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울지 않는 법.
내 친구의 성격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로봇'이다. 근데 좀 예능감이 첨가된? 남이 하는 말에 상처도 잘 안 받고 아니 그냥 남에게 관심이 별로 없다. 굉장히 독립적이며 내가 봤을 때는 무언가에 통제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게 친구든 연인이든 가족이든 뭐든. 누가 봐도 100퍼센트 T인 친구다. 보통 계획을 잘 짜지 않는 편인데, 여행에 있어서만큼은 치밀하게 계획을 짠다. MBTI는 ISTP.
나는 친구보다는 조금 더 감정적인 편이다. 가까운 사람들 한정으로는 눈물이 많고, 감정표현을 좀 거리낌 없이 한다. 계획 짜는 걸 굉장히 좋아해서 예전에 한창 심했을 때는 계획 PPT에 경비 엑셀까지 작성했었다.
MBTI는 ENTJ.
내가 좀 더 감정적이라고는 했지만 친구가 T 성향이 좀 많이 강할 뿐 나도 똑같은 유형이라 서로의 말에 상처는 안 받는 편이다. 하지만 둘 다 한 성깔 하는지라 서로가 서로를 좀 배려하며 지낸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는 우리가 싸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것도 짜뚜짝 시장에서.
내가 전에도 말했듯이 나는 굉장한 여름 좋아 인간이다. 나시하나에 반바지 하나만 입으면 완성되는 패션도 좋고 그 쪄 죽을 듯한 열기에서 나는 냄새도 좋아한다. 반대로 친구는 더운 곳에 나오면 바로바로 에너지가 깎이는 스타일이다. 땀나는 것도 싫어하고 더운 곳에서 10분 이상 걷는 걸 굉장히 혐오한다. 이건 내가 20살 이후 친구와 여행을 여기저기 다니며 파악한 건데 이런 친구의 성향을 그때도 알았다면 절대로 짜뚜짝에는 안 갔을 거다.
짜뚜짝은 굉장히 규모가 커서 사실 다 돌아보려면 몇 시간을 걸릴 거다. 실내도 있긴 하지만 실외의 규모가 더 크고 볼 것도 많은데 유일한 단점은 실외!이다 보니 굉장히 덥다는 것이다. 나는 열기를 좋아하니 땀나는 것만 빼면 짜뚜짝은 완벽했다. 평소에는 보지도 못하는 신기한 물건들에 예쁜 기념품들과 눈을 뺏는 예쁜 옷들까지. 마음을 뺏긴 나는 짜뚜짝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돌아다녔고, 사실 그래서 친구의 상태를 크게 신경 쓰지 못한 것도 있었다.
중간중간 덥다는 말을 하던 친구가 숙소에 돌아가자고 말했고, 그때 나도 이 정도면 돌만큼 돈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우리는 짜뚜짝 밖으로 나와서 택시를 잡기 시작했다.
짜뚜짝은 규모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게이트가 굉장히 많은데, 게이트 앞마다 택시들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그런 택시 기사님들과는 가격흥정을 해야 하기에 우리는 그냥 가장 가까운 게이트로 그랩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그러다가 게이트를 잡는 과정에서 서로 의견이 달랐고 그러다 내가 친구의 어떤 말에 기분이 상해서
"말을 왜 그렇게 해?"
라고 물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려고 하면 친구가 나에게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제대로 안 난다. 아마 사소한 일이었겠지. 그런데 나와 친구는 더운 날씨에 시장을 몇 시간 동안 돈다고 제대로 지쳐있었고, 제대로 찾을 수 없는 게이트에 화가 나 있었다. 그때는 그게 서로를 향한 분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다른 데서 축적된 짜증이 잘못된 타겟을 향해 쏘아졌던 것이다. 서로 짜증 섞인 말을 몇 마디 주고받은 후 우리는 택시를 타서 숙소까지 가는 동안 한 마디도 안 했다. 정말 한 마디도.
지금 생각하니 우스운데 그때 당시에는 머리가 정말 복잡했다. 친구에 대한 분노와 이렇게 싸우고 우리는 남은 몇 주 동안 개인플레이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비행기표를 바꿔 일찍 한국에 돌아가게 되려나? 집에 가서 부모님이 왜 일정을 바꿨냐고 물으면 어떻게 하지? 아니 여행 와서 우정이 깨지는 일이 있을 수 있는 건가? 난 이제 얘 없으면 무료한 인생을 뭐 하면서 보낼 것인가. 등등 짜뚜짝에서 숙소까지 가는 몇십 분 동안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숙소에 도착해 룸에 들어갔을 때도 분위기는 얼음 그 자체였다.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차가운 분위기 덕에 날이 더운 것도 까먹었었다.
입을 다물고 서로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고 있을 때 친구가 먼저 침묵을 깼다.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이대로 아무 말도 안 할 거냐라는 뉘앙스의 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아직 풀리지 않은 감정을 서로 이야기하다 내가 먼저 눈물이 터졌다. 당황한 기색의 친구는 나갔다 올 테니 생각정리하고 있으라는 말을 하고 룸 밖으로 나갔다.
어떤 사람들 눈에는 좀 매정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눈물이 터졌을 때는 진정하기 전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나에게는 아주 고마운 일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사실 나는 싸우다 우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그런데 이렇게 누구 한쪽의 잘못이라 말하기 애매하고 어떠한 행동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말이 나에게 상처였을 때. 그리고 그 사람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일 때,
눈물이 터지는 건 정말 당황스럽고 싫지만 불가피한 일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데, 누군가와 다툼이 일어날 때 눈물이 나는 이유가 내가 화가 난 이유가 아닌 그 사람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맞춰지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렇게 때문에 울기 싫다면 감정보다는 그 사람에 대한 분노에 초점을 맞추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게 확실히 효과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별로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과에서는 효과가 분명하게 있다. 그 사람에 대한 분노에 초점을 맞추니 눈물이 나기는커녕 굉장히 차분해진다. 그런데 이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다툼에서는 크게 효과가 없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다툼에서는 아무리 분노에 초점을 맞추려고 해 봐도 결국에는,"니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로 귀결되더라. 나에게는 그랬다. 이 친구와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내가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와 틀어질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불안함과 그럼에도 공존하는 서운함, 그리고 약간의 분노가 섞여 눈물이 친구가 자리를 비운 한 10분 정도의 시간 동안 수도꼭지처럼 줄줄줄 흘렀다. 겨우 진정하고, 친구가 다시 돌아온 후 대화를 해보려 노력했지만 수도꼭지를 덜 잠궜는지 눈물이 다시 쏟아졌고 그런 나를 친구가 달래주며 어정쩡하게 화해를 하게 되었다. 그러고 저녁 시켜 먹었던 것 같기도.
사실 이렇게 싸우기 전까지는 싸우지 않는 관계가 최고의 친구라고 생각했었는데, 뭔가 사이에 문제가 있다면 한 번 크게 부딪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됐다. 한 번 싸움으로써 기억에 크게 남고, 그 기억을 기반으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애쓰고, 그러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법을 깨우치게 되는 것 같다.(물론 이유가 없다면 굳이 싸우지 않는 게 좋겠지만!)
이 일이 있고 난 후로 우리는 그 뒤에 다녔던 모든 여행에서 날씨가 많이 더운 날은 걷는 시간을 줄이고, 택시를 이용하거나, 걸어야 할 곳에 갈 때는 웬만하면 해가 진 시간을 이용해서 갔다. 불가피하게 더운 땡볕을 걷게 된다면 나는 최대한 친구의 기분을 살피려고 애썼다. 그리고 나도 여행 다니며 알았는데 나는 배가 고프면 좀 예민해지는 편이더라. 친구도 그걸 알아서 그런지 밥때를 놓치지 않고 챙겨준다.
우리는 이때 이후로 서로를 좀 더 잘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 그리고 위에 적어놓은 싸울 때 울지 않는 법 혹시 필요한 분이 게신하면 한 번쯤은 시도해 보시길 바란다. 예외가 좀 있긴 했지만 나에게도 꽤 잘 먹혔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