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기 위해 내려가는 중입니다.

야간 등산은 위험해

by Biiinterest

24.05.09(목)

오늘은 인생 첫 야등(야간 등산)을 하는 날이다.


지후는 산의 정기를 참 좋아한다. 기회만 되면 등산을 하자는 지후의 말에 좋아하지는 않지만 딱히 싫어하지도 않다는 이유로 1년에 1번 정도는 함께 등산을 하곤 한다. 특히 요즘은 운동에 관심이 많아져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덕분에 관악산, 도봉산(일부러 힘든 산만 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장소들)을 등산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었지.


이번에는 동네 가벼운 산 2개를 연달아 탄다고 했다. 문득 든 생각인데 왜 등산을 할 때 산을 탄다고 하는 걸까? 찾아봐야겠다. 귀찮으니 지후한테 물어보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다. 문학산과 청량산, 올해 초 잠시 지냈던 선학동에 있는 산이라 그런지 조금 반가운 마음이었다. 저녁 7시 선학역에 동호회 사람들과 게스트인 나, 총 9명이 등산을 위해 모였다. 오랜만에 낯선 사람들과의 모임이고 게스트로 참여하기에 조용히 있다 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들 첫인상은 산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못했다. 유일하게 모임장 형님은 산을 정말 좋아해 보였고 유쾌한 말투에 조금은 마음이 열리는 듯했다. 그렇게 등산을 시작했다.


등산을 하면 몇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오르면서 먹는 간식, 정상에서의 풍경, 정상에서의 막걸리와 컵라면 이 정도이려나? 야구를 볼 때 먹으러 가듯 나에게 등산은 먹기 위함이 크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건 싫어서 가방도 들고 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후와의 등산은 편해서 좋다. 늘 풀 세팅된 장비와 먹거리가 잔뜩 있는 가방을 들고 오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주머니에 초코바 2개와 물 1통만 들고 등산을 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했던 등산과 다르게 모르는 사람들과의 등산은 조금 불편했다. 전체적인 등산 페이스도 그렇고 주머니에 있는 나의 달달구리한 초코바를 맘 껏 먹지 못하는 게 썩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부실한 허벅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산을 오르는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산을 내려올 때 무릎이 아픈 게 싫어서 등산을 싫어하지 오르는 건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특히 오르면서 먹고 수다 떠는 게 꽤 재밌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면 아직 진짜 힘든 산을 가보지 않아서 그렇다고 하던데 힘든 순간이 없는 건 아니니 어떤 산이든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의 페이스에 맞추며 지후는 뒤쪽 무리에 껴서 오고 느린 페이스가 조금 답답해 선두 그룹 쪽에 섞여 등산을 이어갔다. 전에 갔던 산들보다 확실히 가볍다는 생각에 속도를 내는 게 어렵지 않았다. 말을 붙여주시는 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등산을 했지만 관심 분야가 산인 사람들이다 보니 대화의 주제도 대부분이 산이었다. 내가 마음이 닫혀있는 건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불편했던 건지 속으로는 이어폰 끼고 혼자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문학산 정상에 오르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확실히 등산의 재미를 느끼는 순간이 찾아왔다. 야경을 좋아하는 나에게 야등은 꽤 괜찮은 운동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 지후

중간중간 지후가 물었다. "사진 찍어줄까? 사진이 남는 거야." 그러면 나는 1초의 고민도 없이 "아니야, 괜찮아."라고 대답했다. 풍경사진이나 다른 사람들 사진을 찍어주는 걸 좋아한다. 사진도 못 찍는 편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 사진을 찍히는 건 싫어한다. 사진 속에 담긴 내 모습을 보면 못 생겨서 보기 싫다고 해야 하나. 어느 순간부터인지 사진첩에서 내 사진을 발견하는 일이 사라져 버렸다. 최근에도 그런 나 자신을 알고 조금씩 내 사진을 남기려고 노력하는 중이었지만 역시나 사진을 찍어준다는 제안에 망설임 없이 거절하는 내 모습이 나오고만 것이다.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으니 그러면 찍어줄까 물어보면 그냥 응이라고 대답하라는 지후. 멋지네 우리 지후.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러고도 계속 "아니"라고 대답하느라 정작 사진을 제대로 남긴 게 별로 없네.


두 번째 산인 청량산을 오르는 게 길을 헤매느라 일정이 조금 빠듯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산을 오르고 있는데 어디서 폭죽 소리 같은데 들려왔다. 어디서 사격 훈련을 하는 건지, 정말 불꽃 축제라도 하는 건지 궁금해하던 찰나에 한 분이 검색을 해봤다. 근처에서 드론 축제를 한다는 게 아닌가? 9시까지 하는 드론 축제, 현재 시간 8시 40분. 급한 마음에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간에 쫓겨서 그런지 자꾸 길을 헤매며 산을 오르는 도중 나무 틈 사이로 드론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욱 급해진 마음을 가지고 정상을 향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정상에 도착했을 땐 이미 드론축제가 끝나버렸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쉽지만 시원하게 뚫린 시티뷰를 보니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지만 그 쌀쌀함이 마음을 뻥 뚫어주는 시원함으로 느껴지는 건 같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느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다들 사진을 찍고 찍히며 풍경을 감상하고 따끈한 컵라면 한 그릇을 상상했다. 야등의 꽃은 야식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하산을 했다. 내려오는 내내 지후와 다른 동료분과 먹는 얘기만 했던 것 같다. 집 가면 뭐 먹지, 금주 중인데 생맥주가 너무 당긴다, 술 못 마실 때는 야등을 하면 안 되겠다. 먹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니 어느새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곳에 도착했다.

나무 틈으로 보이는 드론쇼와 시티뷰를 보는 우리


하산 도중 지후와 잠시 나눈 등산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해보려 한다.

"등산은 산을 오르는 행위잖아. 다들 '등산'하러 간다고 말하지 '등하산'한다고 말하지 않지? 그러니까 하산할 때는 케이블카 같은 걸 설치해서 편하게 내려오면 안 되나?"

터무니없는 질문을 했다. 무시해도 괜찮을 내 질문에 친절하게 답을 하며 잠시 대화를 이어갔고 웃으며 말도 안 되는 질문과 답들이 오고 갔다. 그러다 문뜩 말했다. "인생을 등산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잖아? 정상에 올랐으면 내려가야 다시 올라오지." 이렇게 말하고 머릿속에 문득 생각이 밀려왔다. "나는 지금 하산 중에 있구나, 올라가기 위해 내려가는 중이야." 지금 내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다시 올라가기 위해 준비하는 중이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인인척 ㅋㅋㅋㅋㅋㅋ 누가 여자할래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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