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상.

by Doc




덕후는 덕후를 알아본다.

말차(抹茶)를 하는 사람으로서 말차에 의한 완의 중요성, 완에 의한 말차의 중요성은 말을 할 여지가 없다.


완에 따라 맛이 달라지며, 변화한다.


차(抹茶)를 접하는 담은 것으로서의 고도자(古陶瓷). 나는 예술을 좋아하고 일상을 예술처럼 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 현실을 예술로 만드는 이가 있다.


고려청자의 국내 탑티어 주재윤 선생님. 오늘의 이야기는 이 고도자(古陶瓷)로써의 청자(靑瓷) 이야기이다.


차를 하는 차 샘들과 강릉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행다 하는 슬샘과 제다 하는 샘, 그리고 말차 덕후이자 완 덕후인 나. 3인방의 공부를 겸한 여행이다.


진료를 마치고 시간이 되자 웃는 미소가 가득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등장한 것은 박물관급의 잔받침과 찻잔. 즉 탁잔이다.. 이쪽으로 오세요~

감사합니다.

저는... 간단한 자기소개가 끝나자 문이 닫힌 공간에서 차 한잔과 함께 시대별 특징과 설명의 시작이다.

...




보통 다완하면 찻사발 말차를 마시기 위한 도구로 고려다완을 말한다.


고려다완이란 고려시대 말기에 쇠퇴한 청자완과 조선 분청사기 사발이 여러 경로를 거쳐 일본에 건너가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흔히 이도다완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다완이 문헌에 처음 나오는 것은 1537년 『송옥회기(松屋會記)』의 기록이다. 고려다완은 일본의 와비차(侘び茶)를 완성한 센노리큐(千利休)에 의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져간 막그릇으로 조선의 서민들이 일상생활에 사용한 막사발이었다.


와비차는 중국의 차문화에 불교의 선을 접목하여 독특한 차문화를 만들었는데, 속세에서의 권력과 재력, 권위에서 벗어나기 위한 와비차에 꼭 맞는 그릇으로 고려다완을 선택했다.


1617세기 서일본 지역에서 크게 유행한 다도구의 하나인 말차(抹茶)를 마시는 찻사발로 조선에서 만든 막사발. 이도(井戶) 다완, 도토야(斗斗屋) 다완, 소바(蕎麥) 다완, 미시마(三島) 다완, 고모가이(熊川) 다완, 김해다완(金海茶碗) 다완, 고려다완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의 주제와 강의는 고려다완이다. 말차는 고려시대에도 있었다. 차를 가루로 내어 개어 마셨다.




서긍(徐兢)*은 고려의 도자기에 감탄하여 『고려도경』에 많은 기록을 남겼다. 고려인들이 차 마시기를 좋아하여 다구를 잘 만드는데 금색 꽃무늬가 있는 검은 잔(金花烏盞), 비취색 작은 찻그릇(翡色小盞), 은화로(銀爐), 찻물 끓이는 세발 솥(湯鼎)이 있다고 하였다. 또 궁궐에서는 대부분 금칠한 것을 썼고 혹은 은으로 된 것도 있지만 푸른색 도기(靑陶器)를 귀하게 여긴다고 하였다.




서긍(徐兢)이 말한 비취색 작은 찻그릇과 푸른색 도기가 바로 오늘날 비색 청자 혹은 순청자라고 부르는 고려청자이다. 서긍은 다른 다구는 중국과 비슷하다고 하면서도 고려청자에 대해서는 색과 형태에 관심을 보이며 감탄한다. 이는 1123년 당시 뛰어난 순청자 찻잔의 모습을 알려 주는 귀중한 기록이다.


서긍이 봤던 비취색의 작은 찻그릇은 1146년 안장된 인종의 장릉(長陵)에서 출토된 청자음각초화문화형탁잔(靑磁陰刻草花文花形托盞)과 비슷하였을 것이다. 탁잔은 왕이나 신하에게 올리는 진다용 찻잔으로 잔 받침이 따로 있었다. 의례에서 왕에게 차를 올릴 때는 다른 곳에서 차를 다린 뒤 들고 들어와 뚜껑을 열어 차를 권하였다. 차를 잔에 담아 들고 갔다면 차가 쏟아지지 않도록 잔 받침이 있거나, 들고 가는 동안 차의 향이 날아가지 않게 뚜껑이 있는 탁잔을 사용했을 것이다.



청자철백화조화문탁잔 - 소장 주재윤 선생님


첫 감상품은 이 탁잔이다. 12세의 고려 탁잔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 4점으로 약을 복용하면서 시작이 되었다.


내 담당은 12세기의 민무늬 탁잔. 차를 마셨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12-13세기의 작품들에 대한 시선...


순청자의 비색 그리고 여운....


바라보는 시선은 매우 중요하다. 시선의 방향성에 따라 기물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눈의 안목을 기르는 것은 컬랙터 이전에 삶을 살아감에 있어 그 현명한 판단을 가져다준다.


주재윤 선생님은 그 바라보는 눈을 감식안이라 표현하셨다. 묘한 동질의식이 마음을 뒤흔든다. 난 고려자기는 잘 모른다. 그러나 백자와 조선시대의 기물들에는 조금 더 깊숙하게 바라보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고려청자의 제작은 자기소(瓷器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완성된 청자들은 공물(貢物)로 국가에 바쳤다. 각 소에서 만든 도자기는 바닷길을 이용하여 개경으로 조운(漕運)한 다음 왕실, 관청, 귀족 등이 사용하였다.


고려청자의 특징인 상감기법은 1150년대에 제작한 청자에 처음 시문(施紋)되면서 점차 발전되어 녹색 청자에 흑백의 상감 문양이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인 도자기로 완성되었다.


그 시대적 순청자의 비색 4점을 실제로 눈앞에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특징을 자세히 살필 수 있다니 감동이 밀려든다.



다완하고는 다른 느낌의 잔탁들...


고려청자 다완들의 세계, 중에서도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고려백자였다. 고려백자는 고려청자보다 앞선 기물이다.


백자의 미묘한 빙열과 유약 그리고 물의 번짐..


이것은 문헌에서나 보던 것을 실제 느낄 수 있다니..


사르르르~ 물이 스민다.. 찻물이 스미면 어떠할까..

완으로서의 완성도 보다 찻사발로서의 스미는 미학이 먼저 생각나는 것은 난 차인인가를 표현해 주는 무의식의 발동이다.


탁잔을 넘어선 기물들의 향연...



고도자(古陶瓷)를 공부함에 있어 안목(眼目)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것은 색깔의 구분이다. 이 색깔의 구분은 내 식대로의 해석이 들어가면 파장의 구분 즉 빛 파장의 구별이다.


연도에 따라 색이 다르다. 물론 차에 있어서도 수색을 보는 것처럼 자기에 있어서도 이 색깔은 중요하다.


색깔과 형태의 구분에 있어서 이 편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주 선생님이 보여주신 편(便)은 그야말로 최상의 교구재다.


너무나 많은 선택된 편들 중에서 철화 편은 대박이었다.



박물관에서도 보기 힘든 철화청자는 그 수가 적다. 국중박에서도 몇 점 보지 못했던 가물이다. 이것은 소성이 까다롭다. 남아 있는 수가 적기에 이것에 대한 공부는 책과 도록이 전부였는데..


철분이 섞인 안료인 검은색의 철사(鐵砂) 안료로 도자기 위에 쓱쓱 호방하게 붓질된 풀과 꽃그림들. 도자기의 바탕색은 검푸르거나 혹은 검붉은 색에 가깝다. 이것이 바로 철화(鐵畵) 청자다.


이 편을 직접 만져보고 소성의 정도와 철화의 두께를 확인했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빠져든다. 이렇게 해볼 수 있는 경우는 절대 쉽지 않다.


소품과는 다르다. 위의 사진은 청자철화 보상화당초문 매병(아타카컬렉션)이다. 우리나라 작품이 아닌 일본의 소장품이다.


개인적으로 관심 있는 것이 철화였는데, 확실한 이해가 되었다.



1. 청자상감인물문표현병(靑磁象嵌人物紋表現甁)



청자상감인물문표현병(靑磁象嵌人物紋表現甁) 소장 - 주재윤 선생님



주재윤 선생님의 컬랙션 중 가장 내 마음을 사로잡은 기물 중 하나가 청자상감인물문표현병(靑磁象嵌人物紋表現甁) 이였다. 고려시대를 보통 불교 시대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토착 사상으로서의 불교는 국교로서의 일반적이면서도 대중을 표현한다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일반적이지 않다. 함축적으로 고려시대 = 불교시대의 시대적 사상을 자기 안에 함축적으로 들어내어 표현해 주고 있다.


실제로 이 기물은 말로는 설명이 안된다. 보자마자 헉 소리를 내질렸으니 말이다.


미술품에 있어서 아름다움이란 함축 적인 회화성을 내포한다. 함축적인 표현으로 인간과 신의 조화 그 연결을 한 작품의 남자와 여자가 팔을 벌리고 마음을 표현하였다.


하늘에 대한 기원과 함께 소망을 담은 작품.


개인적으로 국중박의 어떤 작품보다도 의미가 크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2. 굽을 보다.


고려청자의 성립과 관련이 있는 햇무리굽(日暈紋) 청자완에 대해 살펴보자. 햇무리굽 완은 삿갓을 엎어 놓은 모습의 몸체와 넓고 낮은 햇무리 모습의 굽다리를 한 입지름 15㎝, 높이 6㎝ 내외의 완들이다.


햇무리굽은 중국에서는 옹벽형(玉璧形) 굽, 일본에서는 사목고태(蛇目高台)라고 부르는 특징적인 굽의 형태로 굽의 폭이 1㎝ 정도로 넓고 높이가 낮으며 주로 완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굽의 구분은 매우 중요하다. 굽의 구분으로서 여러 가지 형태와 시대적 구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주 선생님의 소장품들에서 이러한 시기적 형태적인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청자에서의 굽을 살펴볼 기회는 일반인들로서는 가능하지 않다. 이유는 박물관에 놓여지게 되는 기물들은 보통 수직 형태의 세워짐으로 구성을 하기에 바닥면을 살핀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 선생님의 소품 탁잔을 비롯한 매병, 화분 등등에서 그 굽의 특징을 일일이 살필 수 있다는 것은 자기 공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3. 편을 보다.



편(便이라는 것은 자기의 조각을 말한다. 이것으로 공부 할 수 있는 자기에 대한 공부는 매우 광범위하면서 세밀하다. 형태와 빛깔은 물론이거니와 소성의 상태 파악은 물론 연대의 추측까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자 공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형태의 특징, 시기의 추정인데 이것의 공부는 바로 굽과 편으로 가능하다.




4. 고려 백자



高麗白磁.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백자. 고려 하면 고려청자를 떠올리고 백자 하면 조선백자를 떠올리나, 고려 시대에도 백자가 있었다. 비슷한 케이스로 조선청자가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는 청자의 전성기로 제조된 수량은 고려청자에 비해 매우 적어서 현존하는 수량이 매우 희소하다.


위에서 이야기 했지만, 차 한잔의 미학이 그립다. 역시 도록이나 책 보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차의 번짐과 그 여운의 무한이 깨끗한 미색의 흰 빛깔에서 스며든다.


물이 그러할진데, 차는 어떠한가...


공간속의 시간 시간 속의 공간인 이 장소에서 나는 무한한 상상에 빠진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순간의 지금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물질과 내가 하나되는 순간의 지금이 고요하다.


5. 철화 백자편



다양한 형태와 목적을 가진 도구를 만드는데 사용된 철은 아름다운 색을 표현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선사시대부터 산화철 등을 이용하여 색을 냈지만, 발색제로 철화안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들고부터다.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것은 비색청자와 상감청자지만 철화(鐵畵)도 고려청자에 시도된 다양한 시문기법 중 하나다. 철화 청자란 태토 위에 산화철로 시문한 후 시유하여 번조한 청자를 말한다. 즉, 흙 위에 산화철로 새긴 후 유약을 발라 구운 청자를 말한다.


철화기법은 시문이 간편하고 비교적 쉽게 안료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고려청자의 시문 기법으로 폭넓게 사용되었다. 고려시대 주요 청자 생산지였던 해남 강진과 부안일대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철화 청자가 만들어졌다. 철화기법은 장고, 매병, 반구병, 유병, 접시 등 다양한 기종에 사용됐다. 무늬는 모란, 국당초, 초화 등이 있다.


철화기법은 다른 기법과 병용 또는 조합하여 사용되기도 했다. 음각과 철화, 상감과 철화, 퇴화(백화)와 철화 등 흑백 대조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시문 방법은 쉬우면서도 상감과 유사한 효과를 낸다. 이렇게 철화 청자는 독특한 미적 세계를 구축하기 때문에 비색 청자와 상감청자가 주도해 간 고려청자의 흐름 속에서 그 존재는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다.


철화매병은 비롯 감상하지 못했으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을 보았으니 바로 편이다. 보기 힘든 편을 감상한 것이다.


많은 편 중에서 철화편은 철화를 이해함에 았어 가장 좋은 교구재가 된다. 철화편을 매병 편과 같이 비교 감식해 보니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여러 철화청자 중 덕수 4459번 청자 철화 구름 학 무늬 매병은 상감청자에 많이 등장하는 학 무늬(雲鶴文)도 기법을 달리하면 이렇게 새롭다는 것을 보여준다. 철분 안료로 바탕을 칠하고 무늬 부분을 긁어낸 다음 붓으로 백토를 발라 표현했다. 상감기법과 퇴화기법에서 보이는 맛이 동시에 나타나 한층 활달한 느낌이며 운동감이 있다. 형태도 일반 청자매병과 달리 풍만한 몸통 윗부분에 비해 아랫부분이 길어지면서 좁아들었다.


.......



컬랙터의 길은 외롭다. 묵묵하게 걸어가는 그 길이 왜 이다지도 향기가 느껴지는 걸까.. 비색을 닮은 주 선생님의 격(格)이 조용하게 내 마음에 스민다.


나 역시도 컬랙터이다.

지금도 간간이 하고 있으나 나이프, 그리고 라이트의 길울 걷고 있다. 나이프는 접었고 ( 끝까지 가봤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와인과 플래시라이트 그리고 고자기다. 주로 다완(茶碗)에 치중되어 있다.


이 고타와리가 지금의 나를 형성했다. 중요한 것은 상선약수의 중용이다. 그 무한의 여백.... 여기에서의 종점이 나아가는 길.. 이 길의 끝은 무엇일까..

상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 끝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이 길의 것을 잠시나마 동행해 본 7시간 30분의 미학은 나에게 있어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


이 순간의 무한을 가슴속 깊이 끌어당긴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

서긍(徐兢)이 저술한 『고려도경』은 1123년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다녀온 뒤, 고려의 실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견문록으로, 고려의 정치·사회·문화·경제·군사·예술·복식·풍속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


1123년(인종) 서긍(徐兢)이 송(宋)나라 휘종(徽宗)의 명을 받고 사절로 고려에 와서 견문한 고려의 여러 가지 실정을 그림과 글로 설명했기 때문에 ‘도경(圖經)’이라 하였다.


책은 총 40권, 28문(門) 301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고려의 건국, 왕계, 수도 개경의 모습, 궁전·관복·의례, 주요 인물, 종교, 사회계층, 생활풍속, 배와 항해, 문물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정식 명칭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인데, 흔히 줄여서 『고려도경(高麗圖經)』이라 부르고 있다. 서긍은 개성(開城)에 한 달 남짓 머무르는 동안, 그의 견문을 바탕으로 이 책을 지었다. 서긍은 돌아가, 곧 이 책을 만들어 휘종에게 바치고 그 부본을 집안에 두었다. 휘종은 책을 보고 크게 기뻐해 동진사출신(同進士出身)을 내리고, 지대종정승사(知大宗正丞事)로 발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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