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솔직하게
24.05.10(금)
어렸을 적 포켓몬을 참 좋아했다. 띠부띠부씰을 모으려고 다른데 쓸 돈을 아껴 먹지도 않을 빵을 사서 스티커를 모았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다시 포켓몬빵 열풍이 불어 이곳저곳 편의점을 돌아다니며 빵을 구하기도 했었으니 여간 좋아했던 건 아니었다. 근데 생각해 보면 포켓몬을 엄청 좋아했다는 것보다 포켓몬을 좋아했던 기억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닐까? 피카츄, 파이리, 꼬부기, 이상해씨 뭐 이런 친구들이 주로 좋은 거지 최근 혹은 3세대 포켓몬 정도만 돼도 아는 게 없을 정도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좋은 기억들을 오래도록 좋아하는 성격이지 않을까 싶다. 좋아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도 시간이 지나면 좋았던 기억들만 남아 다시 그 사람이 보고 싶어 지니 말이다. 갑자기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몇 명 떠오르네 허허.
인스타에서 석촌호수에 포켓몬 팝업을 하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게 잠실 쪽에 사는 친구와 약속을 잡고 석촌호수로 가기로 한 날이다. 부지런히 일어나 가려고 생각을 했지만 전날 야등의 여파로 일찍 일어나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눈이 떠지는 오후 늦은 시간에 여유롭게 준비하고 잠실로 향했다.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되었다. 생각보다 늦은 시간에 여유를 부릴 순 없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막상 팝업 장소에 가니 라프라스 등에 타고 있는 피카츄정도만 눈에 들어오고 나머지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았다. 줄 서는 시간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 같은 생각에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네이버 지도에 가고 싶은 곳을 저장해 두는 습관이 하나 있다. 마침 석촌호수 근처에 니커버커베이글이 있는 게 아닌가!!! 기쁜 마음에 바로 달렸갔다. 여기서 나의 성격이 하나 더 나온다. 가고 싶었던 곳은 맞지만 사실 무슨 메뉴가 유명한지는 모른다. 생각보다 많은 종류, 품절 메뉴도 많아서 눈에 들어온 메뉴 중 마음에 드는 걸 선택하고 주문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조금 놀랐지만 맛만 있다면 이 정도 금액은 충분히 낼 수 있다. 하지만... 맛이 없다면 슬플 것 같았다. 메뉴가 나오자마자 입이 떡 벌어지는 비주얼에 일단 합격점을 줬다. 나이프로 잘라 교양 있게 먹으려 했지만 베이글 녀석이 꽤 질겨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사진으로 남기지 않은 게 조금 아쉬운 순간이었다. 반쪽을 교양 있는 사람(?)처럼 먹고 나머지 반쪽은 양손으로 들고 우걱우걱 먹기 시작한다. 아~ 진짜 "존.맛.탱." 커피 사이즈 업까지 한 나 자신을 칭찬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이 맛있는 걸 혼자 먹는 게 아쉬워 연락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베이글 좋아해? 좀 사다 줄까?" 그렇게 다른 사람을 위한 베이글도 포장하는 오지랖쟁이.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송리단길 쪽으로 무작정 걸어가기 시작했다. 역시나 무계획이 계획인 나는 여기저기 기웃기웃거리다가 문득 독립서점을 찾았다. "무엇보다 책방" 책방 이름부터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조급함에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책방을 가면서 월세도 비쌀 텐데 어떻게 독립서점이 이곳에서 유지가 가능한지 의아했다. 근처에 도착해 서점을 찾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고 들어가 보니 어떻게 여기에서 버티고 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내부는 다른 독립서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무난한 느낌의 서점이었다. 큐레이팅된 책들 위주로 책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빠르게 서칭을 시작했다. 그렇게 신기한 책을 하나 발견했다. 책 사이드에는 제목이 있지만 겉표지가 무지였다. 제목도 그림도 아무것도 없는 책, 신기한 책을 펼치니 작가가 직접 쓴(?) 문구가 있었다. 책을 몇 장 넘기지 않았는데 이 책을 사기로 '확신'이 들었다. 바로 "일기"에 대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관심사 중 단연 최고는 역시 일기다. 그런 누군가의 일기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사지 않는다면 꿈에 이 작가님이 나와서 혼낼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우연한 일기를 하나 가지고 친구를 만나러 향하는 발걸음은 이미 두둥실 두둥실 신이 나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와 야장에서 먹는 소맥. 언제 봤을까? 5-6년은 더 된 것 같지만 익숙하고 친근한 친구. 근황토크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무르익어 갈 때 우리의 술잔은 나의 마음처럼 두둥실 두둥실 계속 들떠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롯데타워가 우둑커니 서있는 모습이 마냥 좋았다. "아 이게 서울에서 먹는 술이지." 서울에서의 살았던 좋은 기억이 많기에 언젠가는 꼭 서울에서 다시 살아야지 생각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과연 내가 다시 서울에 와서 살 수 있을까 의문이 드니 조금은 떠다니던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이다. 즐거운 대화가 오가며 술 잔도 함께 오간 지 1-2시간이 지났을까? 어라? 왜 4시간이 지나가있지? 막차 시간이 가까워진지도 모르고 놀고 있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막차를 타기 위해 자리를 정리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집으로 향하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아까의 신난 모습은 어디 갔냐는 듯 차분함이 찾아왔다.
"나 요즘 많이 외로운 것 같다."
최근 정말 많은 사람들과 연락하기 시작한 내 모습.
안 만나던 친구들을 하나씩 만나는 내 모습.
해야 할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
즐거움이 지나가면 찾아오는 공허한 내 모습.
내 모습을 돌이켜 보니 난 지금 많이 외로운 것 같다. 내면의 공허함이 채워지지 않는 요즘, 이 공허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렇지만, 오늘 하루 나답게 즐거웠던 소중한 하루.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