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부록(15)
“케첩을 뿌려 마르게리타 간을 맞추고 스파게티를 가위로 자르면서 이탈리아 요리를 모욕한다.”
지난해 8월 이탈리아 일간지 일메사지로(Il Messaggero, 사진)가 게재한 기사 제목이다. 이 기사는 미국인 틱토커가 SNS에 올린 영상 속 행동을 두고 '요리 범죄(crimini culinari)’라는 단어로 규정했다.
270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보유한 벤 리드(Ben Reid)가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를 여행하며 찍어 올린 ‘내가 만나는 모든 이탈리아인을 열받게 하기'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이탈리아 음식에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했을 때 이탈리아 현지인들의 반응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물론 '이탈리아 음식에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은 음식 부심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에서 만든 규칙과 절차일 뿐이다. 당연히 법은 아니다. 다만 규칙과 절차를 어겼을 때 음식에 대한 모욕이라 여기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각오해야 한다는 걸 영상은 알려준다.
세계 1위 피자 브랜드인 도미노 피자가 베이컨 파인애플 등 미국식 토핑을 올린 피자로 이탈리아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가 7년 만에 철수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벤 리드의 틱톡에도 케첩뿐만 아니라 통조림 파인애플을 피자에 올렸다가 방망이를 든 피자집 사장에게 혼나는 영상이 있다.
이런 엄격한 룰이 피자나 파스타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커피도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 월간지 ‘원티드인롬(Wanted in Rome)’은 아예 이탈리아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해 커피를 마실 때 해서는 안 될 행동을 알려주기도 했다.
“오전 11시 이후에는 카푸치노를 주문하지 마세요. 커피는 바에 서서 마시는 게 정상이고, 테이크아웃 컵은 요청하지 마세요. 라떼를 주문했다면 당황할 각오를 하세요.
이런 규칙과 에티켓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탈리아에서 커피 문화는 신성합니다.”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Venezia)는 567년 이민족인 훈족(튀르크)의 습격을 받은 롬바르디아의 피란민이 만 기슭에 마을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습지와 갯벌을 메우고 라군(lagoon)이라는 석호 위에 도시를 형성했다. 중심지는 리알토 섬이었다.
베네치아 석호 안 쪽 흩어진 118개 섬들이 400여개 다리로 이어진 이 도시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꼽히지만, 과거엔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여유가 없었다.
온통 개펄이다 보니 농사를 지을 땅조차 없었고 모든 게 부족했다. 필요한 물자는 육지에서 배로 가져와야 했다.
척박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베네치아가 눈을 돌린 건 바다를 통한 교역이었다. ‘물의 도시’ 다운 선택이었다.
이후 교역을 통해 중세시대와 르네상스 기간 유럽의 해상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가 됐다.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비단, 향료, 밀을 거래하는 창구가 되면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들 중 하나가 됐다. 16세기를 배경으로 한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의 무대배경이 베네치아인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베네치아가 부자 도시인 동시에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세를 타게 된 것도 중세시대부터다. ‘운하의 도시’, ‘아드리아해의 여왕’, ‘가면의 도시’ 등 다양한 별명을 갖게 됐다.
이미 커피가 유행하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에서 커피를 경험한 베네치아 상인들에겐 돈 많고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놓칠 수 없었다(걷다 보니 '발품컨셉' step1 5, 7화 참조).
오스만 제국은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 1473년 키바 한(Kiva Han)이라는 세계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세워진 뒤 커피의 풍부한 맛과 활력을 주는 특성 덕에 인기를 끌고 있었다.
오스만 제국도 커피가 수익성 있는 산업 아이템이 될 거라 여겼다.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해 예멘에서 커피 재배를 늘렸고 물량이 늘어나면서 유럽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항구도시인 베네치아가 시장 진출의 관문이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베네치아는 유럽 도시 중 최초로 커피를 정기적으로 교역하는 도시가 됐다. 물론 이탈리아의 커피사랑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이슬람 종교인 오스만 제국을 통해 들어온 커피에 교황청의 시선은 좋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세례 받은 커피’ 이야기가 나왔다. 1600년 커피 소비 억제를 선포하는 데 나선 교황 클레멘스 8세가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커피 맛을 봤다.
그리고 그 맛에 빠졌다.
결국 교황은 ‘이 사탄의 음료는 너무 맛있어 이교도들만 독점하게 놔두는 건 안타까운 일’이라며 세례를 줬고 모두가 마실 수 있는 커피가 됐다.
드디어 자칭타칭 ‘유럽 최초의 카페’가 베네치아에 문을 열었다. 그것도 나폴레옹이 아름다운 모습에 극찬한 산 마르코 광장(Piazza San Marco)에.
1720년 설립한 카페 플로리안(Caffè Florian)은 300년 넘는 역사를 이어가면서 베네치아와 세계가 만남을 갖는 장소가 됐다. 1775년엔 카페 플로리안 맞은편에 카페 콰드리(GRANCAFFÈ QUADRI)도 문을 열었다.
커피는 뜨겁고 신선하게 섭취하는 게 가장 좋다는 이유에서 만들어진 커피하우스, 또는 카페의 역사는 오스만 제국에서 시작됐지만 이탈리아에선 나름의 규칙, 절차를 만들며 모습을 갖춰 나갔다.
"(그들은) 곧 편안한 분위기, 대화, 좋은 음식의 대명사가 되었으며, 이는 커피 경험에 낭만과 세련미를 더했습니다."
커피 부심 높은 이탈리아 사람에게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미국 뉴욕의 핫도그와 비교한다면 반응은 어떨까. 그런 비교를 한 사람이 있다. 2017년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영국인 데일 해리스다.
그는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시장 요구에 따르는 값싼 커피”라며 “(원두의) 결함을 은폐하려고 더 진하게 로스팅하거나 블랜딩 하면서 무겁고 거친 제품이 됐다”고 평가했다.
이탈리아 커피에 대한 야박한 평가는 이뿐만이 아니다. 엄밀히 말해 혹평에 가깝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도 평가는 다르지 않다.
“좋은 에스프레소를 위해서는 아라비카를 고집하세요. 저기 에스프레소 메이커들은 때때로 ‘더 이탈리아적인’ 맛을 내기 위해 로부스타를 사용하는데 가장 좋은 재료는 모두 아라비카입니다.”
고든 보커(Gordon Bowker), 지브 시글(Zev Siegl)과 함께 스타벅스를 창업한 제럴드 제리 볼드윈(Gerald Jerry Baldwin)의 이탈리아 커피에 대한 은근한 돌려까기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를 이탈리아 사람들이 모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베네치아 근교 트레비소의 카페 랩 카페틴(Labb Caffettin) 바리스타인 마테오 캄페오토는 자신이 '신성한 커피의 땅'을 밟고 있음을 의식한 듯 목소리를 낮춰 WP 기자에게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신이 그렇게 나쁜 커피를 마시고 있는지 모른다”고 은밀히 얘기했다.
세월을 넘나들며 커피 전문가들이 이탈리아 커피에 가혹하리만치 혹평을 쏟아내는 근본적인 이유는 제리 볼드윈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원두 때문이다.
미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위치한 ‘커피리뷰(Coffee Review)' 소비자 보고서의 케네스 데이비드 편집장은 “(몇몇 대형 이탈리아 로스터에선) 세계에서 가장 나쁜 원두에 가까운 것을 사용한다”고 WP에 말했다.
실제 이탈리아 커피는 인스턴트커피에 흔히 사용되는 값싼 로부스타(Robusta) 원두나 로부스타를 포함한 블랜드에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등을 판매하지 않는 이탈리아에서 유일하게 여름 커피로 마실 수 있는 샤케라토도 칵테일 셰이커에 얼음, 에스프레소와 함께 설탕이나 시럽을 첨가해 만드는데 저렴한 원두의 맛을 감추기 위해서라는 게 바리스타들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커피는 왜 로부스타 원두를 대표하는 나라가 됐을까. 이는 역사적 배경과 경제적 상황이 한 몫했다.
영국의 커피 회사인 그린팜커피에 따르면 원래 이탈리아는 로부스타에 비해 부드럽고 신맛이 나며 카페인 함량은 절반 수준인 아라비카만을 고집하며 에티오피아나 콜롬비아 브라질 등에서 원두를 수입했다.
맛있는 커피 덕분에 찾는 사람이 늘었는데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2차 세계대전이었다. 더 이상 라틴 아메리카에서 아라비카를 수입하는 게 어려워졌다. 이때 눈을 돌린 곳이 북부 아프리카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로부스타였다.
19세기 중엽 아프리카 콩고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로부스타는 아라비카와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아라비카는 고지대에서 자라는 데 반해 로부스타는 700m 이하의 저지대에서 잘 자란다. 쉽게 말해 아무 곳에서나 재배할 수 있는 종이라는 뜻이다. 원두의 형태도 아라비카가 길쭉한 타원형이라면 로부스타는 원형에 가깝다. 식물의 높이도 아라비카는 일반적으로 2.5~4.5m 사이에서, 로부스타는 4.5~6m 높이에서 자란다.
현재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약 75%가 아라비카, 나머지가 로부스타인데 아라비카 주요 생산국은 브라질, 로부스타는 베트남이다.
캐나다의 커피 회사인 ‘로스터즈팩(theroasterspack)’은 이런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의 차이를 10가지로 구분해 정리했다. 역시 가장 큰 차이는 맛이다. 때로 로부스타는 ‘타이어가 타거나 고무 같다’ 또는 ‘탄 팝콘이나 검은 감초’라는 악평을 듣기도 한다.
좋지 않은 맛을 만드는 첫 번째 이유는 카페인 때문이다. 쓴맛을 내는 카페인 함유량이 로부스타 원두는 2.7%로 아라비카 원두(1.5%)의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지질과 당분함량에서도 차이가 있다. 아라비카의 지질 함유량은 로부스타보다 거의 60%가 더 많고 당분 농도도 2배 더 높아 아라비카 맛을 선호하는 중요한 이유가 됐다.
여기에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의 맛 차이를 만든 또 다른 이유는 클로로제닉산(chlorogenic acid)의 함유량이다. 로부스타는 카페인과 함께 클로로제닉산을 아라비카보다 1~1.5배 많이 함유하면서 쓴 맛이 강해졌다.
로부스타와 아라비카의 클로로제닉산 함유량은 각각 7~10.3%과 5.5~8%다.
물론 모든 로부스타의 맛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최근 상품으로 나오는 아라비카보다 비싸고 고급스런 로부스타가 나오기도 해서다. 물론 이를 제외한 로부스타는 평균적으로 향이나 맛에서 아라비카에 미치지 못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맛 외에도 로부스타가 아라비카와 차이를 두는 건 재배환경에서 파생됐다. 로부스타는 저지대에서 자라는 데다 카페인 함유량이 높은 덕에 해충의 침범을 막는다. 농장에서 관리하기 쉬운 데다 수확량이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생산 비용까지 저렴해 아라비카 생두 가격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다 보니 주로 인스턴트커피 등에 많이 사용된다.
이런 장점에도 로부스타가 외면을 받는 건 결국, 커피의 가치는 ‘맛'으로 평가된다는 뜻이다.
2014년 출장차 이탈리아 로마에 들렀을 때다. 우리나라의 문화체육관광부에 속하는 공무원과 미팅 후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로마에서 베네치아로 이동할 예정인데, 추천할 만한 카페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예상하지 못한 답이 돌아왔다.
“로마에서 마신 커피맛을 베네치아에선 마실 수 없어요. 지역마다, 도시마다 커피 맛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곳에 많이 가면 좋아요.”
그때만 해도 ‘커피 부심’에 취한 공무원의 답이라 치부했는데, 알고 보니 사실이었다.
한국철도공사와 유사한 이탈리아레일(Italiarail)이 2018년 여행자를 위해 게재한 글을 보면 그때 공무원의 대답이 무슨 뜻인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지역마다, 도시마다 고유한 커피 문화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커피는 북부에 있는지 남부에 있는지에 따라 크게 다릅니다.”
그러면서 지역별로 구분한 커피 특징을 보면 남부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진하고 크리미 한 커피를 좋아한다. 끝맛은 약간의 설탕으로 관리할 수 있는 날카로운 쓴 맛이 나는 것도 남부 커피의 특징이다.
여기에 남부 사람들이 커피 문화를 즐기는 방법도 알려줬다. 커피를 마시기 전 물을 한 잔 마시는 순서를 갖는데 이는 커피의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입 안을 헹궈내는 역할을 한다.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탈리안 에스프레소에 좀 더 섬세하게 접근하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미디엄 로스팅 커피를 찾는다.
그러다 보니 북부 지역에선 아라비카 원두를 선호한다. 이탈리아레일은 “북부 사람들은 이탈리안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달콤한 뒷맛을 즐긴다”고 했다.
이처럼 지역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진 데는 과거 역사적 배경에 따라 로부스타 원두를 활용하는 데서 기인했다.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았던 남쪽 지역은 원두를 선택할 자유가 중북부 지역에 비해 적었다. 로부스타 원두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부유한 북쪽 지역은 아라비카 원두를 사용할 여유가 있었다.
원두의 사용이 달라지다 보니 지역별 로스팅 방식, 블랜드 방식에도 차이가 생겼다.
그린팜커피에 따르면 이탈리아 북부는 살짝 스치는 신맛의 라이트 미디엄 로스팅을 좋아하며, 중부 지방은 미디엄 로스팅, 남부는 다크 로스팅 된 커피를 즐겨 마시게 됐다.
이탈리아는 원두의 블랜딩에도 힘을 쏟았다. 로부스타 원두를 사용하면서 커피 맛에 집중하다 보니 아라비카 원두와의 조화에 집중했다.
튀지 않는 맛, 풍부한 크레마 등 로부스타 나름의 장점은 아라비카와 만나 커피의 맛을 끌어올렸다.
그러다 보니 지역을 중심으로 커피회사들이 생겨났고 그 회사들의 브랜드는 지역을 대표하는 커피가 됐다.
‘커피 타임(Coffee Time)’.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 뒷골목은 늘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낯선 광경을 봤다.
관광객이 많이 오가는 시간대에 기념품 상점이 잠시 문을 걸어 잠갔다.
영업을 멈춘 건 직원이 화장실을 가서도, 개인 업무가 바빠서도 아니었다. 유리문에 걸린 푯말에 간단히 적은 이유, ‘커피 타임’이었다.
이처럼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커피는 남다른 의미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하루 중 잠깐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최고의 핑곗거리가 되는 게 커피다.
1700년대부터 커피 문화를 이어오면서 말 그대로 삶이 됐고, 다양한 원칙과 룰을 만들었다. 응집된 이탈리아의 커피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WP는 이런 이탈리아 카페를 ‘커피 타임캡슐’이라는 말로 정의했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카페는 커피 타임캡슐입니다. 가격은 1980년대 수준이고 스낵바 같은 옛날 간판이 출입구를 장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의 사운드 트랙은 고객의 수다와 도자기 컵의 달그락거리는 소리입니다.”
그러면서 이탈리아 카페의 특성을 덧붙인다. 아침엔 페이스트리를 제공하는 곳이 있고, 바에 선채 커피를 마신다.
오후 5시부터 술을 판매하기도 한다. 씁쓸하고 강한 에스프레소 샷을 제공하고 와이파이는 거의 없으며 노트북 작업을 하는 손님은 환영하지 않는다. 테이크아웃용 커피는 절대 제공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넘기 힘든 이탈리아 커피 문화의 벽은 1유로라는 가격이다. WP는 이탈리아에서 명문화된 법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진 에스프레소 가격은 1유로다. 속옷은 90유로에 팔 수 있지만 1유로 넘는 커피는 절대 안 된다는 게 WP의 설명이다.
베로나에서 전문 바리스타 교육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다비데 코벨리는 “이탈리아에서 (스페셜티) 커피숍을 열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두 겁을 먹는다. 가격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 뿌리내린 이탈리아 커피 문화는 전통을 지키며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냈지만 끊임없이 자가발전도 했다. 2010년대 초부터 이탈리아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제공하는 커피하우스가 증가하면서 변화의 조짐도 보이기 시작했다.
콜드브루나 푸어오버가 포함된 메뉴가 있고 카운터에 좌석이 있으며 에스프레소 가격은 1유로를 넘어섰다. 이들 카페는 알코올을 제공하지 않고 몇 가지 페이스트리 외에는 음식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날의 단일 원산지 원두도 칠판이나 전광판을 통해 손님에게 알려주기도 한다. 카운터 뒤의 선반은 화학 실험실과 비슷해 음료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비커가 있다. 특정 온도까지 물을 끓이도록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스테인리스 스틸 주전자도 있다.
이런 흐름에 맞춰 스타벅스는 지난 2019년 밀라노에 첫 매장을 열기도 했다.
로부스타 원두를 사용하면서 로스터리 기술도 발전됐다. 로스팅 과정은 커피의 맛과 풍미를 높이는데 밀도 모양 당도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로스터 프로필을 개발해야 한다.
낮은 고도, 높은 온도에서 재배되는 로부스타 원두는 아라비카에 비해 밀도가 낮지만 원두의 구조는 훨씬 더 복잡하다 보니 고지대 아라비카 원두와 비슷한 조건을 갖춰야 하는 식이다.
이탈리아의 로스팅 수준은 로부스타의 좋지 않은 걸 ‘숨기는’ 도구가 됐다. 코버그커피컴퍼니는 "수준 높은 로스팅을 통해 고객이 커피 원두와 원산지의 실제 맛이 아닌 로스팅된 원두의 쓴맛과 캐러멜화를 맛볼 수 있게 됐다"고도 했다.
캄페오토 바리스타는 그런 의미에서 반전의 이야기를 꺼낸다. “세계에서 가장 나쁜 원두에 가까운 걸 사용하지만, 이탈리아 커피가 항상 나쁜 건 아닙니다. 이탈리아 바리스타들은 훌륭한 기계와 장인정신을 갖추고 있습니다."
세월과 상황이 만들어낸 진한 바디감, 강렬하고 쓴맛이 나는 고카페인의 이탈리아 커피는 이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익숙해졌고 그 커피를 ‘진짜 커피’로 간주하게 됐다.
앞서 ‘원티드인롬’이 알려준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마실 때 해서는 안 될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탈리아인들은 우유를 점심이나 저녁에 섞으면 배가 망가진다고 생각하여 점심시간 이후에는 우유를 건너뛴다. 대신 오전 11시 이전엔 카푸치노 카페라떼 등 우유가 포함된 커피만 마신다.
라떼를 주문했다면, 카페라떼를 받지 못할 수 있다. 대신 받아 드는 건 차가운 우유 한 잔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테이크아웃 컵을 요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 두 모금의 에스프레소를 테이크아웃 할 일은 없어서다. 다만 여행자나 학생은 예외다. 이때도 카페라떼나 카푸치노, 카페 아메리카노가 아닐까 싶다.
만약 테이크아웃 커피를 요청한다면 주문에 da portar via(테이크아웃용)라는 단어를 추가하면 좋을 거 같다. 그럼에도 테이크아웃 대신 테이블에 앉거나 바에 서서 커피를 즐겨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서두르지 않고 삶의 모든 순간을 만끽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 메인 사진 출처 : 픽사베이 핀터레스트