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밖, 인디아나 존스

by 시노

시내 극장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간판은 햇볕에 바래 색이 옅었고,
겹겹이 붙은 영화 포스터는
바람에 가장자리가 들썩였다.
표를 끊는 창구의 유리창엔 손때가 번들거렸고,
그 너머에서 내민 손이 표를 찢는 순간—
‘딱.’ 짧고 맑은 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번졌다.
그 짧은소리는 마치
필름이 돌아가기 직전,
세상이 ‘컷!’ 하고 장면을 넘기는 신호 같았다.

안으로 들어서면 공기부터 달랐다.
달궈진 필름 냄새, 눅눅한 먼지,
팝콘 대신 삶은 오징어 냄새,
그리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영사기의 ‘달그락’ 소리.
조명이 꺼지면 숨죽인 기침 몇 번,
“쉿.” 하는 어른의 목소리.
그 순간, 빛이 어둠을 가르며 스크린을 적셨다.
먼지 속을 통과한 영사기 불빛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잇는 문 같았다.

해리슨 포드가 모자를 눌러쓰고
채찍을 휘둘렀다.
유물, 함정, 절벽, 그리고 어둠 속의 동굴.
한 장면이 바뀔 때마다 심장이 따라 뛰었다.
“따-다-단-따!”
인디아나 존스의 테마가 울리자,
극장은 마치 모험의 한가운데였다.

영화가 끝나고 문을 나서자,
극장의 어둠이 내 등 뒤로 천천히 밀려났다.
햇살은 이미 기울어 붉게 퍼지고 있었고,
나는 한참 동안 눈을 깜박이며 서 있었다.

그때 옆에서 친구가 말했다.
“야, 우리 동네에도 진짜 동굴 있다며.”
“일제 때 금괴 숨기고 도망갔대.”
“아직도 못 찾았대. 진짜야.”

그 말이 농담처럼 들렸지만,
어쩐지 방금 본 영화보다 더 진짜 같았다.
‘어쩌면 숨겨진 보물창고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주말, 도시락과 손전등,
외할아버지의 낡은 등산지도를 챙겼다.
가방엔 새우깡 한 봉지와 물병,
그리고 낯선 세상에 대한 설렘이 가득했다.
셋이 모여 산 아래에 섰다.
“오늘은 우리만의 탐험이다.”
그 말 한마디가
영화 속 주제가보다 더 힘차게 들렸다.

산길은 생각보다 거칠었다.
신발엔 흙이 묻고, 바지에는 풀잎이 달라붙었다.
“야, 여기 X 표시 있잖아.”
“그건 그냥 이끼야, 바보야.”
서로를 놀리며 웃었다.
그 웃음이 퍼질수록,
두려움은 조금씩 뒤로 물러섰다.

바위틈에 어둠이 깃든 구멍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동시에 멈췄다.
“들어가 볼까?”
“야, 진짜?”
손전등 불빛이 검은 틈을 비췄다.
그 순간—
날갯짓 소리와 함께 박쥐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으악!”
비명과 웃음이 뒤섞였고,
심장은 마치 채찍 끝처럼 튀어 올랐다.

어느덧,
해가 산 너머로 천천히 미끄러졌다.
바람은 차가워졌고,
나뭇잎 사이로 남은 빛이 부서졌다.
우리는 다시 집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길은 낮에 봤던 모습과 달랐고,
발밑의 흙은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손전등 불빛이 흔들리며 앞길을 더듬었다.

“야, 이쪽 맞냐?”
“글쎄, 일단 가보자.”
산 아래로 내려오며,
얻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무언가를 정말로 찾아낸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땐
가방 속 새우깡은 눅눅했고,
손전등의 불빛은 꺼져 있었다.
그렇게 그날의 짧은 모험은 끝났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나는 어둠 속에서도
그때처럼 먼저 불을 켜는 쪽이 되었다.

어쩌면 인생이란
누구나 자기만의 동굴을
탐험하는 여정일지 모른다.
때로는 겁이 나서 멈춰 서지만,
그때마다 나는 마음속에서
그 익숙한 선율을 듣는다.

“따-다-단-따!”
그 멜로디가 들리면
나는 여전히,
극장 밖의 인디아나 존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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