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내국 우편창구에 업무배정받아 주로 등기통상과 등기소포를 접수하는 일을 맡았는데 각 창구마다 하루에 100명이 넘는 인원을 받다 보니 분명 업무를 보고 있지만 정신줄을 놓고 접수를 받을 때가 생기게 된다.(중간에 수십 통의 통상/소포를 가져오는 분들이 계신다.)
정확히 무슨 사건이었냐면, 보통 좌상단에 발송인의 주소를 적고 우하단에 수신인의 주소를 적는데 이걸 반대로 적어오는 분이 계셨다. (종종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만 "~~ 로 보내는 게 맞으십니까?" 질문으로 예방한다.) 바로 옆 창구에서 도로명주소 관련한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고 여기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항상 주소지를 이중체크하던 질문을 빠뜨리고 그냥 접수해 드렸다. 팀장님께서 실수는 항상 정신없는 상황에서 벌어지게 되니까 항상 집중하라고 하셨는데 이 말에 딱 들어맞아버렸다...ㅋㅋㅋ... 고객님께선 수신인 발신인의 위치를 다르게 적어오셨고 난 그 함정에 빠져버렸다... 부산으로 소포를 보내는 분이셨는데 사실 정신을 조금만 차렸어도 소속 관내국 -> 다른 도시로 보내거나 소속 관내국 -> 같은 도시로 보내는 게 맞는데 뜬금없이 부산 -> 소속 관내국으로 보내는 소포였으니 알아차려야 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난 정신없었던 4일 차 시보였고, 이런 시보에게 걸렸을 뿐이다...
출근 5일 차 금요일에 열심히 우편 접수를 받고 있던 날 전화벨이 울려서 신나게 받았다.
"행복을 드리는 ~우체국입니다~ "
"제가 어제 택배를 접수했는데, 이게 왜 제 쪽으로 다시 온 거죠?"
"네.....? 확인해 드릴 테니 등기번호 한번 불러주세요~"
......
'아 왜 이렇게 접수했지.........?'
"죄송합니다 고객님 ㅠㅠ 제가 잘못 접수해 드렸어요"
바로 팀장님께 쪼르르 달려가서 실수를 이실직고했다. 다행히 접수하신 고객님이 우체국에서 5분 거리에 계셨고 팀장님과 후다닥 달려가서 오배송된 소포를 가져와 다시 부산으로 가는 소포로 접수해 드렸다. 처음 업무를 보다가 실수를 해보니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안절부절못하고 심적으로 계속 우울하게 오후 업무를 지속했다. 특히 국장님께 제일 중요한 주소를 잘못 받는 실수를 하면 어쩌냐 소리를 들은 게 가장 괴로웠다.
'일 좀 잘하는 신입이 들어왔네?' 평판을 듣기를 너무 기대했던 탓일까? 테트리스를 할 때 기다란 일자형 모형을 놓으면 완벽하게 클리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엉뚱한 곳에 놓았을 때처럼 기대와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고, 담담히 대처하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천사 같은 팀장님이 괜찮다고 나도 잘못된 주소로 접수해서 다시 가져와 본 적 있다고 말해주셔서 다행이었다.
(뒤숭숭한 내 마음이 담긴 우체국)
공무원이 되기 전에는 업무가 힘들고 실수했을 때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왜 그러지? 어차피 공무원 안 잘리잖아, 그냥 철판 깔고 자리만 차지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렇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백수였을 뿐이다. 철밥통이라는 세간의 시선을 받는 공무원이지만 여기선 작은 실수도 없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다. (아직 시보라서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보지 못 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차피 언젠간 하게 될 실수를 미리 했으니 다음부턴 빈틈없게 처리하면 될 일이라며 혼자 마인드컨트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루를 보냈다. 전국에 계신 모든 신입사원분들이 긍정적인 마인드로 괴로워할 일은 빨리 잊고 개선사항으로 만들면 된다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하는 출근 5일 차의 아기 시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