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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킁킁총총 Jul 04. 2024

첫 출근

역시 우리 아들.

24.06.27(목)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건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다. 특히 일찍 일어나야 하는 압박감은 밤에 잠을 더 못 들게 하는 악순환으로 연결되기에 몇 시간 잠을 자지 못한 상태로 첫 출근을 맞이했다.


회사에 출근하는 건 처음이다. 많은 일을 해왔지만 회사에 취업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떨렸던 순간이었을까.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사뭇 다른 공기를 마시는 듯했다. 다들 분주하게 할 일을 하다 보니 나에게 큰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의 자리에 앉았고 나의 자리가 생겼다. 느낌이 이상했다. 내 자리라니. 친구들과 지인들과 연락을 주고받다 보면 너희 자리가 궁금하다고 사진 좀 보내달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나도 내 책상과 내 공간이 생겼기에 어색하면서도 이상한 기분이었다.

첫날이라 크게 뭘 하진 않았지만 컴퓨터 세팅을 시작으로 다양한 교육 자료를 받아 교육생으로서 하루를 보냈다. 핸드폰을 달고 살던 내 삶이었는데 퇴근 시간까지 핸드폰을 몇 번이나 봤을까. 배터리가 90%가 넘는 걸 보면 정말 만질 틈도 없었던 것 같았다. 첫 나인투식스의 삶을 살았던 하루. 퇴근 길이 어색했다. 많은 인파와 함께 퇴근을 하는 이 순간, 나도 진짜 회사원이구나를 실감했다.


긴장이 풀리고 못 잤던 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잠을 자고 싶었지만 이대로 자기에는 새벽에 일찍 잠에서 깰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자기에는 아쉬워 카페로 향했다. 일기도 쓰고 책도 읽으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 저번에 에어컨 필터 청소 할 때 있잖아~"


이번에 내려갔을 때 에어컨 필터 청소를 했던 나에게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를 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의도가 있어서 전화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아참, 오늘 첫 출근이었지? 어땠어? 잘했어?"


진짜 궁금했던 건 나의 첫 회사생활이 어땠는지였다.


부모님에게는 사실 너무 죄송한 일이었다. 자식 놈 멀쩡하게 교육시키고 서울에 있는 대학을 보냈다. 대학에서도 8학기 중에 6학기를 장학금을 받고 다양한 스펙도 쌓으며 순탄한 길을 갔던 아들. 남들 가는 대기업에 당연하게 취업을 할 거라 생각했던 부모님에게 그 아들은 배신감을 전했다.

4학년 1학기 남들 다 하는 전기기사 시험공부를 위해 신도림에 있는 학원을 다녔다. 저렴하지 않은 비용이었지만 기사자격증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취업에 도움이 되었으니까. 같은 학과 동기, 선배들과 함께 학원을 다니며 꽤 열심히 준비했다. 합격률이 현저하게 낮은 시험이기에 다들 한 번에 따기 위해 학원, 집만 반복하며 동고동락했다. 그렇게 우리는 시험을 봤고 9명이 함께 한 시험에서 3명만이 합격했다. 다행히도 그중에 나도 포함되었다.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이어지는 실기 시험을 준비했다. 하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못 된 놈이 되겠지만 차라리 떨어졌으면 더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전공이 너무 재미가 없었다.


사실 공부가 재밌는 순간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도 하면 할수록 궁금해지고 호기심이 생기는 순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린 나이(?)에 그런 생각에 빠져있었다. 전공은 나에게 맞지 않아. 그냥 취업을 위해 남들 하는 건 해야 하기에 흘러가는 데로 살았었다. 그리고 회사 생활은 하기 싫었다. 좀 더 자유롭고 싶었다. 전공을 살리면 회사 생활을 해야 하기에 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큰 결심을 했다.


"엄마, 나 전공 안 하고 싶어. 휴학할래. 그러니까 실기 시험도 안 볼 거야."


아직도 부모님의 표정이 눈에 선하다. 이유를 물어오는 부모님에게 나는 그저 회사 가고 싶지 않다는 말로 답했고 왜 회사가 가고 싶지 않냐는 질문에는 그냥이라는 말로 답을 했다. 혹시 모르니 실기 시험이라도 봐서 자격증은 가지고 있으라고 말하면 시간 아깝다는 말로 단칼에 끊어버렸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고집불통에 독불장군이었기에 더 이상의 대화는 싸움으로 번질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못난 놈이었다.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 후로도 부모님은 회사를 가라고 하시고 나는 가지 않겠다고 자주 싸우곤 했다. 매번 나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기에 어느 순간 부모님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다시 한번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 아들놈이 회사에 들어가겠다고, 합격했다고 말했던 순간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하게 말을 하던 부모님. 하지만 말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떨림과 기쁨은 아무렇지 않지 않았었다. 그런 엄마는 나의 첫 출근이 너무나 궁금했을 것이다.


"잘했지. 첫날이라 교육이 대부분이었어."


"역시, 우리 아들."


이 한 마디가 마음을 울렸다. 그동안 얼마나 회사에 가기를 바라셨을까. 그리고 회사에 출근 한 아들이 얼마나 기특했을까. 오만가지 감정이 밀려왔다. 감정이 복받쳐 오르기에 빠르게 통화를 끝냈다. 내 삶이지만 그동안 너무 제멋대로 살아왔던 나의 삶에 걱정하고 아파했을 엄마의 감정이 나에게 몰려왔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 감정이 다시 밀려온다. 슬프다고 표현해야 할까. 이 감정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미안한 감정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감정을 잘 추슬러보자. 아니, 그보다 이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 않을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분야의 회사이기에 공부해야 할게 많다. 그리고 내 적성에 잘 맞는지도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첫 출근 소감은 부족한 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생각하지 않았다. 잘 맞지 않는다면 다른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의 저 말이 나에게 조금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걸까. 회사에 아주 오래오래 다녀야 할 것만 같은...


아무튼, 열심히 다녀보자. 뭐 앞으로의 일은 모르니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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