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5.5일제를 선택하게 된 이유
나는 취직한 다음 처음 들어본 단어가 있다. 바로 ‘스케줄 근무’이다. 스케줄 근무란, 매주 출근 시간과 출근 요일이 달라지는 근무 방식이다. 처음에는 당황했다. 22년 평생 ‘목요일 10시‘처럼, 꼬박꼬박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알바만 해봤던 나는 이런 근무 방식이 낯설었다. 처음으로 출근 시간이 1시간 일찍 앞당겨졌던 날은 출근 타임이 바뀔 수도 있다는 걸 모르고 늘 그렇듯 정시에 출근했다가 혼이 났다. “스케줄표 잘 확인해야지. 너 한 명 없어도 우리는 힘들어. 첨지님 때문에 아침에 너무 바빴잖아.“
스케줄표는 매주 일요일 저녁에 발표되는데, 작은 엑셀표에는 사원 명이 주르륵 적혀있고 그 주의 출근시간, 퇴근시간, 요일마다 바뀌는 포지션 같은 것들이 적혀져있다. 일요일이 되기 전까지는 내가 다음주 어떤 요일에 쉬는지조차 알 수 없다. 미리 약속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에 출근을 시작한 뒤부터는 친구들을 만나지도 못했다. 그래도, 나는 이 방식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다음주 스케줄이 깜짝 발표되는 일요일 저녁이 기다려졌기 때문이다. 무슨,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뭘 줄까 기대하며 설레어하는 이브날의 아이처럼.
문제가 생긴 건 내가 입사한지 2개월쯤 되었을 때였다. 평소처럼 일요일 저녁 스케줄 표가 매장에 걸렸고, 내 스케줄을 확인하기 위해 표 앞에 선 나는 잔뜩 당황하고 말았다. 내가 5.5일제 근무로 들어가있었던 거였다. 원래 5일 근무 이틀 휴일은 법적으로도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이다. 그러나 5.5일 근무는, 매장에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근무자의 휴일 반절을 빼앗아가는 행위이다.
그건 통보였다. 나는 5.5일제가 가능하냐는 질문을 들은 적도 없었고, 내가 5.5일제를 하게 될 거라는 예고를 들은 적도 없었다. 내가 그 스케줄을 알게 된 건 정말로 일요일 저녁 9시, 그 시점이었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속에서부터 알 수 없는 감정이 치솟았다. 그건 서러움이었다.
나는 그 통보의 방식이 너무 속상했다. 미리 나에게 ‘이번주는 사람이 적어서 매장 운영이 너무 힘들어. 첨지 너가 5.5를 해주면 안될까?’라는 한 마디라도 했으면 기꺼이 알겠다고 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런 말 한마디조차 없었다. 엑셀표에 기입된 숫자가 나에게 주어진 전부였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는 학생이라면 으레 그렇듯 중학생일 때부터 대기업에 들어가겠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대기업의 일원이었던 아빠는, 누구보다도 나를 열렬하게 반대했다. “대기업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기계의 부품이 돼. 우린 부품인 거야. 언제든지 교체해버리면 그만인 부품.”
그때 들었던 아빠의 말이, 그 빽빽하게 칸이 나누어진 엑셀표 앞에서 다시금 떠오르는 듯했다.
나는 그 작게 나누어진 엑셀칸 크기만큼의 부품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매장에서 빵꾸가 나서 부족한 부분만큼 아무렇게나 쌓아지고 메꿔지는 부품인 것이다. 부품의 의사와 생각은 누구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날은 내가 에피소드 2 꼰대편에 적었던 눈물 사건이 일어난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던 때였다. 그때부터 내 안에 쌓여가고 있던 일에 대한 회의감이, 스케줄 표가 기폭제가 되어 빵하고 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직원 분이 “주임님한테 말씀드려봐. 나도 처음 이걸 겪었을 때는 많이 속상했어. 그런데 말을 하면 좀 나아진다? 너 곧 3개월이잖아. 수습 떼고 정직원 달 날도 얼마 안남았는데 지금 그만두면 얼마나 아까워. 조금만 더 생각해봐.” 이런식으로 나를 회유하며 끊임없이 달래왔지만, 나에게는 아무 말도 들리지가 않았다. 지금 당장 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포기하게 될 것 같다는, 근거없는 두려움이 나를 무두질하고 있었다.
그 길로 점장님을 찾아갔다.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 나를 쳐다보던 점장님은 나를 데리고 매장 밖으로 나갔다. 그때는 11월 초였다. 가을 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동장군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어 밤이면 쌀쌀한 기운이 공기에 잔뜩 묻어있었다. 유니폼 하나 달랑 걸친 몸 위로 그런 찬기운이 잔뜩 달라붙었다. 한 달도 더 남은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 위해 벌써부터 매장 앞 수풀에 걸어놓은 색색깔의 필라멘트만이 우리 사이에서 아무 말없이 깜빡거렸다. 그걸 바라보다가, 내가 말했다.
“일을 그만두고 싶습니다.”
점장님은 생각보다 차분해보이셨다. 잠시 조용히 생각을 하는 것 같던 그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셨다. 그 질문을 듣자마자 주임님의 얼굴이 잠깐 떠올랐다. 스케줄을 짜는 건 전적으로 주임님의 일이었다. 내가 여기서 스케줄 이야기를 한다면 주임님의 입장이 곤란해지겠지.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거기서 조금 울컥해서 말이 흐트러졌다.
“그냥, 더이상은 못할 것 같아서요. 이번주까지만 일하고 싶습니다.”
나의 간결한 말에 점장님은 또 침묵하셨다. 점장님도 우리 매장 앞에 놓인 색색깔의 필라멘트를 잠깐 보고, 창문으로 비치는 매장 안을 잠깐 바라봤다가 다시 나를 보았다. “근데 생각보다 첨지님, 오래 버텼어요.” 점장님은 언뜻 들으면 동문서답처럼 들리는 그런 말들을 늘어놓으셨다. “사실 나는 첨지님이 하루도 못 버틸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러더니 내 눈을 바라보시더니 말했다. “첨지님 일하는 거보고, 얘는 어딜가나 성공할 거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 말이 나는 좀 놀라웠다. 그동안 대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무슨 일을 하던 결과에 따른 냉정하고 차가운 평가만을 들어왔었다. 내가 무슨 일을 겪었든 얼마나 노력했던지와 상관없이 결과가 좋으면 나에게도 보상이 주어졌고 결과가 별로면 질책이 주어졌다. 그런 게 사회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악물고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해내야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나는 대학교를 벗어난 후에야, 뜻밖의 장소에서 결과와 상관없는 나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그것도 책임감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갑자기 그만두겠다고 말한 직후에.
문득 입사 첫날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점장님은, 사실 안 그런척 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행동거지와 말본새까지 전부 관찰하고 있다고.
그 말이 확 와닿았다. 그 관찰력이 그간의 나의 노력을 하나하나 보고 있었고, 결국 나에게 이런 말을 돌려준 것이구나.
점장님의 말은 간결하고 버석했기 때문에 나에게는 더 크게 와닿았다. 그건 칭찬도, 위로도 뭣도 아니었다. 점장님은 백과사전에 기록된 분명한 사실을 말하듯이 나에게 덤덤하게 그런 말을 하셨다. 그게 나에게는 커다란 감동이었고, 근사한 종지부같았다. 이걸로 하루에 10시간씩 2개월, 이곳에서 보낸 시간을 마무리짓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결과만 말하자면 나는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해보겠다.
여차저차 복직하게 된 후에, 5.5일제를 다시 마주하게 된 건 주말 회의에서였다. 우리 매장은 주말마다 정직원 모두 모여서 회의를 한다. 물론, 회의의 탈을 쓰긴 했지만 그건 일방적인 미팅이었다. 점장님이 일주일동안 있었던 일들 중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을 그 회의에서 몰아서 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5.5일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점장님은 우리에게, 오히려 5일제가 특이한 거라고 이야기를 했다. 식당에서는 5일제를 하는 곳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즉, 5.5일제가 업계평균이라는 말이다.
그 말을 듣자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 업계에서는 그게 당연한 건가? 그렇지만 당장 우리 매장만해도 5.5일제를 하고 싶어하는 직원은 아무도 없는데?
물음표의 물음표가 꼬리를 물었다. 5일을 일하고 이틀을 쉬는 건 나에겐 공기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5.5일제는, 산업혁명이 막 일어나서 한창 인간소외 현상이 일어나던 그 시절의 이야기처럼만 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업계 평균’ 이 네 글자가 내 생각을 송두리째 흔드는 것 같았다.
5일제가 아주 당연한 나처럼, 누군가에게는 5.5일제가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묘해졌다.
매주 5.5일 출근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걸 내가 옳지 않다고 강하게 부정하는 건 마치 누군가의 인생을 ‘그건 잘못됐어.’ 라고 비난하는 꼴 같지 않은가.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너무 우물 안에만 있었던 것 같다는 깨달음이 머리를 확 치고 들어오면서, 결국 한 문장만이 남았다. 내가 너무 오만했다.
이 세계에서 5.5일제가 당연한 것이라면, 나는 이 세계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마땅히 그들의 관례를 따라야 마땅하지 않은가. 내 신념과 가치관이 어떻든 간에 확실한 사실은 내가 그들의 세계를 선택했고 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규칙을 따라야한다. 난 지금 로마에 있었다.
5.5일제를 향한 마음을 굳히게 된 계기는 바로 연말 회식 자리에서였다.
우리 주임님은 미인이다. 그리고, 무척 장난스럽다. 그녀가 하는 말 중에 태반이 ‘진심인가?’라며 고민을 해봐야할 정도로, 진지함이라고는 없다. 그리고 그녀는 비음 섞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데 항상 그 목소리를 성대모사하는 직원도 존재한다. 주임님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정해져있다. “첨지님. 아까 내가 한 그 말, 첨지님 싫어해서 한 말 아닌 거 알죠?”
주임님에게는 아마 싫어도 말을 해야하는 순간들이 많았을 것이다. 점장님이 마피아 조직의 보스라면, 점장님 바로 아래 직급인 그녀는 행동대장이었다. 점장님이 은밀하게 내린 지령을 실현시키는 것은 오로지 그녀의 몫이었다. ‘인사 안하는 사람들의 목록을 넘겨라’처럼, 실제로 마피아의 보스같은 지령만 내리는 점장님이었기 때문에 아마 주임님의 일은 조금 더 고달프지 않았을까?
사실 나는 관리직이란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자리고, 그걸 어느정도 감수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면 내가 그랬으니까. 삼대 과동아리의 운영진이었던 내가 그 시절 뼈저리게 배운 것들은 그런 거였다. 미움받을 용기? 아니다. 그들은 나를 미워할 정도로 나에게 심도깊은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 그냥 그거다. ‘욕먹을 용기.’
나는 주임님이 주임님이 아니었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그래봤자 반나절이었다. 내가 입사한 첫날, 그날 점심시간에 전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오늘부로 신화님이 주임이 되었습니다. 다들 박수!” 이런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그 장소에 둘러 모인 사람들의 이름을 전부 알지도 못했으면서 박수를 짝짝 쳤다.
하지만 주임님이 처음부터 주임님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때때로 나에게는 묘한 감정이 일어났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때는 친한 동료들이었을 직원들의 이름을 빽빽한 엑셀표 안에 기입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나에게는 크리스마스 이브 같았던 순간들이, 그녀에게는 지긋지긋했을지도 모른다. 일요일 저녁, 스케줄 표가 발표되면 항상 그녀에게는 수많은 불만이 빗발쳤으니까.
불만은 다양했다. 불과 며칠전에 화장실 청소를 했는데 또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게 된 것에 대한 불만, 7일 연속 일했는데 아직도 휴일이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 출근 시간에 대한 불만,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과 같은 포지션이 된 것에 대한 불만....
수많았다.
우리 매장은 10시에 마감을 한다. 스케줄 표가 일요일 마감 고작 한 시간 전인 9시에 발표된다는 것은, 그만큼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싶었던 주임님의 발버둥 아니었을까.
연말 회식 자리에서 주임님은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계셨다. 주임님은 맥주를 드셨다. 나는 소주를 마셨고. 서로 잔을 기울이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관리하는 거 힘드시죠?”
내가 묻자, 주임님은 그 특유의 인공적인 속눈썹을 팔랑이며 눈을 깜빡이셨다. 사실 그 속눈썹을 볼때마다 펌을 했는지 연장을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번번이 참았다. 뭐가됐든 그녀의 이쁘장한 얼굴에 퍽 잘어울리는 속눈썹이었으니까.
“저번에 춘식님이 나한테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내가 주임이 아니었을 때가 더 좋았다고.”
주임님은 그 정도 이야기만 했지만 때로는 말보다도 많은 게 전달되는 법이다. 항상 빳빳하게 위로 팔랑팔랑 솟아있던 그녀의 속눈썹이 축 처져있었다. 주임님은 그 이야기를 하며 그렇게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5.5일제를 하기로 했다. “주임님. 저 5.5일제 넣어주세요.” 주임님은 내 얘기를 듣고 활짝 미소를 지으셨다. 진짜? 그렇게 되묻는 그녀는 무척 기뻐보였다. 5.5일제를 하기 싫어하는 직원들 사이에서 인력을 짜내고 짜내다 지쳐버린 주임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선택한 5.5일제였고, 주임님의 미소 하나는 내 모든 선택의 보상의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아직 어리다. 누가뭐래도 일단 MZ다. 그렇기 때문에 이따금 세상은 너무나도 어렵게 느껴진다. 쌓아온 경험치가 적기 때문에 가치 판단이 힘들고, 그렇기에 가끔은 내가 내린 판단에 확신조차 서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이런일 저런일 다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냥 내 주위 사람들이 내게 보여준 진심만 믿고 행동하려한다. 그래도 아직은 괜찮을거라고 생각한다. 올해로 스물셋, 세간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나는 ‘지 하고 싶은 것만 하려하는’ MZ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