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의 눈으로 본 우리 매장 속 '꼰대'들
나는 내가 6개월 동안 몸담고 있었던 직장을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바로 ‘꼰대’이다.
꼰대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인터넷 용어인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등록되어있다. 늙은이를 뜻하는 은어란다. 나무위키에는 ‘부모, 노인, 기성세대, 선생님을 비하하는 은어이자 멸칭. 점차 원래의 의미에서 의미가 확장, 변형되어 연령대와는 상관없이 권위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비하하는 멸칭으로 사용되는 단어이다.‘라고 적혀있다.
꼰대라는 단어를 고른 이유는 오로지 ’권위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 때문이다. 점장님은 입사 첫 날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자신은 위계질서를 중요시한다고.
그리고 우리 직장 규칙에도 그렇게 적혀있다. ‘상사의 말에는 일단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무조건 따를 것.’
보자마자 대박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저런 규칙을 써붙일 수가 있지? 대박.
말도 안 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반발심은 들지 않았다. 왜냐면 나에게 직원들은 상사이기 이전에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내 엄마뻘되는 분들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는 상사 스무 명, 어떻게보면 피 안 섞인 엄마가 스무 명이 있었다.
입사 첫 날 나는 정말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다. 나를 보는 모든 사람들이 나의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두 지적했다. 지적하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어야 할 테니, 아마 그 당시의 그들은 눈이 세 개여도 모자랐을 거였다. 일을 하는 데 두 개를 쓰고 나머지 하나는 나를 지켜보는 데 썼을 것이었다.
그들의 요구는 모두 사소한 것들뿐이었는데, 그게 곤란했던 이유는 지시가 직원의 수만큼 달랐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걸레를 접어서 닦으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걸레를 펼쳐서 닦으라고 했다. 그런 식이었다. 이유는 다 비슷했다. “그렇게 안 하면 나중에 손목 나가.”
아마 내가 그랬듯이 그들도 딸 뻘인 아이가 일을 조금 더 쉽게, 조금 덜 힘들게 했으면 좋겠는 마음이었겠지.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일한 연차만큼 느낀 팁들을 나에게 전수해준 것일 터였다. 그들이 놓친 것은, 사람마다 팁은 다르다는 것이었고, 또 그들에게는 두 마디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40마디였다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그 조언들이 다 그들 나름의 ‘꿀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지적질이 아니라, 조금 더 수월하게 일하기 위해 그들이 스스로 느낀 ‘꿀팁’들이었다. 그걸 나눠주는 것에서 신입사원을 향한 애정을 느꼈기 때문에 나는 군말없이 순응했다.
어떻게? 나는 그들 하나하나가 나에게 요구한 걸 사람별로 나눠서 모두 외웠다.
그래서 A 앞에서는 A가 말한대로, B 앞에서는 B가 말한대로 했다. A가 앞에 있으면 걸레를 펼쳐서 테이블을 닦았고 B가 앞에 있으면 걸레를 뭉쳐서 테이블을 닦았다. 번거롭긴 했지만 그냥, 그들이 나에게 써준 마음을 헛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선임님이었다. 그 분은 나에게 가장 희한하고, 인상깊고, 강렬했다. 지금까지도 말이다. 다른 분들의 조언에 비해 선임님은 가장 엄격했다. 그분의 말은 여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조언이 아니라 진짜 지적처럼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정말 희한하게도 업장을 벗어나면 누구보다도 다정해지셨다. 사실 그 갭차이가 어느 정도면 공과 사를 구분하는 멋진 분이라고 묘사했겠지만, 내가 그분을 희한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그 갭차이가 ‘어느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선임님은 바쁠 때는 무슨 범퍼카마냥 나를 마구 밀치고 다니셨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건 다 쳐낼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쉬는 시간만 되면 솜사탕처럼 다정해지셨다. 범퍼카, 솜사탕, 범퍼카, 솜사탕. 엥?
그리고 일할 때는 가장 말을 험하게 하신다. 포장이 안 되어 있으면 계속해서 재촉하고 어떤 일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가차없이 화를 낸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궂은 일을 도맡고 아무 말없이 묵묵히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모두 해결한다. 엥?
나는 선임님을 관찰했다. 그러면 그럴 수록 머릿속에는 물음표만 늘어났다. 선임이라는 직위 때문에 마지못해 일을 하시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일을 즐기시는 것도 아니었다. 그 모습은... 비유하자면 진짜 로봇같았다. 입력된 명령에 맞춰 행동하고, 누군가 그 코드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불같이 화를 내며, 일터에서 벗어나면 드디어 인간이 되어 다정한 본성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는 일을 하면서 딱 한 번 운 적이 있다. 선임님 때문이었다.
우리 매장에는 좀 떨어진 곳에 고립된 공간이 있다. 바로 룸이다. 룸은 거의 나누어지다시피한 공간이었기에 홀에 있는 직원들이 거기까지 움직이기에는 동선이 꼬였고, 그랬기에 매일 번갈아가며 룸 담당을 정했다. 그날의 룸 담당은 나였다.
예상치 못했던 일은, 그날 매장 안의 모든 포스기가 고장난 거였다. 그래서 나는 룸에서 주문을 받으면 매장 입구에 있는 카운터로 달려가 주문을 넣고 중간 계산서를 뽑아서, 그 중간 계산서를 가지고 다시 주방으로 달려가 주문 내용을 전달해야했다. 내가 개처럼 뛰어다니는 동안 룸에서는 손님들이 직원을 부르는 벨소리가 계속해서 울렸고, 당연히 룸 담당이 따로 있음을 아는 직원들은 벨소리에도 룸으로 오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벨이 울리는 동안 카운터, 또는 주방 어딘가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는 거다. 벨소리를 들을 수 있을 리 없었고 아무리 불러도 오지 않는 직원을 향해 손님들의 분노는 머리 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런 손님들이 나를 향해 불만을 터뜨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원래는 포스기에 주문을 찍자마자 그 영수증이 주방으로 뽑히는 구조였는데, 포스기가 고장이 나니까 영수증이 안뽑혔다. 그들은 앞서 말한 것처럼 중간계산서를 직원에게 전달받고 나서야 요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처음 겪는 카오스에 주방도 일처리가 삐걱삐걱 겨우 움직이는 중이었고, 음식이 제때 나올 리가 없었다.
그러면 나는 또 손님의 불만을 잔뜩 뒤집어 쓰고 다시 주방으로 가야했다. 그리곤 산처럼 쌓인 중간계산서의 산 속에서 내 담당 손님의 주문을 찾아
이것부터 해달라 주방직원에게 애걸복달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손님은 끊임없이 나갔다. 치울 테이블을 쌓여있는데 나는 너무 바빴다. 룸 안에는 대충 열 다섯 테이블 정도가 있었고 따로 떨어진 공간이었기 때문에 몇 자리가 비었는지 매장 입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룸 담당 직원이 자리가 날때마다 바로바로 이야기를 해줘야한다.
개처럼 뛰어다니느라 몸이 두개라도 바빴던 나는 테이블을 치울 몸까지는 없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내가 여력이 되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며 짬짬이 테이블을 치우고 손님을 받고자했다. 그래, 받‘고자’했다. 내 소망이었다.
선임님은 계속해서 룸으로 들어와 모든 테이블을 치우고 한 번에 대여섯 팀을 들여보냈다. 하지만 주문 받는 걸 도와주지도 않고 나가버리기 일쑤였고, 나는 또다시 밀려오는 손님과 불평에 덮여버렸다. 다시 또 반복이었다. 더 많은 손님, 더 많은 주문, 더 많은 중간계산서, 더 많은 불평. 결국 참다못한 나는 선임님을 붙잡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긴 지는 모르겠다. “선임님. 저 진짜 못할 것 같아요. 조금만 천천히 손님 받으면 안돼요?”
그때 선임님은, 좀 당황해보이셨다. 나랑 맞닿아있는 시선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당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게 어딨어.”
마치 고장난 로봇 같았다. 우리 일터의 암묵적인 규칙은 손님이 나간 테이블이 있으면 3초 이내로 모두 치우고 그 자리에 새로운 손님을 앉히는 거다. 그게 우리 하루 매출 2000만원 회전율의 비밀이었고, 선임님은 그 비밀의 선봉장이었다. 그런 만큼 ‘손님을 천천히 받는다’라는 건 로봇에 입력된 명령이 아니었고 선임님은 그걸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MZ인 나는, 포스기가 고장난 초유의 사태에서만큼은 좀 예외적인 행동을 취해도 된다고 생각했고 말이다. 거기서 차이가 시작된 거다.
선임님은 그렇게 나의 절절한 부탁을 거절하고, 나는 또 혼자남아 수많은 그릇이 남겨진 테이블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빈 식기가 놓인 테이블을 눈앞에 두고 있자 니, 정말 큰 벽이 앞에 있는 것 같았다. 포스기가 고 장 난 시점부터 차곡차곡 쌓였던 각종 멘붕이 거기 서 터졌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일하 기가 버겁다고 생각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눈물이 속수무책으로 쏟아지는데 그걸 숨기려고 고 개를 푹 숙이고 테이블을 치웠다. 야속하게도 눈물 은 더 흘렀다. 동그란 뚝배기가 이제는 더이상 동그 랗지가 않았다. 눈물 고인 시야 속 뚝배기는 이상한 모양으로 일렁대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막아지지가 않아서 결국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손님이 닦고 버린 휴지를 다급하게 주워서 마 구 얼굴을 닦았다. 얼굴에 고춧가루라도 묻으면 어 떡하지 스치듯 생각하면서도 마구 닦았다. SNL에서 아영이가 수도 없이 외치던 그 유행어를 속으로 계 속 생각했다. 정신차려 김첨지. 여기 사회야.
선임님은 나한테 그렇게 말해놓고도, 더 이상 손님 을 룸 쪽으로 데리고 오지 않는 것 같았다. 룸 앞에 서서 더이상 오지 않는 손님을 대기하고 서 있는데, 눈물이 또 왈칵 터져서 팔로 얼굴을 가렸다. 왼쪽에는 룸이, 오른쪽에는 홀이. 양면 초가였다. 이쪽 저쪽 다 얼굴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비스듬하게 서서 얼굴을 가리고 한참을 소리없이 울었다. 어린 아이가 목놓아 울때처럼, 입이 옆으로 벌어졌다. 아직도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수많은 빈 그릇 앞에서 숨이 턱 막혔던 것만 기억난다.
그렇게 얼굴을 다 가린채로 울고있는데 누가 나를 이끌었다. 여전히 눈을 가려서 앞이 보이지 않는 상 태로 끌려갔다. "왜 거기서 그러고있어." 누군가의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주방 안쪽으로 데려다 준 것 같았다. 마치 이곳은 안전하니까 여기서 펑펑 울라는 말처럼 들렸다. 원래 MZ는 지 멋대로 듣는 법이다.
나는 거기서 소리내서 울었다. 한 몇 초 그러고 있으 니까 정신이 들었다. 그 뒤로 다시 울지 않았지만, 그 날 나는 처음 일을 그만둘 생각을 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일을 생각하면 선임님이 원망 스럽다. 그때는 그녀가 진짜 죽도록 원망스러웠지만, 그때조차도 그녀가 밉진 않았다. '너무하다'였지, '싫다'가 아니었다.
그이유는 내가 첫날 입사했을때 나를 교육하던 선 임님의 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선임님은 나에게 포스기 교육을 하면서 그렇게 말했었다.
"나는 직장을 관두고 집에서 애를 키우다가 경력 단 절이 되어버렸어. 나이가 차버리니까 갈 곳이 여기 밖에 없더라고. 뒤늦게 일을 시작하려니까 하나도 모르겠고, 처음 보는 포스기는 너무 어려운 거야. 그 래서 나는 포스기의 모든 페이지를 찍어서 통근 시 간마다 사진을 보고 그걸 다 외웠어."
물론 말의 요지는 사진을 찍어서 수시로 보면 좋다 이거긴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녀의 말을 통째로 기억에 박아넣었다. 사실 내가 기억하려고했다기보다는 그냥, 그 말이 그만큼 강하게 기억에 남아버린 거다.
멋대로 내 기억에 남은 선임님의 말은 내 안에 남아 서, 내가 그녀를 미워할 수도 없게 만들었다. 사실 나 는 그 이야기를 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모든 행동은 물음표를 유발시켰지만 결국 그 끝은 느낌표로 끝나곤했다.
그녀가 명령어를 로봇처럼 행동하는 건, 오랜만에 복직한 탓에 너무나도 어려운 느껴지는 일을 어떻게든 해내려고 모든 규칙을 외워버렸기 때문이다. 규칙을 통째로 외웠기 때문에 그 외의 길은 생각도 못하는 거였고, 그게 이미 이 일터에서의 세상이 되어버렸기에 숨쉬듯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거였 다.그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맹세코, 그 녀가 너무했던 적은 있어도 미웠던 적은 없다.
그 모든 행동의 근간에 그렇게까지해서 이곳에 적응해내야했던 과거 선임님의 의지가 깔려있었다.
나는 어쩌다가 집 컴퓨터 파일을 뒤지다가 저장된 경력서 하나를 발견한 적이 있다. 파일명은 간결했 다. 이름 석 자, 경력서. 그건 엄마의 이름이었다.
엄마의 경력서라니. 너무나도 구미가 당기는 파일이 었다. 나는 그걸 들어가보았다. 그리고 조금 후회했 다.
그건 경력서이자, 지원서였다. 기다란 엄마의 경력 뒷페이지에는 에이포용지 한페이지가 넘어가는 지 원 내용이 적혀있었다. 거기에는 엄마가 그 일을 얼 마나 사랑하는 지 적혀있었고 지금까지 그 분야에서 쌓아온 노력의 정도가 적혀있었으며...
마지막에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꼭 한 번만 만나주세요‘ 라고 적혀있었다. 그걸 읽으면서 울컥했다.
그게 엄마의 나이였다. 40대 후반이라는, 백세시대 에 인생의 절반도 다 살지 않은 나이에 '정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사회에서 대우받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건 내가 일하는 곳에 있는 모든 직원이었 다. 이곳의 연령대가 높았던 이유는 이곳의 일이 너 무나도 힘들기 때문에, 갈곳이 없는 중장년층이 아니고서야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선임님을 미워할 줄 모른다. 규칙을 통째로 외워버려가지고 규칙 외에는 말할 수 없는 그런 우리 점포의 꼰대들을 나는 미워 하는 법을 모른다.
우리 아빠는 대한민국 세 손가락에 드는 불굴의 대 기업에 다닌다. 그 대기업에는 아빠를 제외하고서는 모두가 MZ라고 한다. 아빠는 팀장인데도 불구하고 MZ들에게 평가를 받는다. 일을 쉽게 그만두곤 하는 MZ들을 붙잡아 놓기 위해서, 회사측에서 오히려 칼자루를 애먼 쪽에 쥐어준 것이다. 그래서 아빠는 항상 팀원들에게 일을 더 주지도 못하고 혼자서 모 두 떠맡는다. 조금이라도 쓴소리를 했다가는 아빠를 향한 최악의 인사고과가 내려진다고 한다.
그리고 아빠보다 젊은 팀원들은, 항상 아빠를 빼놓 고 점심을 먹는다. 저번에는 아빠만 빼고 회식을 갔 다고.
우리 가족 톡방에는 아빠가 혼밥하는 사진이 올라온 지 꽤 오래됐다. 그러고도 아빠는 '꼰대 가 되지 않 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나는, 아직도 생각한다. 가끔은 받아줄 사람이 있어 야한다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꼰대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M
Z든... 그들을 받아줄 사람이 가끔은 있어야 한다. 그 게 내가 이곳에서 계속해서 일할 수 있었던 이유이 다. 가끔 내가 감정을 못이겨 하고 싶은 대로 굴어도, 가끔 그들이 ‘꼰대’처럼 굴어도... 서로가 서로를 받 아주기 때문에 우리가 존속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 곳에서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