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5일 만에 업무 관성이 생긴 걸까? 금요일 오후가 되어도 내일 출근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출근 - 퇴근 - 저녁 - 수면 - 출근 사이클을 반복해서 그런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보통 첫 출근 후 한 달간은 퇴근한 이후의 삶이 없다고 한다. 일하지 않는 no-working 사피엔스의 삶을 살던 사람이 갑자기 주 5일 풀타임 출퇴근을 하게 되면 과부하가 생기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하다.
첫 토요일은 일단 늦잠으로 시작했다. 출근하는 데 1시간이 소요되다 보니 항상 7시 이전에 일어나야 하는데 이날은 마음 놓고 늦잠을 잤다. 하지만 6시 50분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는 걸 보며 이등병 때의 내가 생각났다. 벌써 알람 없이 기상이 가능한 내가 된 걸까...? 7시에 깜짝 놀라며 눈을 뜨고선 곧바로 다시 숙면 모드에 들어갔다. 느지막이 일어나 친구들과 야구장에 가기 위해 모였다. 오랜만에 보는 애들이었는데 날 보자마자 하는 말이 "왜 아침부터 피곤해서 죽으려 그래?"였다. 어제 처음 업무 실수를 하고 나서 불안한 정신상태로 있었던 탓일까? 숨길 수 없는 피곤함이 묻어 나왔나 보다 생각했다.
아직 개막전이 시작하기 전이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이 미리 야구장에 모여 있었다. 많은 인파를 보면서 '저 사람들도 어제 퇴근하고 주말이라 놀러 나온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 토요일이라 많이 피곤할 텐데 점심부터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 야구장의 국룰 치킨과 맥주를 사서 경기를 보는데 항상 뭔갈 이뤄야 한다는 압박감에 있던 때에 야구장에 왔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성과에 대한 압박이 없는 상태에서 여가를 즐기니까 훨씬 쾌적하다고 해야 하나? 마음의 부담이 없이 순수하게 즐긴다는 게 이런 행복이구나 싶었다. 이젠 여기저기 많이 다니면서 즐기는 인생을 살아봐야지.
(한화팬이긴 한데 대전까지 가긴 좀 그렇잖아..?)
야구관람을 하고서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며 직장생활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물론 주된 이야기는 '내가 하는 일이 제일 힘들어' 힘듦에 대한 자랑과 푸념에 관한 주제였지만 색다르고 재미있었다. 내 주변엔 공무원 친구들이 많아서 그런가 소방공무원, 경찰공무원, 행정공무원들이 각각 겪는 고충들을 들으면서 공직사회가 마냥 편하다고 생각하는 세간의 인식과는 괴리가 있다고 느꼈다.
당직과 휴무를 계속하며 25시간 근무 중 20번 이상의 출동을 하고 일반인들이 겪을 일이 거의 없는 끔찍한 사고현장에도 투입되는 구급대원의 고충, 취객들에게 항상 선 넘는 모욕을 들으며, 처리불가 악성 민원의 후처리를 담당하며, 공권력의 발휘와 그에 따르는 개인의 책임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찰공무원의 고충, 인수인계 없이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않고 바로 담당자가 되어 왜 일을 이 정도밖에 못 하냐는 공격을 받는 지방직 행정공무원의 고충 그리고 하루 백수십 명의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우정행정직 공무원의 고충까지 각자가 나름대로 다 힘든 상황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 가장 급여가 적다고 이야기한 내가 판정승한 것은 논외로 하겠다. 하하하...
토요일은 제대로 쉰다기보단 활동적으로 움직였고 일요일은 말 그대로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I 성향을 가진 나는 활동적인 것도 좋지만 그 반대급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충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침대 위에 누워 옆엔 과자를 두고 보고 싶었지만 미뤄둔 영화 리스트들을 지워나가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 첫 주말을 끝냈다.
내일 출근하기 싫은 건 신입이 아니어도 모든 사람이 똑같겠지...? 이틀이 마치 2초 같았던 첫 주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