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으로 풀어보는 법과학 이야기
나의 단상
미술의 과학 1.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
에드몽 로키드의 물질 교환의 법칙. 법과학자인 나에게는 흔들리지 않는 신념과도 같다. 현장을 임장. 증거물을 채증하고 분석하는 것은 세밀함과 섬세함 그리고 끊임없는 끈기 및 시간을 요구한다. 조그마한 단서 하나가 범행의 흔적을 입증할 수 있는 실질 증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정밀성과 치밀한 세심함을 요구한다. 이러한 증거의 수집은 현장요원의 기본 자질 중 하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증거를 찾아내고 채증하고 분석해 감정하고, 범행을 재구성하는 일. 즉, 감식은 범죄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일 즉 전체이자 전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감식은 비단 범죄현장에서 쓰이는 방법만이 아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련의 과정이 이루어지는데, 이는 미술품의 복원 과정 및 진위여부 등의 판별에서도 비슷한 절차가 수행된다.
덕수궁 수장고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재청의 협업 즉 일로써 접근하게 되었는데, 나로서는 5번째의 수장고 방문이다. 회화의 분석에서 위조나 변조를 가려내는 일련의 절차가 감식 절차와 거의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위변조를 분석하는 방법에 사용하는 것이 증거물을 채증 할 때 사용하는 장비와 동일하다 할 수 있는데, 그중 빈번하게 사용하는 것이 파장 조사 장비이다. 빛 파장의 구분은 흔히 자외선, 가시광선, 적외선의 3가지 파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중에서 물질의 투과 및 반사의 특성을 이용하여 미술품의 분석에 사용되는 파장이 대표적으로 자외선과 적외선이 있다. 이 파장들 중 오늘의 이야기는 적외선이다.
적외선은 사람의 맨 눈으로는 구별이 불가능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적외선 식별이 가능한 이미지 센서 ( CMOS, CCD )가 필요한데, 이를 적용하면 적외선을 조사하여, 흡수 반사된 흔적을 찾게 되면 위의 그림과 같이 보이지 않던 부분이 가시화된다.
윤두서의 초상에서 보이지 않던 옷의 선 및 형태가 가시화되어,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적외선을 일정한 물질을 투과할 수 있는 특성이 있는데, 그것은 인체에도 적용 가능하다. 대략 6 마이크로메터 정도의 투과율을 보여준다고 문헌에 보고되고 있다. 이를 이용한 것이 대표적으로 생체 인지 분야인데, 은행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본인확인용도가 그라하다 할 수 있다. 이 투과 흡수율을 이용해서 혈흔이나 지문 등 인체 유래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
미술의 회화 작품이나 서신, 도자기 등의 위변조 여부를 쉽게 판별할 수 있게 된다. 보아지 않는 사물이나 대상에 대한 가시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을 효율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작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에서 찾을 수 있다. 화폐 중 지폐 권종을 적외선을 조사하면 국가별 특징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복사의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문화재 중에서 회화의 경우를 이야기하자면, 박수근 선생님의 서신이나, 이중섭 선생님의 서신에서의 위작 여부 판별이 가능한 것이다. 위에 사진을 보면 박수근 선생님의 소탈한 성품에 어울리는 서신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서신은 화가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말해 준다고도 할 수 있다. 내용이 소박하고 소탈한 그의 성품을 들어내 준다 하겠다.
문서감정이라는 것이 있다. 문서들 중에서 글자는 개인의 특성을 구별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자획 모획의 시필 특성이 개별성을 구분하는 특징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회화의 가치 보다, 그 개인의 서신이 높은 감정가를 지니게 되는 경우가 있은데, 이중섭 작가가 그러한 편이다. 또한
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위작들이 존재하는 부작용도 무시 못하는 것이다.
미술품 분석에 적용하는 적외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적외선 감지가 가능한 이미지 센서를 이용하면 맨눈으로의 가시화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해상도와 현장 활용에 있어서 많은 것들이 연구되어야 한다.
적외선의 파장대역에 따른 흡수반사율과 서신의 필압, 글자의 특성 기울기 및 자음과 모음의 획의 특성 등 문서감정의 기법들을 활용하고, 잉크 및 종이의 성분 분석, 탈색의 특징 재작 연도 등의 특성을 참조하면 위변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미술품의 감정은 범인을 특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즉 미술에서의 개별을 특정하는 법과학의 적용인 것이다. 미술품 고유의 단일 특성의 집합은 곧 진품을 말한다. 이 단일 특성을 지니지 못하면 위품 즉 가품을 말하는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