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은 왜 피해야만 하나요.

오늘은 피하고 싶지 않았어.

by Biiinterest

24.05.28(화)

요즘 나는 쌈닭이다. 아니다 싶은 순간에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나의 새로운 모습이 나타났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던 삶이다 보니 손해를 보거나 때로는 무시받는 순간도 빈번하게 있었다. 특히 주변에서는 이런 날 보면 답답해하는 경우도 많았다. 할 말은 좀 했으면 좋겠다는 충고.

사실 화가 나는 순간에도 그냥 억누르는 내 모습이 때로는 싫긴 했지만 다툼이 있는 후에 답답한 찝찝한 순간이 찾아오기에 참는 걸 선택했던 것 같다. 상대방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난 뭐가 그렇게 중요했을까. 여전히 상대방에 대한 시선이 두렵지만 지인이 아닌 타인에게는 조금 달라진 모습인 것 같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 퇴근 후 나의 아지트인 무인 카페에서 일기를 쓰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매형에게 걸려 온 전화가 사건의 시작이었다. 차를 빼달라고 전화가 왔다니, 피해가 갈 곳에 주차를 하지 않았기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가까운 곳이라 일단 자리를 옮겼다. 차 옆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혹시 모르니 차키를 가지고 다시 나왔다. 시동이 걸려있는 차 옆에 한 아주머니가 서성거리고 있어서 말을 붙였다. "혹시 차 빼달라고 전화 주신 분인가요?" 공손한 대화로 시작했다. 맞다는 말에 다시 되물었다. "혹시 옆에 있는 차 주차하시려고 빼달라는 말이신가요?" 역시나 맞다는 말이 나왔다. 또 물었다. "혹시 여기 지정주차 구역인가요?" 아니라는 답변에 당황스럽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면 제가 차를 빼지 않아도 괜찮은 거 아닐까요?" 이때부터 본격적인 대화의 시작이었다. 정말 말 같지도 않은 이유들로 차를 빼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점점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차분한 목소리로 조목조목 대화를 이어갔다. 말싸움이 이어지고 맞는 말을 하고 있는 나에게 답을 하기가 어려우셨을까?


"학교 다닐 때 국어 공부 안 했어요?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이제 참을 이유는 더 이상 없었다. 더욱 차분한 목소리로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대화를 이어가고 결국 옆에 운전하시는 아저씨에게 다른 곳에 주차하라며 포기하는 아주머니. 다음에는 이곳에 주차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이렇게 하시고 다음에 주차하지 말라고 하시면 제가 당연히 주차를 또 하고 싶어 지죠. 그렇게 싫다고 표현을 하고 다음에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또 말싸움을 하자며 마무리를 지었다.


상황이 끝나고 매형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 죄송하다고 간단하게 상황 설명을 했더니 남자분 술 드신 것 같다며 말이 어눌하다고 하는 게 아닌가. 마침 술 냄새가 났었던 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갔다. 잘 걸렸다는 생각에 좀 골탕을 먹이고 싶었던 심보가 발동했다.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혹시 술 드시고 운전하신 건 아니시죠?" 물었다. 담배 연기를 뿜으며 무슨 소리냐며 아니라고 화를 내시는 게 오히려 더 의심스러웠다. 얼굴도 빨갛고 아까 옆에 오셨을 때 술 냄새가 나서 여쭤봤다는 말에 그 옆에 있던 아들이 술을 마셨다고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본인은 먹지 않았다고 완강히 말하는 아저씨에게 알겠다고 저는 술 냄새가 났고 아저씨 얼굴도 빨갛게 올랐길래 혹시나 하는 생각에 여쭤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괜한 의심을 받아서 기분이 나쁘다며 되려 화를 내며 담배를 한 모금 빨더니 내 얼굴에 연기를 뿜는 게 아닌가? 와 정말 너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러고는 되려 경찰서로 가서 음주측정을 하자는 게 아닌가. 속으로 웃으며 알겠다고 원하시면 가자고 말씀을 드렸다. 때마침 시야에 순찰차가 보였지만 음주측정기를 가지고 다니실 것 같진 않았다. 순찰차로 다가가 상황 설명을 드렸지만 역시나 음주측정기를 가지고 계시지는 않았다. 별 일 아닌 것 같으니 이쯤 하고 돌아가라는 말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데 옆에서 112에 전화를 걸고 있는 아저씨였다. 다들 황당한 표정을 한 채 돌아가고 나 역시 이 상황이 너무 웃기기만 했다. 근처에 파출소가 있다며 가자던 아저씨였기에 여기로 부르는 건 조금 실례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경찰을 기다리며 둘만 남아 이야기를 좀 더 나눴다. 의심을 받아 억울하다고 표현하는 아저씨에게 합리적 의심에 대한 설명을 드렸지만 역시나 대화가 통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곧 경찰분들이 오셨고 아저씨가 상황 설명을 하시기에 옆에서 가만히 있었다. 정말 술에 취한 사람처럼 말이 어눌하고 설명을 잘 못 하고 있어서 경찰분들이 상황에 대해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그래서 대신 상황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음주측정을 했다. 속으로 분명 술을 드셨을 거라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정말 술을 드시지 않았다. 그냥 얼굴이 빨간 사람, 말이 어눌한 사람, 아들에게서 난 술 냄새였던 것이다. 경찰분들도 놀란 표정을 짓는 듯했다. 뭐 그렇게 아무 일도 없는 일이 됐고 아저씨는 무고죄로 날 고소하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했지만 무고죄가 성립되지 않기에 경찰분들도 상황을 정리하고 가셨다.


예전처럼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이었다면 그냥 차를 빼고 끝이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선택을 했고 서로 기분이 상했기에 2차전까지 벌어지는 일이 생겼다. 그냥 차를 뺐으면 그 나름대로의 불만을 가지고 기분이 나쁜 채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역시나 차를 빼지 않고 말다툼을 하고 돌아가는 발걸음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어떤 게 더 나은 선택인지 알 수 없지만 오늘의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내가 더 바라는 결말을 얻기 위한 선택을 하겠지. 그때까지 다양한 선택이 다양한 경험을 만들어 줄 것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아니, 무서워서도 아니고 더러워서도 아니고 그냥 피하지 않고 싶은 순간에는 피하지 않겠다.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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