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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롱불 Apr 05. 2023

스물아홉에 첫 출근을 했다.

좌충우돌 출근기

  늦은 나이 스물아홉에 첫 출근을 해보았다.


  2년 간의 가시밭길이던 공시생 생활을 마무리하고 고대하던 공무원이 된 첫 출근이었다.

물론 아르바이트 같은 비정규 단기 업무를  적이 있어서 사실 첫 출근이라고 말하기엔 어폐가 조금 있지만 아무튼 첫 '직장'에 첫 '출근'을 했다.



  우정사업본부 행정직에 합격한다면 합격한 지역의 총괄국에 먼저 출근하게 된다. 이후에 읍, 면, 동 관내 우체국으로 이동할지 총괄국에 계속 남아있을지는 순전히 운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다.


  총괄국 지원과가 흔히 행정공무원이라 생각하는 서무 일을 하고 관내국과 총괄국 '창구'에선 고객과 마주하며 현업을 뛴다. 난 로망이 있던 임용후보자였고, 총괄국 지원과를 가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 되겠는가? 의도치 않게 긴 공시생 생활을 했던 것처럼 나는 총괄국이 아닌 관내국으로 발령받았다.



  9시까지 총괄우체국으로 가야 하는 일정이었지만,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한 마음에 8시에 도착을 해버렸다.

'너무 일찍 가면 그것대로 부담스럽지 않을까? 어색한 공기를 견딜 수 있을까?' 자질구레한 고민을 하며,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혹시나 안 좋게 보이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미련한 고민을 하며 출근지에서 조금 떨어져 시간을 잠시 보내고 8시 30분이 되어서야 총괄국으로 이동했다.



  창구 입구가 열리는 9시 이전에는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입구조차 찾지 못해 건물을 빙글빙글 도는 신입의 어리숙함을 뽐내며 우여곡절 끝에 총괄국 지원과에 입성했다. 편한 복장을 하고 계신 분들 사이에서 양복에, 코트에, 구두까지 신고 있는 나는 온몸으로 '열심히 하고 싶은 신입입니다!'라는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을까?

모쪼록 잘 보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으레 하는 호구조사에 나름 씩씩하게 답하고 붙임성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여러 서류를 작성하고 총괄국장님께 임명장을 받고 사진도 한 장 찰칵 찍고 "이번에 헌칠한 신규직원이 들어와서 좋습니다~ 어디 가지 말고 우리 국에 있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어디까지가 진심일지 모를 덕담까지 받은 후에 관내국 발령지로 이동했다. 떠나기 전에 꼭 총괄국에 오고 싶으니 다시 불러달라는 말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하하...



  총괄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관내국은 신도시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인 나는 '신도시? 너무 좋은데?'라는 생각을 잠시 가졌지만, 몇 시간만 일해보니 얼마나 단편적인 생각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월요일 오후의 우체국은 말 그대로 사람이 쓰나미처럼 몰려온다. 간단하게 등기와 일반우편을 보내는 방법을 배우고 바로 현장에 투입되어 업무를 봤는데 세 분 중 한 분은 내가 모르는 내용을 들고 찾아오시니 진짜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세 개의 우편창구에서 가운데에 앉아 고객을 받을 때마다 똑같이 바쁘신 옆 주무관님들께 물어보는 게 얼마나 부담스럽고 불편하며 죄송하던지....... 하루 400명이 넘는 접수분량을 받고선 말 그대로 녹초가 되어 집에 오게 되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는 항상 평일에 피곤해하던 친구들이 엄살을 부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었다. 이 얼마나 무지몽매한 공시생이었던가! 전국에 계신 모든 직장인 분들께 존경심을 갖게 되는 시간이었다.



 정신없었고 원하던 총괄국에 남지도 못 했지만, 바쁜 관내국이니만큼 다방면의 일을 배워 나중에는 만능 에이스 공무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하고 긍정맨이 되자 다짐하며 나의 첫 출근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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