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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킁킁총총 Jul 02. 2024

누나, 인간관계는 원래 어려워.

대화가 주는 깨달음

24.06.26(수)

마음이 좀 적적하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혼자 시간을 보내기에는 나란 놈은 분명 잡생각에 빠져있을 것임을 알기에 누나와 함께 하자고 했다. 하은이의 하원 후에 할머니네 집에 가는 것 외에는 일정이 없기에 우리는 점심 식사 후 카페에서 수다 모드를 가지기도 했다.


오랜만에 먹은 부대찌개, 고등학생 때부터 갔던 곳이기에 맛은 보장되는 곳이었다. 역시나 맛있는 음식과 어느덧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사장님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계산과 함께 말을 붙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왔지만 여전히 너무 맛있어요."


요식업에서 일을 꽤 해왔기에 작은 한 마디가 큰 힘이 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나의 이 한 마디가 사장님의 마음에 큰 기쁨으로 자리 잡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입이 절로 말한 건 나의 성격덕이겠지만 말이다. 작은 덕담을 주고받으며 기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 나의 작은 친절이 상대방도 나를 그렇게 대할 수 있게 만드는 순간이 너무 좋았다.


아까부터 맛있는 커피가 너무 먹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던 누나와 단골 카페로 이동했다. 어제도 먹었지만 너무 먹고 싶다는 누나. 하지만 어제 먹은 것만큼 맛있지 않다며 아쉬움을 토하는 모습에 그냥 웃었다.

요즘 누나랑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꽤 재밌다. 유독 소통이 잘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오늘도 역시 그랬다. 오늘은 조금 다른 분위기의 대화였지만 그 역시 너무 좋았다. 최근에 고민이 많았던 건지 술술 누나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인간관계가 너무 어려운 것 같아."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았고 어렸을 적 상처로 인해 인간관계가 순탄하지 않았던 누나는 요즘 들어 만나는 사람도 많아지니 그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았다. 그런 누나에게 나는 조금 너무할지 모르지만 웃으면서 한 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응, 인간관계는 원래 어려워 ㅋㅋㅋ"


나의 반응에 어이가 없었는지 웃으면서 "아, 그런 거지?"라며 말하며 뭔가 표정이 조금 가벼워진 모습이었다. 누나에게 나는 늘 인간관계에 있어서만큼은 타고난 능력이 있는 사람처럼 봐왔기에 나의 말에서 조금은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 인간관계가 쉽다는 생각으로 살아왔었다. 큰 문제없이 어쩌면 누구보다 사람들과 잘 지내왔었기에 어렵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시절 자연스럽게 갖추었던 능력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이제는 이런 인간관계가 어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쏟기가 쉽지 않았고 남보다는 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생겨서가 아닐까.

누나와의 대화가 재밌는 이유는 누나에게 말하지만 사실은 나에게 말하는 대화가 많았다. 요즘 내가 하는 대화의 대부분이 다 이런 형태이긴 하다. 상대방에게 말하지만 결국 나 자신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 너도 그렇게 할 수 있잖아라고 말하는 순간들이다.


"쉽게 생각하자. 관계는 기브엔 테이크. 내가 준 가치만 생각하면 조금 편해. 그리고 상대방도 내가 준 가치만큼 누나에게 줄 거야."


"아, 이때 조심해야 할 게 있어. 내가 준 가치는 나의 기준의 가치야. 상대방이 느끼는 가치는 내가 주는 가치보다 높을지도 때로는 낮을지도 몰라. 그리고 상대방이 누나에게 어떤 가치를 줄 때 그 가치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는 연습이 중요해. 그냥 그 가치를 받아들인다고 해야 할까? 상대방은 나에게 자신이 느낀 가치를 준다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


요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었다. "당연하다."에서 출발한 생각이었다. 나에게는 당연하지만 상대방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정말 많다. 그만큼 반대로 생각하면 상대방에게 당연한 부분은 나에게 당연하지 않은 순간도 많다. 당연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요즘 나에게 너무 중요한 가치다. 이걸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다 보니 생각보다 편리해지는 순간들이 생겼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주고받는 많은 부분이 해결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상처받을 일이 적어졌다.


나의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 생각이 난 것처럼 누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다 보니 찾아오는 번아웃. 나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끼는 영향. 관계에 많은 부분을 본인이 해결하려는 생각까지. 예전의 내 모습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생각뿐이야. 상대방의 생각을 컨트롤하는 건 신의 영역 아닐까?"


"누나는 누나가 할 수 있는 걸 해. 그리고 상대방의 판단은 누나가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 보자."


생각보다 자존감이 많이 낮아져 있는 누나를 보면서 최근에 나의 자존감 상승에 중요한 역할들을 해준 말들을 이어갔다. 그리고 오늘 천선란 작가님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우린 너무 본인에게 야박하게 굴어. 우리가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은 멈춰있을 때라고 해. 실질적으로 우리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순간에는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없잖아? 그렇기에 우리는 멈춰있는 나, 조금 나태해진 나를 마주할 때가 많은 거지. 그렇다는 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순간들을 마주한다는 말이고 그 사람들이 나에 대한 평가를 해준다면 그건 꽤 믿을만한 말이지 않을까? 사람들의 칭찬에 익숙해지고 때로는 그게 내 모습이 맞다고 주문을 걸어보는 건 꽤 합리적인 생각이야. 누나도 나도 다른 사람의 칭찬을 거부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해. 나도 누나도 유전적으로 칭찬이 참 어색한 사람인 것 같아."


말하고 둘 다 웃었다. 아까 점심을 먹을 때 사장님께서 우리에게 칭찬을 해주었지만 우린 그걸 받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지만 실천을 하지 못했고 누나는 늘 그래왔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앞으로 칭찬에 조금 관대해질 연습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마쳤다.


멘털이 많이 흔들리는 요즘이다. 떨어지는 것도 한순간. 올라오는 것도 한순간이다. 그래도 가장 중요한 건 내가 극복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잦은 넘어짐에 지지치만 이게 날 성장하는 원동력이 됨을 안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들다. 덜 넘어지고 싶다. 덜 넘어지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에게는 글쓰기이지 않을까. 아니 넘어지고 일어나는 방법이기도 하다. 생각을 적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너무 큰 힘이 되는 걸 안다. 더, 더, 더 글을 써보자.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나의 속마음까지 무엇이든 적어보자. 그리고 더 잘 쓰고 싶다는 생각에 맞게 더 잘 쓰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조금 덜 넘어지기도 하고 넘어졌을 때 더 좋은 방법으로 일어나는 순간들이 만들어지겠지. 넘어지지 않는 방법은 없지만 넘어지는 방법과 일어나는 방법은 많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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