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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킁킁총총 Jul 01. 2024

세상이 무너졌다.

아직은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24.06.25(화)

사실 오늘 일기는 두 번 째다. 하나는 비밀 일기 하나는 이 일기다. 처음으로 비밀 일기가 만들어졌는데 이유는 내 이야기가 주가 되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랍에 고이 모셔두기로 했다. 미래의 내가 그 일기를 다시 읽기를 바라며 말이다.


오늘 내 세상은 무너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무너지고 있고 무너뜨려야만 한다. 오늘 나는 나의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마음을 먹기로 했다. 아직 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사랑으로 이어지려고 하는 이 순간을 말이다.


나는 금사빠다. 늘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에 드는 순간은 쉽게 찾아온다. 외모의 금사빠라기보다는 마음의 손뼉을 마주치는 듯한 금사빠라는 표현을 해야 할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사람 좋은데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물론 이 감정은 사랑과는 조금 멀다. 그냥 사람으로서 좋음을 뜻한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적부터 연애를 한다면 주로 이런 감정을 느낀 사람들과 연애를 해왔다. 흔히 말하는 자만추가 나의 성향과 잘 맞았다. 소개팅을 몇 번 해봤지만 나에겐 정말 최악의 기억들 뿐이었고 한 번도 좋은 관계로 이어진 적이 없었다.(한 손가락으로 세어볼 수 있을 정도로 해봤지만 말이다.)

그런 나에게 최근에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대해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사랑에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 그냥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라고 말하며 나는 금사빠라고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리고 더 이야기를 했다. 누군가를 쉽게 좋아하지만 사랑으로 생각하진 않았어. 그러다가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어느 순간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구나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오더라고. 나에게 사랑이란 그런 존재였던 것 같다. 물론 이 이야기를 상대방은 기억도 못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술에 취해있었기에.


며칠 전에 책에서 우연히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글을 마주했다. 좋아하는 건 순간이지만 사랑은 이유가 하나 둘 쌓여서 만들이지는 감정이라는 말이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글을 마주하니 어찌나 반갑던지. 그리고 나의 사랑을 좀 더 간단하게 정의해 준 것 같은 마음에 이 글귀를 마음에 새기기로 했다. 어디 가서 써먹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 말을 써먹을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정확히 알았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한 이유가 하나 둘 쌓여가는 중이었다는 걸 말이다. 좋아함과 사랑사이의 어디쯤에 있을 나의 감정. 어쩌면 이미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지만 그걸 말할 용기가 없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고백은 쉬웠다. 차이면 그만이었고 다시 고백할 용기도 갖췄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고백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워졌다. 사랑이라는 감정보다는 소중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더 앞서 서일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나는 나의 감정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 시점에 그만둬야 할 이유를 찾았다. 그 이유를 알았을 때, 정확히 말하면 내 감정도 모른 채 들었던 말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 뿐이지만 말이다. 지금도 아직 멍한 감정이 밀려온다. 아까는 정말 술에 취한 듯 상대방의 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던 순간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멍 때리는 순간이 찾아왔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네가 그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봐"


늘 웃는 내 모습에서 처음 보는 표정이라며, 슬픈 표정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순간 슬펐구나.


아직은 괜찮을지 모를 실낱같은 희망이 있지만 그래도 나는 지금 꽤 슬픈 것 같다. 그래도 나의 감정을 이렇게 알 수 있는 오늘이 꽤 의미 있는 하루이지 않을까. 앞으로 같은 감정을 느꼈을 때 좀 더 빨리 알아차릴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내가 달라지지 않는 이상 결과는 사실 그냥 말하지 않는 관계를 이어갈 뿐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렇게 나에 대해 알아가는 요즘 설레는 순간들이지 않을까.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이 순간이 그리 늦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다가 올 나의 순간들이 한층 더 기대되는 시간이다.


어제보다 나아진 오늘, 오늘보다 나아질 내일을 기대하며 오늘의 감정은 이렇게 여기에 놔두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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