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날 버스는 평소와 달랐다.
좌석마다 비닐이 바스락거렸고,
창틀 사이로 들어온
먼지가 햇빛을 받아 은가루처럼 떠다녔다.
기사 아저씨는
“오늘은 막차 늦게까지 다녀요”라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버스 안 공기가 반 뼘쯤 밝아졌다.
시내에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커졌다.
풍물패 북소리가 창유리를 울리고,
스피커에선 “오늘 밤 마지막 경매!”가 반복됐다.
버스에서 내려 한 블록만 걸으면
냄새가 먼저 안내했다.
호떡 시럽, 어묵 국물, 솜사탕 설탕 냄새.
그 사이로 콩방울처럼 튀어나오는 아이들 웃음.
야시장은 사람의 강이었다.
모시 적삼을 흔드는 할머니,
‘전기뱀장어’라 적힌 장난감,
과녁 맞히기 딱총, 뽑기판의 ‘당첨 없음’.
서커스 천막 앞 매표소에선 졸던 아저씨가
줄이 늘자 귀신처럼 깨어나 표를 찢었다.
귀신의 집 앞에서는
늑대 가면 쓴 형이 “으악!” 하고 튀어나왔다가
내가 더 크게 놀라자 “아 미안…” 하고
쭈뼛거렸다.
악역 실패한 그 모습이 더 무서운 줄도 모르고.
하지만 그날의 최종 목적지는
회전목마도, 서커스 텐트도 아니었다.
오락실.
네온이 눈을 찌르고,
문이 열릴 때마다 ‘띠리링—’
금속 소리가 찢어졌다.
담배 냄새랑 자존심이 서로 비비는 곳.
오십원이 캐릭터의 목숨으로 바뀌는
신비로운 공간.
“장풍!”
그때 우리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주술이었다.
시간은 괜찮았다.
문제는 동전이었다.
정류장으로 향하던 길,
어깨에 팔 하나가 턱 걸렸다.
“잠깐만.”
고막 바로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스며들었다.
축제의 환한 불빛과
다리 밑의 어둠은
단 한 걸음 차이었다.
형들이 반원을 그리며 섰다.
옷깃엔 야시장 먼지가 묻어 있었고,
손엔 마른오징어가 들려 있었다.
“재밌게 놀았냐.”
말끝이 올라갔다.
대답하기도 전에 손이 내 주머니로 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움켜쥐었다.
봉투 안엔
지폐 한 장, 오백원짜리 하나, 백원짜리 몇 개.
오늘 쓴 내역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지나갔다.
꽈배기, 과녁 세 번, 보글보글 두 판.
남은 건 집까지 가는 정확한 차비.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아껴둔 얼마.
형은 내가 움켜쥔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
“우리는 운이 좋고, 넌 형편이 좋다. 좀 보태라.”
웃는 얼굴이 더 어려웠다.
나는 결국 봉투를 내밀었다.
손끝에서 종이의 온기가 빠져나갔다.
형은 익숙한 동작으로
지폐 한 장과 동전 한 줌을 집어갔다.
봉투는 동시에 가벼워졌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계산이 빠르게 돌아갔다.
한 칸 모자랐다.
“형… 잠깐만요.”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얇았다.
“버스 타야 해서요. 백원만… 백원만 주세요.”
잠깐의 정적.
누군가 킥킥 웃었다.
한 형이 봉투를 한 번 더 뒤집더니
동전 하나를 툭 던졌다.
모래바닥에 떨어진 백원이 둔하게 울렸다.
축제장 음악보다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에이, 백원은 남겨주자. 집은 가야지.”
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했고,
따뜻해서 더 서글펐다.
형들은 오징어를 쥔 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고는
어둠으로 흩어졌다.
나는 모래에서 동전을 집어 들었다.
멍도 없고, 흠집도 없는데
속이 욱신거렸다.
짧게 말하면,
존심 골절.
버스에 올라 동전을 넣으니
짤그랑—
오늘 들은 소리 중 가장 정직했다.
창문에 비친 얼굴은
중학생 그대로인데
딱 한 살은 더 먹은 표정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아무 일 없다는 듯 밥 냄새가 골목을 채웠다.
손바닥을 펴보니
손톱 밑 검은 때가
오늘의 영수증처럼 남아 있었다.
지금도 가끔
오락실 문 열리는 소리가
환청처럼 이어진다.
그리고 꼭 뒤따라
짤그랑—
오래전에 넣은 백원이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서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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