의 입장을 겪어보니까 되레 혼란스러워졌다. 한때 총연출이었기에 점장님이 어떤 마음인지도 알 것 같았고, 지금은 일개 직원이기에 그때의 배우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원망스럽던 점장님을 이해해 버렸다. 총연출이었을 당시, 나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들을 떠올렸다. 점장님에게도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압력을 넣을 외부의 세력, 또는 집단을 원활하게 굴러가게 하기 위한 관습, 그가 꿈꾸는 집단의 모습에 대한 신념, 더 나아가서는 그가 이런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입과 그 수입으로 살아갈 그의 가족들까지.... 그래, 진짜 거기까지 생각했다. MZ라면 누구나 할법한, 처음 들어간 집단 일원의 카톡 프로필을 모두 넘겨보는 행동을 당연히 나도 했기 때문에 나는 점장님의 아들 얼굴까지 알고 있었다. 얼굴을 알고 있으니까 상상은 더 쉬웠다.
사실 나는 총연출을 할 당시 많이 힘이 들었다. 책임을 모조리 끌어안고 살아가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다. 책임감이란,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은데 그 수십 가지 신경 써야 할 목록에 나 하나만 빠져있는 거다.
그걸 알고 있어서 딱 그때의 내가 힘들었던 만큼만 점장님을 이해했다. 버릇없는 방식으로 그를 이해했다.
하지만 MZ의 가장 큰 특성은 ‘버릇없음‘이라고 다들 이야기하곤 하니까, 분명 이 정도는 너그러이 넘어가 줄 거다.
물론 나는 소년만화의 주인공이 아니었으므로 이런 깨달음을 얻자마자 인사를 잘하게 된 건 아니었다. 내가 인사에 익숙해진 건 일한 지 한 달이 넘어갈 시점이었다. 그즈음 나는 내가 매일매일 10시간씩 시간을 보내는 이 공간과 많이 친숙해져 있었고, 마음이 편해지다 보니 목소리가 쭉쭉 뻗어나갔다.
내가 처음 인사를 성공적으로 해낸 날이 떠오른다. 점장님이 “첨지 목소리밖에 안 들린다.”라고 하시더니 전 직원에게 7분 쉬는 시간을 주셨다.
그때의 기분이 어땠더라. 그것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단 한 번도 인사에 실패해 본 적이 없다.
지금은 내가 인사 교본이 되어버렸다. 점장님은 항상 신입이 들어오면 첨지처럼 인사하라고 시킨다. 그뿐이랴. 넘치는 편애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이제 점장님한테 ‘마스코트’라고 불리고 있다.
활기참과 인사. 점장님이 내게 바란 건 딱 두 가지였고 나는 내 역할을 수행해 내는 데 성공했다.
반갑습니다! 마스코트가 된 나는 오늘도 쩌렁쩌렁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