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상
일상의 즐거움은 내가 하나하나 실천하는 것이 실현될 때가 아닌가 싶다. 하루하루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많은 것이 느껴지고 공감될 때가 있다.
물론 공감은 마음이 블러 일으키는 동질화된 요소이다. 이 공감은 혼자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책이나 평전, 에세이 등으로의 동감이 있을 수 있겠으나, 그것과는 다른 감정의로써의 공감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이는 상대가 있을 경우에 발현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실천하는 것이 실현되는 과정은 이 공감의 요소가 필수불가결하다 생각한다. 새벽에 눈을 떠 콘퍼런스 준비에 분석 회의에 현장에 정신없는 삶 중애서 공감할 수 있는 그 무엇과 조우한다는 것은 일상에서 큰 즐거움이 된다 생각한다. 그중에서 사람들은 무엇인가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거나, 소확행 등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즐거움은 공감이 주는 본래의 뜻, 사람이 주는 즐거움 즉 내가 아닌 타인과의 교류에서 찾을 수 있다 생각한다. 남녀에 있어서는 이성이 주는 즐거움이겠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것이 가장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 찾으려고 해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의 공감이 기본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연스러운 소통이 쉬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나, 지금의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자신에 빗댄 이에 따라 감정이 움직이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을 배제한 순수한 교류가 그리워지는 현재의 지금이다. 물론 서로가 서로에게 끌리는 끌림의 미학이 자연스럽게 발현될 수 있으나 이것은 확률적으로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임을 찾고 교류를 한다. 이 교류에서 자연스러워지는 나와 타인의 경계를 보고 느낀다.
내가 무엇을 바라기 전에 내가 그러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노력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언젠가는 나타나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작은 공감의 여운을 기대해 본다.
그대와 나 그리고 와인...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의 조우가 그리운 현재의 오늘 그리고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