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슬픔

천 개의 파랑 뮤지컬 후기

by Biiinterest

24.05.23(목)

기다리고 기다리던 천 개의 파랑 뮤지컬을 보러 가는 날! 전 날 예기치 않은 불림으로 좋지 않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함과 찜찜한 기분이 온몸을 감싸는 기분이었지만 좋은 일이 펼쳐질 하루이기에 속으로 오늘은 행복한 날이라는 주문을 외우고 또 외웠다.


오전에 하남으로 차를 가지러 가야 하는 일정이 있었기에 부지런히 움직였다. 한 시간 반이면 될 줄 알았지만 두 시간이나 걸리는 일정까지... 끝없이 나오는 하품을 하며 일정들을 해치웠다. 이젠 차를 끌고 예술의 전당으로 향할 시간. 진짜 이렇게까지 설레도 되는 일인가 싶었다. 좀 이른 시간에 도착하겠지만 그래도 미리 가서 여유롭게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일찍 출발했다. 다섯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도착했다. 뮤지컬 시작 시간이 7시 30분인 시간을 감안하면 너무 일찍 도착한 게 아닌가 싶다. 매표소에 도착하자마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아직 불도 켜져있지 않은 공간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곳저곳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사진을 찍으며 이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설렘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천선란 작가님의 인스타에서 봤던 뮤지컬 인증 사진들이 찍힌 공간에서 나도 인증 사진을 남기고 용기 내어 스토리에 작가님을 태그 해서 올렸다. 혹시나 했지만, 작가님의 스토리에 내 스토리가 올라오는 영광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아 이렇게 덕질이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뮤지컬까지 시간이 남았고 길치인 나형이를 데리러 남부터미널 역 근처 카페를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그냥 걷다가 우연히 플라워 카페를 발견했다. 앉아있을 자리가 불편해 보였지만 플라워 카페를 그냥 지나칠 수 없음에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체크남방을 입고 꽃을 다듬고 계시는 할아버지와 커피 머신을 만지작 거리며 웃으시는 백발의 할머니가 나를 반겨주었다.


"미쳤다."


분위기가 말 그대로 미쳤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플라워 카페와 식물과 다양한 소품으로 꾸며져 있는 공간이 너무 찰떡으로 어우러져 있는 모습에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미 커피를 마셔서 다른 음료를 마시려 했지만 메뉴판에 보이는 직접 만든 바닐라 시럽이 들어간 바닐라 라떼가 보이는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이스 바닐라 라떼 하나 주세요." 주문을 하고 공간의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휴대폰 배터리가 넉넉하지 않아 사진을 찍고 밀리로 책을 조금 보다가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시선이 꽃으로 향하다가 문득 파란 꽃을 사들고 뮤지컬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파란 꽃이 꽃 냉장고에 보이지 않아 예쁜 장미로 선택해 꽃 한 송이를 샀다. 작가님에게 직접 전달할 수 없지만 스토리에 담아 꽃을 드리고 싶단 생각에 설레는 마음과 함께 꽃을 품에 담았다. 나형이가 올 시간, 이제 진짜 뮤지컬을 보러 가볼까.

(천 개의 파랑 뮤지컬 후기, 스포가 될 수 있음)

다시 예술의 전당을 찾았을 땐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한적했던 아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엄청난 인파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까 여유롭게 사진을 찍었던 내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파에 섞여 다시 인증샷을 남기고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공연장으로의 입장이 천 개의 파랑이라는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대 중앙에 놓여 있는 C-27의 콜리가 나를 반겨줬다.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온 나형이에게 간단하게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을 때 무대의 막이 올랐다. 진짜 시작이다.

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작품 속 공간, 인물, 분위기 모든 것들이 실제 눈앞에 펼쳐진 순간만으로도 감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특히 상상했던 이미지와 비슷하게 꾸며져 있는 장면들은 온몸에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은혜역을 맡아주신 송문선 배우님은 내가 상상했던 은혜와 너무 똑같아서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배우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전율이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무대 속 휴머노이드인 콜리와 경주마 투데이의 연기를 맡아주신 많은 분들. 사실 처음에는 직접 움직이기는 모습이 아닌 옆에서 조작을 하는 모습이 몰입감에 조금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공연이 진행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괜한 걱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모습들이 전혀 내 시야를 뺏지 못 했다. 너무 완벽해서 심지어 살아있는 말이 있다고 느꼈을 정도이니 말이다. 콜리역의 윤태호 배우님의 대사에서 느껴지는 휴머노이드스러운 말투 역시 몰입감을 더욱 끌어올렸다.


뮤지컬이 진행되면서 소방관이 한 공간에 있는 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설정이 조금 다른 걸까? 아니면 보경에게 보이는 환상 같은 걸 표현한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후자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연출이 정말 미친 것 같다. 보경의 시간이 멈춰있음을 표현하는 너무 적절한 연출에 몰입이 몰입을 불러왔다. 스크린이 보여주는 배경, 적절한 로봇들의 등장이 뮤지컬의 완성도를 한 층 끌어올렸다.


1부는 인물들의 소개가 주를 이루며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다. 내용을 잘 모르고 보러 온 사람들도 감상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스토리 진행이었다. 같이 간 아무것도 모르는 나형이에겐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오기 전에 많이 걱정했고 보는 동안에서 혹시 재미없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1부를 감상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책에서 감명 깊게 봤던 문구들이 배우들의 입을 통해 귀에 전달되는 순간들이 여러 차례 생기기 시작했다. 읽을 때 느끼는 감정보다 들리는 느껴지는 감정이 더욱 풍부한 감정으로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슬픈 던 문구가 더욱 슬프게 느껴지고, 재밌었던 문구가 큰 소리로 웃으면서 감상하게 만드는 뮤지컬만의 마법 같은 힘을 느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1부 75분이라는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1부가 마치자마자 옆을 보니 눈물을 훔치고 있는 나형이가 보였다. "울었어?ㅋㅋㅋㅋ" 약간 놀리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나형이는 되려 내가 울고 있었던 것 같아서 놀리려 했는데 안 울었다며 아쉬워했다. 사실 눈물이 차올랐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흘리는 순간 정말 터져버릴 것 같아, 멈출 수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소방관에 대한 설정이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 같아서 보경에게만 보이는 환영 같은 걸 표현했다는 설명에 역시나 궁금해하고 있었던 나형이에게 더 좋은 감상을 할 수 있게 해 준 것 같아 뿌듯함을 느꼈다. 15분간의 휴식 시간이 너무 길게만 느껴졌다. 빨리 보고 싶다. 2부 빨리 시작해 주세요. 옆에서 나형이가 신기해하는 것 같았다.


2부가 시작됐다. 2부는 조금 빠른 진행감이 느껴졌다. 뮤지컬 러닝 타임이 140분에서 170분으로 늘어난 것도 아마 내용을 다 담기에는 부족한 시간이 있었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급한 감은 전혀 들지 않았다. 빠르다는 표현보다는 휘몰아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정말 여러 감정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점점 몰입도가 높아지면서 감정을 컨트롤하는 게 쉽지 않았다. 눈물이 차오르고 그걸 참고, 다시 웃다가 어느덧 차오르는 눈물을 또 참기를 반복했다. 소설 속 가장 내 마음을 훔쳤던 장면이 나올 때는 결국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보경이 말하는 "내 시간은 멈춰있어."를 담은 내용은 내가 이 소설에 입덕하는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느꼈다. "아, 내 시간도 멈춰있었구나." 소방관과 보경이 나누는 대화가 절정에 이르러 나의 눈물샘을 폭발시켰다. 참았던 눈물이 흐르자 이제는 정말 멈출 수 없었다. 이제는 정말 울고 웃고 울고 웃고를 반복하는 감상시간이 이어졌다. 마지막 콜리의 대사로 감정은 터졌고 흐르는 눈물을 닦기 위해 안경을 벗어야만 했다.

작가님 제 꽃을 받아주세요>_<

정말 모든 내용을 다 담은 후기를 쓰고 싶었지만 글을 쓰는 이 와중에도 감정이 몰아친다.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 눈물이 흐를 것 같다. 멈춰있던 내 시간을 흐를 수 있게 만들어준 천 개의 파랑. 이 뮤지컬을 감상하는 내내 슬픈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뮤지컬이 끝 나갈 즈음 나의 슬픔이 단순한 슬픔이 아닌 걸 알 수 있었고 머릿속에 스치는 단어, 찬란한 슬픔.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찬란한 슬픔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마음속에 있던 무거운 것들이 찬란한 빛을 내는 슬픔으로 승화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됐다. 아, 또 눈물이 나려 한다. 아니 눈물이 났다. 이 찬란한 슬픔이 나의 삶에 멈춰있던 시간이 천천히 흐르게 할 것임을 느낀다.


투데이의 출전권을 얻기 위한 과정에 연출이 정말 기억에 남는다. 연재, 콜리, 은혜로 시작한 걸음에서 한 명씩 늘어나 연재, 콜리, 은혜, 복희, 민주, 서진, 지수, 점장이 모여 총괄 관리자에게 향하는 걸음으로의 장면은 마음에 웅장함을 가져다주었던 순간이다. 아, 또 보러 가야 하는데 시간이 없는 게 너무 야속하다.


아참 콜리의 이름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콜리송(?) 너무 중독성이...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콜리 콜리 브로콜리~ 콜리 콜리~" 아 또 보고 싶어. 어떻게 다시 볼 기회가 안 생길까 ㅠ_ㅠ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늘 급했던 내 인생, 멈춰있던 내 인생 그런 나에게 천 개의 파랑이 찾아왔다. 내 시간은 흐를 것이고 나는 천천히 나아갈 것이다. 찬란한 슬픔이 나의 인생을 찬란한 행복으로 만들어 줄 것이기에.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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