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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롱불 Apr 09. 2023

국가직 9급 필기시험 시험감독관 후기를 쓰게 되다.

공시생 후기에서 감독관 후기로


4월 8일 2023년 9급 국가직 공개경쟁채용 필기시험이 치러졌다.



  아직 공시생 때의 느낌이 생생하다.


바로 위의 '치러졌다'를 타이핑 할 때 치르다/치루다를 생각하는 날 발견할 때처럼 종종 드는 생각이다.  
('치루다' 라는 동사는 없다. '치르다 + 어 => 치러' 치루다, 치뤄지다, 치뤘다는 놀랍게도 모두 비표준어이다.)
정말 질리게도 외웠었는데... 아마 9급 공무원을 준비해 본 사람들은 다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2022년 9급 국가직 공채를 볼 때는 긴장감에 손이 덜덜 떨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금방 합격하고 털어낼 줄 알았던 시험에 낙방하고 나서 나름의 방어기제를 많이도 펼쳤기 때문이다.


"한 문제 차이로 떨어졌으니까 다음번엔 무조건 붙어, 절대 걱정 하지 마"
"이번에 아깝게 떨어졌으니까 무조건 합격하겠지 뭐"


  고시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9급 공무원 시험에 낙방했다는 사실에 대한 언급(해명 내지 변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있었고, 이런 상황이 쌓여갈 때마다 마음 깊은 곳의 부담감도 덩달아 커졌던 것 같다. 시험일과 가까워질수록 미친 듯이 솟구치는 심박수를 가져오긴 했지만, '해야 한다'라는 부담감이 커질수록 공시생의 친구라고 볼 수 있는 나태함과의 싸움에선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정적인 동기요인이긴 하지만 모로 가든 합격만 하면 되는 세상이 아닌가, 태생적으로 나태함과 가깝고 성실함과는 거리가 있던 나로선 부정적 동기요인이 합격까지 갈 수 있는 최선의 동력이었다.



  아무튼, 썩 좋지만은 않았던 정신상태로 2년의 시간을 보낸 내가 작년에 본 시험과 동일한 시험에 위치만 바뀌어 다시 시험장으로 간다는 건 나름의 뿌듯함을 주는 일이었다. 주말에 새벽부터 일어나 준비해야 하긴 했지만 나름 수당도 괜찮게 지급되고 거기에 날씨까지 좋은, 말 그대로 좋은 날이었다. 자세한 일정은 7시 50분까지 시험본부에 모여 간단하게 과자를 먹으며(아침/점심 식사는 따로 지급되지 않고 식비 또한 지급되지 않는다.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냐고....) 정/부 감독관에 따른 자세한 역할분담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9시가 될 때 즈음해서 고사실로 이동한 후 내부 환기, 수험생 안내, 약간의 멍 때리기와 구경 시간을 갖고 9시 37분에 시험본부로 돌아와 문제지를 들고 가는 과정이었다. 시간별로 체크리스트가 있고 돌발상황시 안내 방침 또한 지급된 안내문에 상세히 적혀있어서 사실 교육 없이 안내문만 들고 가도 감독관 역할을 하는 데엔 지장이 없을 정도로 시스템화가 잘 되어있었다.



(시험감독관이라고 쓰인 패를 붙이고 다녀야 한다. 볼품없어 보일 수 있지만 난 좋았다.)




  시험본부에서 정/부 감독관을 정하는데 내 옆에 계신 주무관님은 서초구청 행정주사보(7급)셨다. (나는 서울까지 오는 데 2시간이나 걸렸는데 정감독관이신 서초구 주무관님은 집이 근처라고 하셨다. 국가직 공무원 1패 적립.) 자기도 시험감독관 경험이 한 번밖에 없다고 정감독관이 처음이라고 하셨지만 아기 시보에겐 충분히 의지할 만한 분이셨다. 문제가 생기면 베테랑처럼 처리해 주시겠지. 간단한 아이스브레이킹이 끝나고 같이 고사실로 이동했다. 내가 배정된 고사실은 전국 일반행정 직렬이었다. 일반행정 전국, 우정사업본부, 경찰청 세 선택지를 놓고 며칠 동안 머리를 싸매며 어딜 지원해야 할까 고민하던 내가 생각났다. 전국 일행은 컷이 너무 높아 무서웠고, 경찰청은 지방으로 갈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우정사업본부로 정했던 걸로 기억한다. 면접 때는 대단한 이유가 있는 듯이 우정사업본부에 지원했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와 다 비슷하지 않을까?



  고사실에는 이미 반수가 넘는 응시인원이 도착해 있었다. 나는 어리숙하게 창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다가 옆 주사보님께 여쭤보고 환기를 시켰다. 다른 것들도 시보답게 어물쩍 움직이면서 눈치로 해결했다. 이후에는 방송안내와 답안지 교부가 끝난 후 시험본부로 이동해서 문제지를 들고 고사실 앞에 대기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 아무래도 문제지를 들고 이동해야 해서 그런가 휴대폰은 시험본부 밖으로 가져갈 수 없다고 안내받았다. 손에 휴대폰이 없는 불안한 느낌을 오랜만에 받을 수 있었다. 항상 들고 다니던 휴대폰 대신 두툼한 문제지 봉투를 손에 들고 고사실로 이동한 후에 문제지를 배부하고 타종이 울린 후 시험이 시작되었다.



  교탁에 서면 부담감에 한숨을 쉬고 심호흡하며 문제를 풀어나가는 스무 명의 응시생을 전체적으로 다 볼 수 있다.


 문득 "선생님은 너희들이 뭘 하는지 다 보여"라고 말씀하시던 중학교 선생님이 생각났다. 진짜다. 진짜 한눈에 다 보인다. '선생님은 안 보이겠거니 하고 딴짓하던 내 모습을 보고도 넘어가 주신 거겠지'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시간이 가길 기다렸다.


  시험 시작 10분 후에는 부감독관이 응시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답안지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 이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분명 대리응시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면 답안지에 서명한 내가 책임져야 할 상황이 올 텐데 응시자 얼굴이 사진이랑 다 딴판이다. 응시원서에는 보통 정장에 풀메이크업을 한 면접용 사진을 넣게 되는데, 사진과 실물이 다른 건 아침부터 시험을 보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뭐 별 수 있겠는가? 맞겠지... 하며 서명을 해 나갔다. 응시자들의 마스크를 내려서 얼굴을 확인하라는 원칙 때문에 한 분 한 분 답안지에 서명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었다. 정신없이 문제 풀고 있는 상황에서 감독관이 흐름을 깨야하는 게 응시자들에게 참 불편하고 미안한 일이다. 하필 답안지에 서명하는 시간을 왜 시험 시작 후 10분 후로 설정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시험 직후에 하면 흐름이라도 깨지 않을 텐데.



  서명하는 시간이 끝난 후에는 90분간 정신과 시간의 방에 있는 것처럼 사색에 잠겨야 했다. 응시자에게 불편을 초래하지 않고 민원제기를 없애기 위해 감독관은 시험기간 중 문제지를 보아서도, 휴대폰을 해서도, 상호 잡담을 해서도 안 된다. 그냥 멍하니 응시자들을 보며 (이것 또한 한 분만 집중적으로 보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 규정... 규정... 규정... 익숙해져야지.) 시간을 보냈다. 공시생일 때는 10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고 순식간에 지나갔는데 감독관의 입장에선 정. 말. 시. 간. 이. 안. 간. 다. 9급 공무원 시험도 이런데 도대체 5급, 7급 시험 감독관님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내신 건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분간의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의 인생을 건 달리기가 끝나고 나서 답안지를 회수했다. 다행히 내 고사실에는 타종 후에도 마킹을 하는 응시생이 나오는 불상사가 일어나진 않았다. 다들 베테랑처럼 시험 종료 1분 전 마킹을 마쳤다. 우리 고사실에선 합격자가 많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험에 익숙하다는 건 익숙해질 때까지 자신을 버려가며 고통받았다는 것이니까. 답안지를 회수하고 곧바로 시험본부로 돌아가서 회수한 답안지를 제출한 후에 대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고사실은 결시가 2명밖에 없었고 특이사항 또한 없었기 때문에 다른 고사실 작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대기시간에 옆 주무관과 대화를 하는데 자긴 4년 전에 9급으로 들어와 이번에 7급으로 승진하셨다고 했다.(승진속도 국가직 1패 또 적립.) 아직 어떻게 해야 승진을 잘할 수 있는진 모르겠지만 나도 저 주무관님처럼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일은 해야 하고 같은 일을 할 거면 승진도 빠른 게 좋지 않겠는가?



  이런저런 대화를 한 이후에 12시가 조금 넘어 답안지 회수의 모든 작업이 끝나고 현장에서 수당을 지급받았다. 현찰로 주실 줄은 몰랐는데 봉투에 현금을 넣어주셨다. 돈 받으면 끝난 거지하고 재빠르게 시험본부에서 빠져나왔다.



  공무원 시험을 보고 나면 우르르 몰려나가는 인파를 보며 저 많은 인원 중에 과연 몇 명이나 합격할까, 내가 그 인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광경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일 년 전의 내가 왔던 곳, 했던 생각들을 되짚어 나가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인데 하나를 채우지 못한 점은 살짝 아쉽달까.



  집으로 곧바로 오긴 아쉬워서 근처 스타벅스에 들렀다. 더 이상 공시생도 아니고 수당까지 받았으니 아메리카노를 시키지 않고 자바칩 프라푸치노를 시켰다. 사이즈 업은 거들뿐.

대단한 명품을 걸치지 않아도, 좋은 차가 없어도 이런 소소한 행복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욕망과 그 욕망을 채우기 위한 고통은 비례하니까.



  공무원 준비를 할 때는 앉아서 시험을 치르는 나와 교탁에 있는 사람과의 거리가 정말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막상 공무원이 되어보니 또 그런 것도 아니다. 딱 교탁과 책상 사이만큼의 거리가 있을 뿐이다. 많이 쳐줘봤자 1~2년의 시간 차이만이 있을 뿐. 수많은 공무원 준비생분들, 예비 공무원 준비생분들이 모두 조급한 마음을 덜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하지 못 했던 긍정적 동기부여를 하면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어차피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는 준비생 기간을 더욱 아프게 보내지 않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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