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신라의 달밤이여

by 시노

요즘 아이들 수학여행 사진을 보면 괜히 웃음이 난다.
버스 안에서도 찍고, 밥 먹으면서도 찍고,
찍자마자 올리고, 바로 웃는다.
우리 때는 달랐다.
사진은 일회용 카메라로 찍었고,
그중 잘 나온 한 장이 평생의 기념이었다.

수학여행은 내 인생 첫 ‘진짜 여행’이었다.
학교 가방 대신 보스턴백을 들고,
버스에 올라타는 순간
이미 마음은 경주에 닿아 있었다.
창가로 들어오던 아침 햇살,
교정 가득 퍼지던 비누 냄새와 들뜬 웃음.
세상이 나를 향해 열리는 것 같았다.

며칠 전,
엄마가 셔츠 한 벌과 용돈을 보내주셨다.
“사진 찍을 땐 어깨 펴고, 너무 까불지 말아라.”
셔츠는 조금 컸지만,
그날만큼은 그 크기만큼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낡은 지갑 속엔
세상을 향한 용기와
엄마의 말 한마디가 함께 들어 있었다.

버스 안에서는 박남정이 대세였다.
〈널 그리며〉가 흘러나오면
누군가는 고개를 까딱이고,
누군가는 따라 부르며 창밖을 바라봤다.
김완선의 〈리듬 속의 그 춤을〉이 이어질 땐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는 아이도 있었다.
창밖으로 논과 들판이 흘러가고,
그 위로 웃음이 터졌다.
그건 지금 생각해도 가장 완벽한 배경음이었다.

첫날은 천안.
독립기념관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태극기 앞에서 선생님은 한참 말을 멈추셨다.
그 표정엔 설명보다 긴 마음이 담겨 있었다.
말보다 표정이 먼저 가르쳐준 날이었다.


둘째 날엔 경주로 향했다.
버스 안 공기가 한껏 들떴다.
“야, 첨성대는 진짜 하늘까지 닿는 거래!”
“불국사는 금빛이라며?”
그 기대와 달리 첨성대는 작았고,
불국사는 웅장했으며,
석굴암은 멀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든 걸
사진보다 웃음으로 남겼다.


숙소는 큰 방 하나짜리 호스텔.
이불은 얇고, 방은 넓었고,
삼십 명 남짓 아이들이 바닥에 줄지어 누웠다.
“창가 쪽은 내가!”
“야, 너는 코 골잖아!”
결국 코 고는 친구는 문 옆으로 밀려났다.
이불 사이로 웃음이 흘렀고,
그 웃음이 밤공기보다 더 따뜻했다.

저녁엔 장기자랑.
누군가는 박남정 춤을,
누군가는 유재하를 불렀다.
나는 친구와 함께 〈널 그리며〉를 준비했다.
흰 셔츠에 청바지, 손목엔 흰 수건.
박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무대 같았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너희는 참 열정적이다.”
그 말이 이상하게 자랑스러웠다.

밤이 되자 숙소는 조용해졌지만
우리는 조용하지 않았다.
이불속에서 과자를 돌려 먹고,
몰래 창문을 열었다.
달빛이 흘러들고,
바람 사이로
다른 학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중 한 여학생이 다가왔다.
“혹시 ○○중학교예요?”
“응… 너는?”
“○○여중이야.”
그 애는 짧게 웃었다.
이름도, 반도 몰랐지만
그 순간만큼은
달빛이 우리 둘만을 비추는 것 같았다.
대화는 짧았지만,
그 밤은 길었다.

숙소로 돌아오니 선생님이 복도에 서 계셨다.
“어디 갔다 왔냐?”
“화장실이요!”
말은 동시에 나왔지만 숨은 엇박이었다.
선생님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리셨다.

다음날, 친구들은 경주빵을 샀다.
나는 ‘신라의 달밤’이라 새겨진 볼펜을 골랐다.
“엄마 줄 거야.”라 말했지만
사실은 내가 쓰고 싶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창밖 풍경이 이상하게 낯설게 보였다.
떠나기 전엔 그저 놀고 싶었는데,
돌아오는 길엔 괜히 그리움이 밀려왔다.
아마 그게,
세상을 처음 배우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경주에 가면
첨성대보다 먼저 그 밤의 공기가 떠오른다.
아, 신라의 달밤이여.
그 시절 내 마음을 뛰게 했던
첫 여행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지금도 내 안에서 조용히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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